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방문기 2


정일이 형님이 오라는데 같이갈래? 에서 이어집니다.

금강산관광은 2~3일 정도가 적당한데 그곳에서 머문지 수십일이 넘어가면서 지루함과 갑갑함이 밀려들었습니다. TV는 유선으로 정규채널과 몇몇 케이블 방송이 시청가능하기에 남측의 소식은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지만, 전화가 없다는 점이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공중전화와 비슷한 전화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교포청년이 1평정도되는 골방 사무실의 문을 여는데, 그곳에 전화기가 있습니다. 통화료는 1분에 3달러입니다. 그것도 남측으로 신호가 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요금이 계산됩니다. 개성공단의 경우 국내요금과 큰 차이가 없지만, 금강산은 기업체가 입주한 공단이 아닌 일회성 관광객위주의 특구이므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국제전화료가 적용됩니다. 저쪽에서 받자말자 '전화해' 한마디하고 끊습니다. 남측에서 북측으로 전화할 경우 1분에 1200원정도 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하는 1분의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지더군요. "별일 없나?" "보고싶다" 이 두마디에 모든 마음을 담아야 했습니다.

폐인모드돌입.. 시간이 지날 수록 폐인이 되어갔습니다. 좀 관리가 안되는 상태라고 할까요? 체육복 하나를 며칠씩 입고는 저녁만 되면 슬슬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부시시해지고, 진흙으로 엉망이된 등산화를 신고, 미지의 뭔가를 찾으며 어슬렁거리는 날들이 늘어갔습니다. 온정각휴게실 근처에는 언제나 관광객이 북적거립니다. 그 근처에 면세점이나 옥류관같은 식당, 온천, 호텔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벤치에 앉아 먼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사탕 몇개를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용기 잃지마시고 힘내세요!' 중년이 지나보이는 인상좋은 아줌마였습니다. 전 사탕을 고맙게 받아먹다가 한참후 그분이 말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현지인으로 보였구나..'

현지인이 되다. 그러고도 두어번 사탕이나 쵸코바를 얻어먹다보니 어느새 현지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온정각 휴게소에 있다보면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됩니다. 수학여행을 오면 아무래도 숙박비가 저렴한 빌리지에 머물게 되고, 저녁에 마땅히 갈데가 없으므로 편의점으로 몰려들게 되는것입니다. 거기에 앉아서 오랜만에  생기넘치는 학생들을 보면 저도 기운이 살아나는 활력을 얻는듯 합니다. 그런데 그들 눈에도 제가 현지인으로 보이나 봅니다. 신기한듯 손짓하며 저희들끼리 쑥덕거립니다. 저는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고싶지 않기에 한마디를 던져 그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학생동무는 어드메서 왔슴메?" 나름대로 신경을써서 흉내낸 사투리에 그들은 놀라면서도 또렷하게 대답해줍니다. 그게 대견스러워 저는 그들의 기념촬영 제의를 혼쾌히 수락해 줍니다.

온정리는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온정각휴게소에서 10분정도 걸어올라가면 금강산온천이 있습니다. 이용요금은 관광객의 경우 12달러인데 사업자는 2~4달러 정도면 됩니다. 시설도 잘되어있고 물도 좋다보니 자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북측에서는 말을 조심해야합니다. 다 벗고 있다보니 누가 현지인인지 누가 관광객인지 알 수 없게됩니다. 온천에서는 온천만 즐겨야지 북측에 대한 사상이나 종교등을 비판하거나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방당한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단체관광왔던 사람들이 '당이 결심하면 우리가 한다'는 구호를 보고 '목사님이 결심하면 우리가 한다'라고 했다가 큰 곤욕을 치뤘다고 합니다. 어쨋든 온천덕분에 피부가 고와지면서 점차 현지인의 이미지가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도 여러종류의 담배가 있습니다. 온정각 면세점에서는 칠보산, 룡봉, 금강산, 아리랑, 호랑이,서리꽃, 풍산, 평양 담배 등 10갑/1보루를 세트로 구성해서 15달러에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갑도 피우기전에 질리게 됩니다. 재미삼아 여럿이 돈을모아 한보루 사놓으면 처음 몇개피를 제외하면 남아 돌 정도입니다. 독합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전에 잠시 소개했지만 소주는 25%정도 됩니다. 편의점에서는 PET병에 담긴 한국산 소주를 팔고 있는데 용량이 컸던 기억이 납니다.

