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만 알고, 우리가 전부인 우주를 살아 왔습니다. 약간 외롭기도 하고, 한 편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을 자신감을 충분히 얻지 못했으므로, 다른 존재와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긴 시간을 둔 예정된 만남이 아니라 뜻밖의 갑작스런 조우라면, ‘최초의 접촉’이 아니라 ‘근처에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여러 파장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며, 사회와 종교, 정치 등에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외계의 다른 생명체의 존재 증명을 넘어 문명과 문명의 직접적인 만남은 우리 모두를 깊은 혼란에 빠트릴 수 있으며, 우리가 외계문명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문을 받거나, 강제적인 접촉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호기심은 경계와 두려움이 되어 우리 모두를 걷잡을 수 없는 무질서 상태로 몰아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인류는 작은 갈등과 공포만으로 쉽게 이기적이고 추악한 상태가 되어 버리곤 했습니다. 집단속에서 묘하게 안정감을 찾던 군중들이 막상 무작위적인 위험이 발생하면 개인의 생존과 안전이 최우선시 되며, 집단은 순식간에 완전한 무질서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사건을 종종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만큼 나 이외의 것을 믿지 못하고, 나를 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각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혹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랜 옛날 어떤 존재들이 우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우리의 인지력과 지식이 아직 부족하여 낮선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크지 않았고, 그 두려움에 대응하는 수단도 단순하였기에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존재들 사이에 이루어진 만남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각력이 발전하고 문명의 이기들이 풍성해진 지금, 우리는 그런 것들을 통해 더 쉽게 외계의 문명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이기들이 우리가 이계의 존재와 접촉하는 것은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백만 년을 진화했음에도 두려움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고, 두려움에 대응하는 방법도 나아지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외계와의 조우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문명의 이기들을 동원해서 두려움의 대상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수많은 신생문명과의 접촉을 이미 여러 번 경험한 탐험가들이라면, 결코 우리에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의 문명이 그들을 만족시킬 만큼의 수치에 도달할 때까지는 접근을 피할 것입니다. 문명이란 것은 단순히 기술발전의 정도만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 기술, 사회 구조, 문화 등에 대한 발전과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문명의 주체가 그런 것에 의하여 얼마나 삶이 풍요롭고 안정되는가 등까지 고려해야만 합니다. 또 문명 지수는 주어진 환경에 대응하여 적응하며 극복하는 정도와 그 속에서 개체와 집단이 느끼는 전체적인 삶의 양상을 측정하는 척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조화보다는 정복과 파괴를, 안정보다는 도전과 격정을, 풍요보다는 쟁취와 보상을 더 갈망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만 년 전으로 돌아가 우리의 조상들과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문명에 대한 원시적인 개념과 부족한 인지력과 지식, 불안정한 정신상태 등에 의해 강력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결코 그들과의 원활한 접촉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한 문명을 이룬다고 해도, 우리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문명 지수의 차이를 보이는 문명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경우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와 만나게 될 최초의 문명은 우리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문명의 큰 격차가 없는 외계 문명'이 될 것입니다.

굳이 접촉이 가능한 문명지수의 격차를 시간단위로 표시해 보자면 ‘천년에서 오천년 사이’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년 이하의 문명 격차라면 기술적인 문제로 서로 아주 가까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울 것이고, 오천년 이상이라면 그들은 우리와 접촉할 동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문명은 발전할수록 지식과 기술이 누적되고, 그것을 기록하고 활용하는 기술도 발전하게 되므로, 점차 더 큰 가속력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연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그러한 기술과 지식을 제어할 수 있는 수학과 사상, 도덕적인 철학이 뒤따르지 못하면 반드시 자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것을 극복하고 우리보다 오천년 이상 발전한 문명이라면, 이미 문명을 다루는 과정에서 얻은 정신적인 성숙의 차이로 인해 우리와는 격이 다른 상태에 이르러 버렸을 것이기에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과 척도도 달라지게 됩니다. 지나친 격차를 지닌 문명은 우리와의 만남에 대한 '가치'와 '동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다른 문명을 찾아 나서지 않는 한, 우리가 만나게 될 문명은 지나치게 발전하지 않았거나, 최소 우리보다 천년 이상 발전한 문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외계로 나아가 이웃 항성을 탐사하는 데는 앞으로도 천년 이상 동안의 시행착오와 지식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술적인 진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도덕적인 성숙이 병행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멸종한 이백이십오억 삼십만 번째의 생물이 될 것입니다.-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를 방문할 기술력을 지닌 문명이라면, 우리가 그 기술력을 따라잡는데 걸리는 시간만큼의 문명 지수의 격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은하에 존재하는 문명의 숫자를 감안한다면  우리는 외계 문명과의 접촉이 수백년에 한 번 이상,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식적으로 수천 년 이내에는 다른 외계 문명과 접촉한 적이 없으며, 다른 문명이 존재한다는 어떠한 물리적인 증거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론해 볼 수가 있습니다.

1996년의 스타트랙 극장판인 First Contact에는 역사를 변경하려는 기생 외계 지성체인 ‘보그’를 추적해 과거로 간 엔터프라이즈호 일행이 원래의 역사대로 지구에서 최초의 외계문명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지구의 우주선이 발사되지 못하면, 외계 문명의 우주선이 지구 근처를 비행하면서도 원시적인 문명에 별 관심이 없어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보그를 물리치고 과거의 과학자가 만든 우주선이 무사히 우주를 비행하고, 그의 광속비행 흔적에 놀란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므로 지구 최초의 외계문명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외계 문명과 만날 수 없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위의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그들의 눈길을 끌만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수준에서 보는 우리는 아직 뚜렷한 문명에 도달하지 못한 우주에 흔하게 널린 외계 생명체에 불과하고, 인정할 수 있는 문명이라고 해도, 여전히 선명하지 못하고 정제되지 않는 불안정한 문명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우리와 접촉한다면, 그것이 우리를 혼란으로 몰고 가거나 자멸로 내몰 수도 있으므로, 그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보다 천년 이상을 앞선 상태라면 앞서 말했듯, 이미 그 문명을 제어할 수 있는 도덕성도 겸비하였을 것이 당연하므로, 자신들로 인해 한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그들은 우리를 발견했고, 우리 중의 일부 개체나 단체와 접촉을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그것이 우리 문명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장치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공연하게 그들과 만났다고 떠벌리고 그들의 존재 가치를 왜곡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사실 그들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비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두려움으로 인해 막혀 있는 지성이 눈을 뜨고, 언젠가 일부 개인들의 깨달음이 집단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면, 마침내 그들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베르베르의 말처럼 우리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지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지각할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에게만 접촉을 시도해올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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