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건 시간의 여유도 있어야겠지만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은 시간도 있고 즐거운 일들도 겹쳤기에 모처럼의 아늑하고 부담없는 주말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황토팩을 바르고 즐거워하는 두 딸아이 입니다. 웃으면 주름이 생긴다면서 소리지르는 엄마와 그 말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 황토가루를 날리며 뛰어다니는 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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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애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2년 전에, 큰 애한테 휴대전화기를 사주면서 저도 모르게 한 말이 있었나 봅니다. 그 약속을 작은 애는 기억했다가 잊을만하면 한마디를 툭 던지며 아빠의 기억을 상기시켜왔습니다. 제가 4학년이 되면 휴대폰 사준다고 했는거 기억하시죠? 2년 동안 그 말을 900번 정도 들어야 했습니다. 몇 번 거래를 했던 단말기 판매점에 가서 가입비 3만원과 유심카드비 1만원을 주고 공짜폰이란걸 받았습니다. 새벽까지 잠도 안자고 전화기를 쪼물락 거리더니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는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더군요. 앞으로 매월 내야 할 통신비가 18,000원 늘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난 것이지만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는걸 보면, 작은 딸이 2년동안의 아빠를 세뇌한게 아닐까하는 의심도 듭니다. 그러나 의심이 들어도 증명할 길이 없고, 만약 딸애가 사기를 쳤다고 해도, 2년의 치밀한 계획을 실행했을 정도로 영악하다면 쉽게 실토할리도 없으니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군요.

작은 애한테는 일주일에 2천원의 용돈을 주고 있는데, 큰 애가 날짜를 잊어버리고 넘어가기 일수인데 비해 작은 애는 수첩에 꼼꼼히 기록을 하고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용돈을 요구합니다. 며칠전에 500원 줬잖아 하면 수첩을 보며, 언제 얼마를 줬으니 남은 금액이 얼마라면서 손을 내밉니다. 그렇게 받은 돈은 꼬박꼬박 모아서 보고싶은 책을 삽니다. 그런데 요즘은 책값이 너무 비쌉니다. 딸아이가 한 달 동안 한푼도 쓰지않고 모아봐야 책한권을 사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내용도 별로없고 그림으로 떡칠해 둔 책인데도 보통 만원이 넘으며, 표지만 두껍고 번질거리는 형광지로 만든 내용없는 책들도 종이값을 하는지 만원을 훌쩍 넘깁니다. 그래서 한 권 값으로 3~4권의 책을 살 수 있는 헌책방에 가면 아주 좋아합니다. 책 만드는 분들 제발 쓸데없는데 돈 바르지말고 내용 알차고 싼 책을 만들어 주세요.


어제는 작은 딸에게 행운이 넘치는 날이었나 봅니다. 택배가 왔다길래 무심코 받아 무거운 종이상자를 열어보니 잊고 있었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며칠 전에 판타스틱 이벤트가 있어서 정기구독을 신청했었는데 그게 도착한 것입니다. 6개월 정기구독에 35,000원인데 2월호와 함께 과월호 네 권과 선택한 단행본 2권이 같이 왔습니다.  서점에서 샀으면 한 권에 11,000원하는 책들이군요. 작은 애가 가장 좋아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단행본을 들고 방에 들어가서는 저녁때까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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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가 주문하고 기다렸던건 도너츠 세트였고, 그게 도착하면 맛볼려고 밥도 조금만 먹고 기다렸는데 생각지도 않는 택배가 다시 도착했습니다. 이제 달콤한 도너츠를 먹겠구나하고 기다리는데, 아내가 들고 들어온건 은박지에 포장된 물품이었습니다. 나 앞으로 왔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아내가 눈을 흘기며 말했습니다. 자백하시지... 또 뭘 지른거야?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레몬펜 우수 베타테스터의 사은품입니다. 레몬펜과 꼭 같이 생겼고 크기도 아담하고 예뻐서 두 애가 서로 가지려고 싸우다가 작은 애가 양보하는 선에서 끝이 났습니다. 레몬펜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블로깅하면서 최초로 받아 본 선물입니다.

금요일에 가눔님이 글을 남겨주셔서 처음 알았는데 다음블로거뉴스의 주간 블로거뉴스에 뽑혔습니다. 운이 좋아 뽑혔겠지만 일단은 무엇보다 Daum캐쉬 10만원... 언제 줄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준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크게 한 일도 없고, 특별나게 유익한 시간을 보낸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일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 되면 가족과 어딘가에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싣고, 가깝거나 먼 여러 곳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런 나들이가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당연해지고, 크게 즐겁지도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번은 그 재미가 그대로 였지만 점차 나들이는 감흥을 주지 못하더군요. 소풍 전날밤의 두근거림이 사라진다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 분명합니다.

요즘은 영화도 가끔만 보러가고, 먼곳으로의 행차는 피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듯 주말을 보내는 걸 우리 가족은 즐기고 있습니다. 딸애가 좋아하는 스펀지밥과 도라에몽을 같이 보고, 딸애들이 쓰고 있는 소설을 읽고 평가해주고, 같이 좋아하는 도너츠를 음미하면서 마시는 핫쵸코 한 잔이 즐겁습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30분을 걸어서 간 시장을 돌아다니며 옷구경 음식구경을 하고, 햇빛 잘드는 곳에 나란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게으름을 피웁니다. 어두워질 무렵  마치 100만원어치 쇼핑이라도 한듯 우쭐한 걸음으로 거리를 가로질러 집으로 옵니다.
"아빠?" "응?" "나 업어줘" 중학교 다니는 큰딸년이 하는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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