온천을 즐기면서 온정각 근처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온정각휴게소와 온천사이는 개발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길은 북측의 마을을 가로지르다보니 골목입구마다 초소가 있지만 현지주민을 가깝게 볼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옥류관 근처에는 현지 아가씨들이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술이 아니라해도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참새구이나 두부요리나 꼬치구이 등등 가격도 1달러에서 5달러 정도로 저렴합니다. 엄청난 크기의 TV에서는 노래방처럼 북측가요와 배경화면나왔고, 북측아가씨들이 날라주는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퉁명스럽던 아가씨들도 얼굴을 익히자 웃기도 잘했고 친절했습니다. 가슴에 단 김일성뱃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늘 시간이 났지만서도) 현대주유소에서 호텔해금강까지  이어진 2km정도의 해안도로를 산책하곤 했습니다. 저멀리 장전항이 보이고 해질무렵이면 수면위로 펄떡거리는 고기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중간쯤에 가면 고성항횟집이 있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저녁에는 늘 손님들이 넘칩니다. 바쁘지 않는 시간에 가서 주방장에게 살짝 부탁하면 생선값만 받고 회를 떠줍니다. 그곳의 활어들은 100% 자연산입니다. 북측에는 양식기술이 거의 전무하기에 자연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산에 사는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싸지 않지만, 다른 지방분들은 엄청 싸다고들 말합니다. 해안도로 곳곳에는 벤치가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벤치 근처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굴러다닙니다. 전부 한국산 과자봉지며, 담배꽁초며 음료수병입니다. 도로 바로 옆으로는 길게 모레사장과 방파제가 뻗어있는데, 원래 이곳에서는 낚시를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그후로 하도 많은 쓰레기들이 발생해서 지금은 낚시를 금지할뿐 아니라 해변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해수욕장 개장철이 아닐때 바닷가로 내려가면 저 건너편에서 실탄사격을 할 정도입니다. 제발 쓰레기좀 버리지 마세요.



혹시 관광을 계획하신다면 인라인스케이트를 챙겨가는것도 좋습니다. 석양이 지는 한산한 해안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상쾌합니다.

어두운 산길을 걷다보면 종종 근무교대를 하는 군인들과 마주칠때가 있습니다.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만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이 지루해질 무렵에 앞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와 같이 가던 분은 특공부대 출신이었는데, 그들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농담삼아 외쳤습니다. '꼼짝마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후레쉬 불빛이 보였습니다. 군인들 말고 후레쉬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순간 시간이 멈춘듯한 고요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들도 잠시 놀란듯 하다가는 아무일 없다는듯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등으로 흐르는 식은땀..  그날밤 그분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과음을 하더니, 밤새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분이 하는말은 "깨레군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나갔다 와야겠다' 였습니다. 다음날 그분은 기억도 못하고 있더군요.



교예공연이나 가무공연, 금강산 산행 이야기와 발랑까진 안내원 아가씨, 교포들과 얽힌 추억들도 많지만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제 가슴에는 아직도 구슬프게 부르던 군가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다같은 이땅의 젊은이들이 젊음의 한 가운데를 서로 대치하며 보내야 한다는 현실의 안타깝습니다. 밤이 되면 단전(斷電)되는 50년도 더 된듯한 집들과 시멘트 기와를 이은 낡은 건물들과 그속에서 뛰어놀던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과 경운기 한대 보이지 않는 넓은 논밭이 안타깝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구한 이미지므로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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