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446년

2008. 1. 26. 06:18



인류는 수많은 자멸의 위기속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더니 서기 3000년이 되자 과학문명의 정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르는 동안 더 이상 과학적으로 뚜렸한 발전이 없는 정체기를 맞이 했지만, 돌아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0만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던 인류가 불과 반만년도 되지않아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선 것이다.

19세기 말에서부터 폭발적인 발전을 시작해 21세기에는 태양계를 모두 정복했고, 23세기에서는 외부항성계에 첫발을 디뎠고, 26세기에는 마침내 우리 은하의 중심부까지 지구문명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28세기에는 가속시킨 광자를 이용한 새로운 통신기술의 발달로 은하계 어느곳과도 실시간 통신이 가능해졌고, 그것은 곧 정보전달력을 극도로 높여주어 은하 곳곳의 식민문명지의 정보평준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세기가 지나기전 인류는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어 더 이상 인공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아도 노화되지 않는 몸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서기 3000년이 되었을때 은하계에는 더이상 미지의 세계는 남아있지 않았고, 과학의 암흑기라 불리는 200년이 시작되고 있었다.

수 백년을 살아온 천억이 넘는 인류는 1000년만에 찾아온 정체기로 인해 지루함을 느꼈고, 시간이 지나며 권태를 넘어 삶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더 이상 발견할 것도 더 이상 발전할 것도 없으며 영원히 살아야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우주의 비밀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시간은 비밀속에 있었고, 오래전 증명된 중첩차원과의 소통방법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고, 외부은하로의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가까운 은하로의 여행이 가능하겠지만, 어떤 사람도 그 기나긴 여정을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게 이미 밝혀져 있었다.

한때 냉동과 수면여행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신체의 활동만 멈출뿐 정신영역의 활동을 늦추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움직이지 못한채 수천년을 깨어있다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고대의 보이져 계획처럼 타은하를 향한 천개 이상의 메세지를 보냈지만, 결국 타은하에 문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고 그들 역시 인류와 같은 장벽에 부딪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류는 외로움과 권태로움에 지쳐갔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었다.

서기 3200년 마침내 인류는 권태를 이기지 못해 상잔(相殘)을 시작했고, 수 천년을 발전해온 문명은 불과 50년만에 자멸(自滅)의 끝자락을 밟게 되었다. 우주에 널리 퍼졌던 인류의 총 수(數)가 10억명도 남지 않았을 때에야 겨우 '권태(倦怠)의 고뇌(苦惱)'이라고 불리던 전쟁은 중단되었다. 그것은 오직 두려움의 결과일 뿐이었으나, 그 두려움은 오래전 폐기되어 역사속 기록에만 남아있던 종교와 철학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철학은 인류를 새로운 발전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었다. 권태가 멸망으로 이어졌듯, 깊고 넓고 풍부한 사고력만이 유일하게 발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기술적으로 이미 완벽에 가까워져 있었기에 인류는 그 과학과 수학을 철학에 접목시켰고, 철학은 그때까지 미제로 남아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고, 그로 인해 인류는 지난 3000년 동안 발전한 것보다 더 많은 발전을 불과 100년 사이에 이룰 수 있었다.  인류는 세 축(軸)을 지닌 공간은 시간속에 연속체로 존재하고, 그 시간은 다시 세 방향의 축(軸)을 가진 채 한 단계 위의 거시 공간속에 속성으로 존재하고, 그 거시 공간은 다시 세 방향의 차원축(次元軸)으로 이어져 있음을 철학적으로 증명해 내므로, 시간과 차원과 공간의 비밀이 눈앞에 있는듯 했다. 그러나 다시 50년이 지났지만 '최후의 질문'이라고 불리는 시공간의 비밀을 더 이상 풀리지 않았고, 인류는 영원히 이 문제의 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었다.

서기 3400년. 이 최후의 질문은 엉뚱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우수한 철학자 집단이 인간의 사고능력은 '언어의 표현력'에서 기인된다는 것을 발견해 내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곧 '같은 현상을 보고도 표현력이 풍부하다면 몇 배나 복잡하고 깊이있는 감성과 상상과 추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고 증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22세기에 일어났던 핵전쟁으로 인하여 순전히 문자로만 전해지는 '지난 인류'가 사용했던 3000개의 언어를 연구했고, 그 3000개의 언어중에서 독립된 문자를 가진 100개의 언어를 놀라운 지성과 우수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마침내 원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언어와 달리 유독 뛰어난 하나의 언어가 있었다. 다른 언어들이 문자의 해독으로 뜻을 파악하는 정도로 그친 반면, 그 언어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완벽해서, 문자만으로도 발음을 유추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언어는 음절이라는 단위가 있으며 음절속 모음은 언제나 같은 발음을 내면서 음소와 표기가 일치하는 놀라운 언어였다. 문자와 소리가 일치한다는 것은 어떤 언어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위대함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언어가 지닌 풍부한 표현력인데,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공용어의 부족한 표현력때문에 필요했던 제스처(gesture)가 전혀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거기서 그들은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 이토록 심오한 언어가 사라졌던 것일까? 그 언어는 핵전쟁이 일어나기 훨씬전인 21세기 말 무렵에 이미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지난 인류는 왜 이 언어를 버리고, 지금 사용하는 비과학적인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마치 초광속 우주선을 개발하고도 로켓엔진으로 우주를 항해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기에, 우주 제일의 불가사의로 남겨졌다.

그들은 빠르게 그 언어를 습득했고, 그 언어를 바탕으로 한층 더 깊고 넓은 시각으로 우주를 관찰하며 최후의 질문에 접근해 나갔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토록 바라던 궁극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날은 전우주의 모든 역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불리며, 이제는 전우주의 공용어가 된 글이자 말인 한글이 탄생한지 꼭 2000년째 되는 해의 10월 9일이었다.
-끝-


왜 갑자기 21세기 말에 한글(언어와 문자)이 사라졌을까요?
그 편리성과 위대함을 버리고 일부러 불편함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결과 인류의 문명은 500년을 늦게 완성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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