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객지에서 생활을 하다가 잠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늘 함께 할 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외로움과 적막함에 묻혀있다보니 아이들의 나직한 웃음소리와 아내의 갸르릉 거리는 잔소리 조차도 사무치도록 그리워지게 되더군요. 집에 돌아왔을 때에 방글 방글 미소지으며 반기는 아이들이 그렇게 이뻐보이고, 김이 모락모락 나게 국을 뎁혀주는 아내의 손길이 한없이 정겹습니다. 물론 하루 이틀이 지나면 흥취가 덜하지만 곧 다시 떠나야하기에 가족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여겨 보게 됩니다.

그럭저럭 이삼일이 흐르자 슬슬 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하는데, 잊고 있었던 게 기억났습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제가 사용하는 휴대폰이 아르고폰(LG-LH2300)인데, 덕분에 상당한 오지에서 생활하면서도 LGT의 오즈(OZ)로 인터넷을 접속하고 책을 다운받아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문화생활을 한 가지 더 하고 있었습니다. 종종 시간이 날 때 근교의 좋다는 곳으로 가서 아르고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생각 날 때만 찍다보니 이곳 저곳 의미없는 풍경도 많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휴대폰에 대한 사양이나 리뷰를 살펴보지 않아서 카메라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구입했던 휴대폰 중에서는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남은 이틀의 동안 보관해 두었던 사진의 일부를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은파유원지입니다. 약 한 달 전에 갔던 곳인데 지금처럼 춥지 않고 포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산은 1899년 5월 1일에 일제가 강제로 개항시킨 항구도시로 그 당시 부산, 원산, 제물포, 경흥, 목포, 진남포에 이어 7번째로 개항을 했습니다. 일본이 옥구군에 속한 작고 한적한 어촌이던 군산을 개항한 것은 넓은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도 군산 시내에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으로 군데군데 일본식 건물들이 남아있습니다.


평야와 바다에 싸여있는 군산의 아쉬움은 숲이 별로 없다는 점이지만,
나운동에 있는 은파유원지로 빠져나오는 길은 숲의 터널을 이루고 있어 마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다만 겨울이라서 그런 멋진 풍경은 볼 수 없었습니다.


은파유원지는 군산 시내에 인접한 낮은 구릉의 울창한 수림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미제 저수지를 중심으로 무려 70여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 내에 조성한 국민 관광지로서 넓고 잔잔한 호수는 전국체전 때 조정경기장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오리보트를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입구에 차를 세우고 일방통행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무로 만들어진 호수를 건너는 아름다운 다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형물들이 많은데 밤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합니다.


평일이지만 주변에 주거단지들이 밀집해 있어서 가벼운 차림으로 운동나온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전국 어딜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줌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모두 모자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 있네요.


다리를 일부러 굽이치듯 꺾어놓은 덕분에 한결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다리의 옆으로 이어진 샛길로 빠지면 공연장이 보입니다. 모두 나무로 만들어서 그런지 정감이 갑니다.
뒷편에 살짝 보이는 것은 분수대인데 어둠 속에서 조명과 어우러진 물줄기는 환상적이라고 합니다.


여러 갈래로 길을 나누고 다시 물결처럼 일렁이게 놓인 다리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약간 흐릿한 호수에 비치는 그림자는 낭만적이며, 군데군데 야경을 위한 조명시설이 보이더군요. 사랑스러운 연인과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곳곳에는 이와같은 사랑체험봉말고도 사랑을 이루어주는 장치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런 곳에는 꼭 눈을 찌프리게하는 낙서들이 많습니다. 저렇게 세겨놓은 연인들치고 오래가는 경우 못봤습니다.




1908년 12월에 설립한 전북 옥구서부수리조합은 1990년대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농업진흥공사를 흡수하여 농어촌진흥공사가 되었고, 2000년도에 농지개량조합,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어촌진흥공사가 통합되어 농업기반공사를 설립하였다가 2005년에 명칭을 변경한 것이 한국농촌공사입니다. 농업수리시설 근대화의 첫걸음이 된 옥구서부수리조합은 군산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100주년 기념탑도 은파유원지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군산시와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시의 교류 3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입니다. 비문의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오.. 몰랐습니다. 고은 시인이 군산 출생이었군요.

군산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하루 십리길을 걸어다녔던 고은은 길에서 우연히<한하운 시초>를 줍게 되었습니다.
"한하운처럼 나도 문둥병에 걸려야겠다.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 발가락이 썩어서 떨어져 나가고...
그다음에 떠돌다가 한하운처럼 시 몇 편을 써야겠다. 이것을 결심했어."
당시 나병시인으로 유명했던 한하운시인의 시집을 읽고 밤새도록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문화적 충격을 받고 고은은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수상 후보로 거명되는 시인 고은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시인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외국의 저명한 문학가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파격의 연속이었던 시인의 삶이 빚어내는 보석 같은 시. 스웨덴 시카다 상 수상에 빛나는 그의 시는 미국, 호주 유럽, 몽골에 이르기까지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유럽의 세계문학전집과 세계시인전집 목록에 이름이 올라 있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적어도 17개 나라에서 그의 시를 읽고 있습니다.

자판기를 찾다가 입구 주차장 근처에서 고은의 시가 세겨진 시비를 발견하고는 몹씨 반가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은파유원지는 계절이나 밤낮에 따라 새로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눈으로 덮힌 설경도 멋집니다. 혹 가볼 기회가 온다면 꼭 연인과 함께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아르고폰에 2GB짜리 메모리를 넣어두었더니 한달 가량 적당한 화질의 사진들을 마구 찍었는데도 용량은 별 문제가 되지 않네요. 이번에도 한 달 정도는 객지를 헤맬 듯하니 미리 메모리 카드를 하나 더 장만해야 겠습니다. 어쨌든 휴대폰 한 대로 오즈(OZ) 서비스와 모바일북에 추억담기까지..알게 모르게 아르고폰과 동거하면서부터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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