북한방문기 1


처음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을때만 해도 복잡한 절차와 몇 백만원의 비용을 들이고도, 지금보다 훨씬 제약이 많았기에, 실향민이나 부자들이나 갈 수 있는 고가의 관광상품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하루동안의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했고 육로를 통한 방북이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만원 전후의 저렴한 비용과 교육의 간소화, 육로이동 등으로 고등학교의 수학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사업자라는 명목으로(북한에 일하러가면 무조건 사업자라고 부름) 북한에 머문적이 있는데 그때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몇가지를 해보겠습니다. 제법 시간이 지난관계로 용어나 단위의 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하던일이 소규모의 건축공사일이었는데, 어느날 알던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대뜸 한다는 말이 "정일이 형님이 오라는데 같이갈래?" 였습니다. 그도 재미있을듯해서 OK를 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한달이 다되어갈 무렵 다시  전화해서는 내일 출발하니 짐을 챙기라고 하더군요. 그렇게해서 생전처음 해외땅을 밟아보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북한에서는 남조선 북조선이라고 한다지만, 일반적으로 관광이나 방문을 할 경우 남측, 북측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것이 좋습니다.

화진포 아산 휴게소를 출발해 남측출입사무소(ICQ)도착하여, 휴대전화를 정지신청하고 보관시킬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10여년 동안 잠시도 떼어놓은 적이 없었는데 내손으로 정지를 시키고, 이제는 한동안 모든 연락이 단절될 것이라 생각하니 갑갑하기도 했습니다. 소형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북측출입사무소에 내리는 순간, 알 수 없는 착찹함도 들었습니다. 남측과 너무나 비교되는 천막으로 지은 가건물이었고, 거기서 큰소리로 흘러나오는 '반갑습니다~~ '라는 노랫소리.. 그리고 저멀리서 들리는 군인들의 군가소리와 곳곳에 배치되어 부동자세로 서있는 군인들.. 그러나 저는 이미 선택했으니 여행을 즐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고물품을 작성하는데 워낙 간소한지라 손톱깍이 1개, 색안경 1개, 양말 5켤레까지 적었는데도 허전하더군요. 그래서 그 아래에 '이런 물품을 담고있는 가방 1개'라고 추가했습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여군이 수하물심사를 하는데 저는 관례대로 모든 물품을 꺼내서 보여줬고, 여군은 제가 적은 품목을 보고는 피식 웃었습니다. '이건 뭡네까?' 가방안에든 시커먼 비닐봉지를 보고 묻길래, 저는 친절하게 그안에든 속옷들을 하나씩 꺼내서 확인시켜줬습니다. 그 여군의 살짝 붉어진 모습이 이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확실히 색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것은 누런 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들이 여기저기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냥 널린 풀만 먹으면 될건데 왜 저리 말랐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멀리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와 몸빼를 입은 아줌마도 보였고, 말로만 듣던 목탄차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강에서 물장난을 하기도 했고, 하교길에 가방을 메고 입에는 풀잎하나를 문채 흥얼거리는 모습은 우리의 시골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다만 너무나 낡고 초라해보이는 집들과 건물들..

해금강호텔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았는데 조심 좀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발 술먹고 싸우지말고, 중국교포(조선족)들과 시비걸지말라는 그런 이야기 였습니다. 금강산관광특구에는 교포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가이드나 현대와 에머슨퍼시픽의 직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어려운 일은 교포들의 몫입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특구에서 필요한 버스기사와 면세점, 편의점 등 여러곳의 일손을 중국에서 채용해오는데, 보통 1년정도 계약해서 들어옵니다. 교포들은 한달에 몇 십만원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계약기간 중에는 집에 다녀올수도 없고, 정해진 숙소에서 지내게 됩니다. 가끔 교포와 이야기해보면 한국에 일하러 가고싶다고 합니다. 교포중에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친구들도 있던데 교포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도로는 곳곳에 초소가 있습니다. 저 언덕 곳곳에도 보초들이 보입니다. 북측의 군인들은 주로 10 대가 많은데 우리나라보다 어린편입니다. 그리고 키가 작은 편입니다. 관광특구라서 남측사람과의 접촉이 잦은 점을 고려해 출신성분이 좋고 그중에서도 체격이 큰 애들을 뽑았다는 소문이 있는데도 키가 170이 안되는듯 합니다. 관광지는 덜하지만 사업장 주변의 군인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해둔 룰을 철처하게 지키게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걸을때 바지주머니에 손 넣는것과 가방을 등뒤로 비스듬히 들고 가는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무심코 손을 넣고 걷다보면 호각을 삑~하고 붑니다. 절대 말을 하지 않고, 손짓과 호각으로만 지시합니다. 그런데 만약 끝까지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아주 큰 일이 발생합니다. 경고를 했는데도 어떤 사람이 끝까지 그냥지나치자, 열 여덟된 군인은 그 사람에게 총을 겨눴고, 그 사람은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두시간 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못한 채 떨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슬쩍 물어보니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등에 가방을 비스듬히 매는 행동은, 총이나 칼같은 무기를 숨기기 위한 행동으로 간주를 한다고 하더군요.

