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운명의 날(2012 Doom's Day) 1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들이 이 행성에 최초로 취한 조치는 보호와 연구였다. 은하에 유일하다고 해야 할 만큼 유기물의 천국인 행성이 혹시나 자신들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장비와 개체만으로 행성과 직접 접촉하여 연구와 보호 활동을 하였고, 연구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라도 철저하게 자원의 채취를 금지시켰다. 그들은 강력한 보호 속에서 만년 가까운 시간동안 행성에 대한 지질학적, 생물학적, 우주지리학적인 정보들을 수집했고, 다시 만년 동안 채취한 생물들의 샘플을 이용하여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그들은 이 행성과 가까운 두 개의 행성과 또 행성과 환경이 유사한 세 개의 위성에서 유기생물의 배양 실험을 하며, 인공적으로 유기물의 수명과 생존 범위, 번식능력 등을 조작하는 여러가지의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적인 수준이 뛰어난 그들이라고 해도, 이미 35억년 동안 유전적으로 고유한 행성환경에 적응하도록 각인되어 있는 생명체의 근본 시스템까지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생물은 오직 이 행성의 환경 - 중력, 온도, 자력, 일조량, 대기, 위성, 기조력, 토양 등-에서만 살 수 있도록 토착화되어 있기 때문인지, 아무리 유사한 상태의 행성으로 옮기고 비슷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도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일제히 유전적 고리를 잇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행성과 거의 동일한 환경을 지닌 행성을 찾아내거나, 지리적으로 비슷한 위치 -항성과의 거리, 공전과 자전 주기, 위성과의 거리나 기조력, 태양풍의 주기와 강도, 은하 공전 주기, 성간 물질들의 유입량 등등-의 행성을 선택해 이 행성처럼 테라포밍을 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귀하디귀한 광물들이 가득한 이런 행성의 조건을 단기간에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 한번이지만 그들은 모험을 하기도 했다. 행성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의 다세포 생물이 지닌 유전적 장점과 이 행성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성 생물만이 가지는 특성인 '견고한 분자구조'를 적절히 조합한 신종의 생물체를 만들어 배양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충분한 실험을 거친 후에 행성의 일부 지역에 직접 방목시켰던 것이다. 이 생물은 석영과 산화물과 키틴(chitin)을 기본 재료로 사용하는 구조의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유기체에 비하여 활동성은 떨어지지만 무기성 생물의 특성을 이어받았기에 상대적으로 긴 수명을 지니고 있었다. 다 성장한 신종 생물의 크기는 그때까지 행성에 존재하던 어떤 생물보다도 거대한 50cm~1m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것은 그들의 기대대로 큰 문제없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양하게 변형된 새로운 패턴의 생물들을 지역의 환경에 맞도록 개발하여 행성 곳곳에 파종하였다.

그런데 이 신종생물의 확산을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던 중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신종생물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토종 생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종 생물은 기본적으로 광합성과 흡입 기관을 통해 무기물로부터 양분을 흡수하여 생존해 나가는 형태로 만들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몇 몇 개체에서 변화가 시작되더니 토종 생물을 흡수(포식)해서 양분을 취하는 형태로 돌변해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런 돌연변이 형태의 개체가 급증하더니 천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더 이상 기본 형태의 신종 생물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만년도 지나기 전에 변형된 신종 생물은 해양 전역에서 무서운 속도로 개체수를 늘려버린 상태가 되었으며, 이들에 의해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에서 층을 이루고 번성하던 단세포 생물의 75% 가량이 잡아먹혀서 멸종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도 많은 방법을 통해 이것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무수한 숫자의 생물들을 포획한다거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 아니었다. 그들이 감소시키는 신종 생물의 개체수보다 늘어나는 개체수가 월등히 많았다. 게다가 점점 변형된 생물들이 기본 모델과 달리 크기마저 작아지면서 토종 생물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선별적인 포획은 더욱 어려워졌고,  무리하게 멸종시키려 할 경우, 자칫 토종생물 전체의 생존까지 위협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들은 섣부른 자신들의 실수를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멸종직전까지 내몰렸던 토종생물들이 어느 날부터 변형된 신종 생물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꼭 공격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처음에는 광합성을 하는 토종 생물들이 신종 생물의 표면에 달라붙어 기생(parasitism)하는 정도의 현상이 관찰되었고, 몇 세대가 지나자 몇 종의 토종 생물들은 아예 신종 생물 몸체에 고착(sessile)하여 사는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고, 점점 신종 생물에게만 고착해 사는 생물의 종류가 늘어났다. 그리고 다시 몇 세대가 지나자 놀랍게도 신종 생물에게서 새로운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들은 자체적인 광합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양분을 섭취하는 기능마저도 사라져, 오직 자신의 몸에 고착된 유기생물에게서 영양분의 일부를 얻어먹고 사는 공생(symbiosis) 관계로 발전해 버렸다. 