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명은 기술이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외계를 향해 눈을 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외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술의 확보 과정이나 소요되는 기간은 문명이 태동한 행성의 고유조건과 우주적 위치, 문명을 형성한 지성체의 진화정도와 신체적 특성 등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생명체의 탄생이 반드시 행성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위성이나 항성 또는 성간구름에서도 프라즈마나 가스 상태 혹은 고착된 금속이나 탄소강 형태로 진화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구의 생물체같이 동물과 식물, 암컷과 수컷 식의 불완전 형태로 구분되지 않고, 처음부터 자웅동체(雌雄同體 hermaphrodite)나 무성생식(無性生殖 asexual reproduction), 자기복제를 하는 형태의 생물로 탄생해서 진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물은 반드시 대규모의 개체군을 형성하거나 2세대를 복제하는 방식을 취할 필요도 없으므로, 하나의 개체가 탄생해서 그 본체를 유지한 채 오랜 세월을 진화하며, 외부의 요건과 압력에 반응하며 스스로 변이하거나, 모행성(母行星)의 환경에 적응하였다면, 하나의 행성에 오직 하나의 객체만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객체는 자기복제를 하지 않으므로 무생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진화하고 있으므로 또 다른 형태의 생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객체는 행성이 식기 시작할 무렵에 탄생해서 행성의 표면 전체를 1Km두께로 덮고, 40억년 동안 고착된 채, 행성을 홀로 지키며 우주를 바라보고 꿈을 키워왔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외로운 생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빅뱅(big bang)이 일어난 후 물질이 활발히 탄생하고, 다시 별들이 생겨나고 뭉치며 원시은하(原始銀河)가 생성되고 있을 때, 행성은 나선팔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고체화되지 못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성간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성운간(星雲間)의 온도는 6,000K 정도였고, 수소원자는 중성과 전리 상태로 병존했고, 밀도가 높은 영역에는 수소가 분자상태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어디에도 생명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까마득한 오랜 시간이 지나며 뭉쳐진 성운의 99.9%는 중심부의 태양이 되었고, 나머지 성운은 주변에서 휘돌다가 따로 뭉치며 작은 행성들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10억년이 지나 행성 표면이 다소 차가워졌을 무렵 그곳에서 하나의 씨앗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마그마(magma) 속에서 우연처럼 만들어진 씨앗은 철(Fe)과 마그네슘(Mg)에 여러 가지 복잡한 원소 성분이 절묘한 비율로 뭉쳐진 것으로 생명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마그마 성분들이 녹거나 요동치는 과정에서 흩어지는 반면, 이 씨앗은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지닌 듯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1억년 동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불과 7천만Km 떨어진 태양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며 유입된 어마어마한 양의 코로나(corona) 비(雨)가 내렸을 때 그 씨앗은 드디어 발아(發芽)하게 되었습니다.

싹이 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멈춰진 상태가 아니라 주변에서 이온화된 성분들을 흡수하며 그 크기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납작한 타원형으로 표면을 확장하고 활발히 원소들을 받아들여 몸체를 재구성하였고, 1만년이 흐르자 그 크기는 씨앗의 100만 배가 넘는 지름 10m 가량의 바위형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태양의 대규모 플레어(flare)가 있을 때면 그 몸체는 눈에 띌 정도로 성장을 하였고, 일억 년이 흐른 후에는 높이 100m 가량의 특이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가지가 두개 달린 버섯이나 우산의 모양이었는데, 갓은 비정상적으로 넓었고, 둥근 가지와 줄기의 표면에는 촘촘한 격자무늬의 칸이 쳐져 있었으며, 완벽한 검은 색이었기에 마치 투명한 어둠을 마주한 듯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자라고 있었지만 태양의 플레어(flare)가 없으면 자라지 않고 멈춰진 바위 덩어리와 마찬가지 이었으며, 우리의 기준으로 보자면 거대한 단세포로 이루어진 화석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깨어있다는 말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이 원시 우주 생물은 깨어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태양풍(太陽風, solar wind)이 불 때면 풍부하게 공급되는 전하 입자(플라즈마)를 표면 격자를 통해 흡수하고, 받아들인 그것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 깊숙히 내린 뿌리로 그 반응에 필요한 입자들을 흡수할 뿐이었습니다. 그 생물체는 교환활동이 없었고, 오직 흡수하여 압축하고 성장만 했습니다. 그리고 행성 유일의 생명체이므로 경쟁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환경의 압력도 상대적으로 약해서 한계점을 비롯한 기타의 어떤 정보도 확립하지 못한 채, 오직 성장만하는 나무와 같았습니다.

점차 태양이 안정되어가면서 상대적으로 덜 풍부해진 열원 때문에 충분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갓의 크기는 더욱 커지고 넓어졌고, 10억년이 지날 무렵에는 행성의 절반가까이를 덮을 만큼 거대해 졌습니다.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줄기부분은 사라지고 바닥에 붙어 고착된 균류의 형태로 변모되었으나 여전히 한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주변에 풍부한 광물을 조합하여 규산염(硅酸鹽, silicate)으로 외피를 덮으며 표면적을 확장하여 갔습니다.

다시 10억년이 지났을 때 그 외로운 우주생물은 지름 4800km의 행성 표면전체를 1Km 두께로 감싸고 있어 -마치 계란처럼- 생물 그 자체가 행성을 품고 있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생물은 그 표면적만해도 7.5×107 km²나 되는 너무나 거대한 생물이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만년을 두고 관찰해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기에 생물이라기보다는 행성의 표면을 구성하는 지각의 한 층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물의 나이가 40억년이 넘어섰을 무렵부터 조용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우주생물이 이유없이 깨어난 것입니다. 그 자각의 계기는 외로움 때문이었습니다. 40억년을 살아온 생물은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적인 화학변화는 더이상 생물이 활동을 멈춘 채 잠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격렬한 것이었지만, 생물 스스로는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그 외로움이 지시하는 대로 생물은 처음으로 태양쪽이 아닌 반대 방향의 우주를 바라보게 되었고, 1억년이 지나지 않아 우주를 관찰하던 생물은 가는 숨결 같은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외로운 우주 생물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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