군인들이 다 살벌한것은 아닙니다. 간부들과 오래된 고참들은 뺀질뺀질 합니다. 한 장교는 한국산 1톤 트럭을 타고 다니는데, 가끔 나타나서는 친근하게 말을 붙입니다. '선생은 얼굴이 시커먼게, 간이 않좋아보이느만.' 그들은 동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선생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게 말을 붙인후에는 슬쩍 우리차에 다가와서 '이야~~ 저거 멋있는데' 하면서 핸들카바를 가르킵니다. 처음에는 겁도나서 꺼려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옆동네 아저씨는 만난 기분이 됩니다. 핸들카바를 주니까 잠시후 자신의 차에서 사용하던 핸들카바를 들고왔습니다. 훨씬 고급스러운 수제품이었습니다. 욕심이 나서가 아니었나 봅니다. 어떨땐 벙커짓는데 필요하다며 자재를 조금만 달라고 하는데 안된다고 하면 씨익 웃고 갑니다.

온정각에는 농협지점이 있는데 그곳에서 달러를 교환해줍니다. 금강산에서는 달러를 사용합니다. 물론 원화를 사용해도 되지만 1달러 = 1000원 이므로 손해입니다. 편의점인 훼미리마트도 몇 곳 있습니다. 그런데 물건값은 무조건 1달러 단위입니다. 700원짜리 컵라면도 1 달러인데, 500원 미만의 제품은 2개 1달러이며, 한 개만 살 수 없습니다. 사업자에게는 쿠폰제를 적용해 줍니다. 10달러치 물건을 사면 2~3달러의 쿠폰을 줍니다. 교포아가씨와 친해지고나니 저한테는 5달러 쿠폰을 주더군요. 어디서나 사람이 하는일은 사람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그 쿠폰은 금강산 지역의 모든 훼미리마트에서 현금처럼 사용이 가능합니다. 나중에 그 교포아가씨는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내손에는 전화번호와 주소가 남아있습니다.

면세점이 있는데 술이나 공예품, 담배 등을 팔고있습니다. 담배는 보루단위로 파는데 국내에서 2500원하는 담배는 17달러에 살 수 있습니다. 사업자들이 면세점을 이용하지 않는것은 PX를 이용하면 13달러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스의 경우는 11달러입니다. 그런데 요일이 정해져있고 한사람당 한 보루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때나 가서 살 수 있습니다. 교포들이 사는날에 슬쩍 끼여들어서 유창하게 '어색한 한국말'을 하면 됩니다. 나중에 교포아가씨가 나를 알아봤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않습니다. 뻔뻔하게 아닌척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끔 초코바 한개를 내밀며 친근한 척 해주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대중교통으로는 북측주민은 이용할 수 없지만, 관광객이나 사업자들은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십대의 버스가 있지만 노선이라는게 워낙 단순한 편이고, 비수기때는 승객이 어느 정도 차면 출발하는 형식이라서 시간맞춰 탄다는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에 손을 들면 빈자리가 있는한 태워줍니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차종이 그곳에 있습니다. 사진촬영은 할 수 없지만, 창너머로 그곳 바라봅니다. 군인들은 초소주변에 꽃을 이쁘게 심고 가꿉니다. 초등학생들은  철로 주변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버스가 지날때면 반짝이는 눈으로 보기도 합니다. 인솔자가 있으면 의도적으로 몸을 돌립니다. 한번은 인형처럼 이쁘고 깜찍한 여자애가 인솔자 몰래 손을 흔들며 싱긋 웃어주었는데, 그 얼굴과 미소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어느 곳이나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통금시간에 정해져 있어서 밤이 늦고, 버스가 끊어지면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금강산은 관광특구답게 없는게 없습니다. 돈이 있다면 룸이 즐비한 노래방도 갈 수 있고, 나이트클럽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전산망이 남측과 연결되지 않아 실시간 승인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 곳에서 술을 마시다보면 과하게 되기쉽고, 그러다보면 밤이 깊어지고 통금시간이 지나기도 합니다. 이때는 택시를 이용하면 됩니다. 딱 한대있는 택시는 거리와 상관없이 정해진 10달러정도의 요금만 받습니다. 그리고 이 택시는 천하무적으로 통금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택시가 있기에 술꾼들은 북측에서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단체로 가라오케나 나이트클럽에 갈때면 차량도 보내주는데 이건 남측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술집에서의 서비스 역시 교포아가씨들이 하고 있습니다. 술값은 약간 싼편입니다. 둘이서 조니워커블랙 큰것 한병을 마시고 아가씨들의 서비스 요금을 지불하면 20 ~ 25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한국 사람들의 음주때문에 문제가 제법 발생했다고 합니다. 특히 음주운전을 하다가 북측군인을 몇명 죽게만들기도 해서, 한때 심각한 상태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이후로는 음주운전은 철처히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술 마시는 자체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도 택시는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북측에서는 정해진 구간외에는 걸어서 갈 수 없습니다. 관광지와 관광지 사이는 반드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만 합니다. 일반 주만과의 접촉을 통제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월북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몰래 경계선에 한발을 들여놓고는 월북중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넘어가면 월북이라해서 관광지가 남측구역인것도 아닙니다. 북측 군인들은 교대할때 당당히 남측구역을 걸어가지만, 아무도 월남했다고 하지않습니다. 가끔 소련제 도라꾸 화물칸에 앉아서 군가를 부르며 이동하는 군인들을 보는데, 그 군가 소리가 서글프고 처량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와 마주칠때는 목석같다가도, 자기들끼리는 떠들며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저들도 똑같구나'라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동무는 어드메서 왔슴메? 로 이어집니다.



글이 두서없고 정리가 안되어 길어졌습니다. 한편으로 끝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편으로 이어야 겠습니다. (사용된 이미지들은 인터넷에서 구한것이므로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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