원래의 설계된 것은 동물성 생물이었는데, 점차 행성의 환경에 적응하며 토착화하더니, 결국에는 개성과 활동성이 완전히 사라진 원시 지의류(lichen)로 퇴화해 버렸고, 그마저도 이후에 속속 등장하는 행성 고유생물에 의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개입이 행성의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줄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다시 전혀 다른 일의 시발점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훗날의 일이지만 토종 유기 생물들은 놀라울 만치 주변 정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일억 년도 지나지 않아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던 신종 생물의 모든 정보를 흡수해서, 스스로 새로운 생물로 진화하는데 필요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들이 만든 신종 생물은 퇴화에 퇴화를 거듭하더니 유전적인 정보를 토종 생물들에게 고스란히 빼앗긴 후에 전멸해 버렸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던 활동성과 조직 구조와 번식에 대한 유전코드를 축적하고 있던 여러 생물들은 그 코드를 환경에 맞게 변형시키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더니, 마침내  4억년 후에 폭발적으로 새로운 생물들을 탄생시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들의 실패한 시도(failed experiments)에디아카라 동물군(Ediacara fauna)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화석이 되어버렸지만, 행성 생물들에게 커다란 유전정보를 제공하여 캄브리아기의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분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국 그런 실패 아닌 실패를 경험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존과 채취, 즉 보존을 우선하면서 유기체들의 생존과 번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자원만 채취한다는 것이었다. 행성을 발견한지 3만년 만에 겨우 행성 진로에 대한 문명체 연합의 행동 방향이 결정되자, 지금껏 그 결정을 간절히 기다려 왔던 문명체들에게 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행성에서 채취한 자원을 가공 정제하기 위한 대규모의 시설은 행성과 38만km 떨어진 곳에서 공전하고 있는 위성의 내부에 만들었고, 행성계의 최외곽에는 문명의 수도로 자원을 전송하기 위한 고속도로 게이트가 건설되었다. 이제 우연히 발견된 하나의 행성 덕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고, 그 덕분에 그들은 영원불멸에 가까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5억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은하의 회전과 별들과 블랙홀의 관성을 이용하는 새로운 중력항법을 개발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탐사 영역을 이웃 은하까지로 넓히며 그곳에 존재하는 고유한 외계 문명체와의 만남도 이룰 수 있었다. 탐사의 목적은 과거처럼 자원 탐색이 아니었고, 개체의 종결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좇기는 긴박한 상태도 아니었다. 이제 그들의 탐사는 오직 순수한 우주애와 그를 실현하기 위한 학문적인 접근일 뿐이었다. 여러 은하의 문명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알게 된 사실은 어느 은하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생명체는 무기성 생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은하와 마찬가지로 유기성 생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일부의 원시 행성에서나 살고 있으며, 그 존속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할 만큼의 광물적 진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부족한 자원 때문에 충분한 진화를 이루지 못한 이웃 은하의 문명들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유한한 수명 문제로 외계 은하로의 항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선명하게 완전체로 성장한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또 자신들을 구원해줄 선지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아낌없이 자신들의 정보를 이웃 문명에게 전수해 주었고, 수억 년 가까이 수집하고, 연구하고, 보완해 왔던 유기생물들의 샘플들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년 동안 은하 곳곳을 신중하게 탐사해서, 만 개의 행성을 후보지로 선택하였고, 다시 검토에 검토를 거듭해 천 개의 행성을 최종적으로 선정하고는 그곳에 일제히 생명의 씨앗을 심었다. 십만 년이 지나자 그 중의 백 개 행성에서 만족할 만한 발아가 이루어졌고, 다시 십만 년이 지나자 열 개의 행성에서 복잡한 상태의 생물들이 자연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억 년 후에는 3개의 행성에서 유전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었던 유기생물들이 자연 진화를 하며 번성하였고, 그에 따른 효과를 증명하듯 거대 산성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곧 우주의 많은 은하에서는 자원을 만드는 유기물의 씨앗이 뿌려질 것이고, 20억년이 지나지 않아 전 우주는 기아(飢餓)가 없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 2012년 운명의 날(2012 Doom's Day) 3편으로 이어집니다.
- Ediacara fauna를 참고했으나, 이 포스트는 SF이므로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비과학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자  (21) 2009.01.31
인류 진화, 그 숨겨진 이야기  (47) 2009.01.27
우주속 생명체의 목적은?  (17) 2009.01.18
2012년 운명의 날(2012 Doom's Day) 3  (46) 2009.01.02
2012년 운명의 날(2012 Doom's Day) 1  (16) 2008.12.31
태초의 우주 전쟁  (18) 2008.12.29
우주 속 지구의 문명 지수는?  (42) 2008.12.27
외계 문명과의 충돌 그 이후  (26) 2008.12.23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