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오래 살다보니 큰 맘 먹지 않으면 눈 구경 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며칠을 잠시도 쉬지않고 내려 무릎이 빠질 정도로 쌓인 눈을 보기란 더욱 쉽지 않는 일입니다. 몇 년 전에 거창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지겹도록 쌓이는 눈에 한이 맺힐 정도였는데, 막상 눈없는 겨울만 보내게 되니 겨울이 겨울같지 않고 허전하더군요. 올겨울은 거의 전라북도의 남원, 전주, 임실, 진안, 군산 등등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함박눈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18일 밤입니다. 일기예보에도 눈소식이 없었는데 밤하늘이 심상치 않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가로등 아래에 비처럼 쏟아지는 눈이 반짝이는데 거친 바람 때문에 눈오는 날 포근하다는 말이 무색해 집니다.


이렇게 소복하게 쌓인 눈은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오오~ 차량이 폭 파묻힐 정도의 눈입니다. 물론 북쪽 지역에 사는 분에게는 하나도 신기할 게 없겠고, 이런 장면이 짜증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오랜만에 보는 저에게는 감흥이 새롭습니다.
 

멀리 멀리까지 하얗게 덮힌 눈밭 위에는 여전히 눈발이 두껍게 쌓이고 있습니다.


나무는 무거워진 가지 때문에 축 쳐져있으나 보기에는 멋집니다.


별다른 흥취가 없는 풍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분명 북쪽에 사는 분일 겁니다.


한 밤 중이 되어도 가로등 아래 시리게 빛나는 눈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틀 사흘 그렇게 줄창 내리더군요.


어둡지만 눈은 스스로 빛을 내기라도 하는지 하얗기만 합니다.
늘 보던 사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반갑고 신기해 지는가 봅니다.
눈 내린 벌판을 강아지마냥 뛰어다니고 걸으며 며칠을 즐겼습니다.


군산의 매립지 방파제를 따라가면 거대한 십여개의 풍력발전기가 우뚝 서 있습니다. 작은 사진으로 보니 감각이 무디어 진듯 실감나지 않지만, 빙글 빙글 도는 거대한 날개짓은 장관입니다.


이날은 그냥 낚시를 하려는 동행들을 방파제에 태워주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 이곳에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던지면 금방 금방 올라오는 낚시 구경에 정신이 팔려서 추운줄도 몰랐는데 동영상을 찍다보니 손발이 심하게 떨리길래 엄청 춥다는 걸 알았습니다. 풍력발전기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눈도 뜨기 어려웠습니다.


12월 4일 오랜만에 부산땅을 밟았습니다. 은행잎이 차량을 따라서 휩쓸며 움직이는 것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뜨문 뜨문 굵은 빗방울도 떨어졌지만 젖지 않은 낙엽은 가벼운 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솜씨도 없는데다  걸으면서 찍은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네요. 날은 추웠지만 은행잎에 반사되는 노란 불빛은 왠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희안하게도 낙엽들은 흩어졌다가도 서로 서로 모이더군요.


그 동안 미뤄왔던 아르고폰 업그레이드를 했습니다. 서면의 LG 서비스센터인데 아가씨는 친절하고 환한 미소를 보여주더군요. 발수신에 이상이 있다니까 분해해서 이것 저것을 점검하더니 말끔하게 치료해 주었습니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만 찍을께요 하니까' 이렇게 얼굴을 가리시네요. ^^
한방에 신속하게 30분 서비스라더니 나중에 서울 쪽에서 확인 전화가 왔는데 서비스 시간이 30분이 넘었는지 안넘었는지를 물어보더군요. 여튼 업그레이드 이후에 인터넷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그간 아쉬웠던 여러 기능이 대부분 개선되어서 만족스럽네요.

일부의 사진을 이렇게 대략이라도 올리는 것은 사진을 통해 그곳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서 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내가 보기 위함이랄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을 찍으면 현상을 해서 앨범에 정리하고는 가끔씩 그것을 뒤적이며 지난 일들을 그려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는 거의 모든 사진은 하드디스크나 CD에만 저장하게 되네요.

오래 전에는 카메라가 귀해서 사진은 특별한 날에만 찍는 것이었고, 얼마 전까지는 의미있는 일을 담는 도구였지만, 이제는 모든 일상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 대부분이 여러 대의 최신형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 나도 아내의 눈치를 보며 쇼핑몰을 뒤적거리며 좋은 카메라를 사려고 마음먹다가도, 늘 들고다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포기를 했지만, 다행히 항상 나와 함께 해주는 친구 아르고폰이 똑똑하고 잘났기에 하루에도 신변잡사를 서너 장의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게 아르고폰은 그냥 휴대전화가 아니라 초고속 PC방이고, 세계최대의 사이버 도서관이며, 최고성능의 렌즈가 장착된 첨단 디카이며, 완벽한 휴대형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임과 동시에 전우주를 향한 실시간 로밍통화가 가능한 마이크로 통신기입니다.


갖고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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