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사상가인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의 지난 20년간 미래 예측은 꽤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는 80년대 후반에 이미 90년대에는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1998년에는 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예견을 하였습니다. 그가 15세 때 개발한 통계 소프트웨어는 IBM사의 연구진에게 사용 되었고, 컴퓨터 기술이 조악하던 1976년에 이미 인공 지능 기술을 사용하여 시각장애인을 위해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계를 발명할 정도여서 에디슨의 적자(嫡子)라고도 불립니다. 커즈와일은 최근에 다시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5년 이내에 태양광 에너지가 화석 연료에 못지않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고, 10년 이내에는 마음껏 먹어도 비만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약이 개발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5년 내에 수명 연장속도가 노화 속도보다 빨라지고, 20년 내에는 모든 에너지를 청정 원료로 생산하게 될 것이고, 21세기 중반에는 유전학, 생명학,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지며 인간은 불멸에 가까운 장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 출처 : Gina Miller

또한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인공지능과 정보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을 분류하는 독특한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문명 1기는 정보가 원자구조에 있고, 2기는 DNA에 있으며, 3기는 신경 패턴(뇌)에 가지고 있고, 4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현재 3기와 4기의 중간에 있습니다. 문명 5기에 이르면 우리는 뇌에 축적된 지식을 더 크고 빠른 역량을 갖춘 기술과 융합하게 되는데, 위의 미래 예측에서 말하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점과 일치하는 듯합니다.

커즈와일의 문명 분류가 정보 처리 능력에 의한 것이라면 칼 세이건(Carl Sagan)은 커즈와일 이전에 정보의 양으로 문명의 수준을 분류하는 방법을 고안하였습니다. 칼 세이건의 분류법으로 문명을 분류하면 정보를 기록하지 못해서 정보의 축적이 어려운 A형인 원시문명에서부터 우주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는 최후의 Z형까지, 한 문명이 보유한 정보의 양으로 문명의 수준을 세밀하게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수만 년을 A형 단계에 머물던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면서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C형에 도달했고, 그로부터 불과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지구의 문명은 0.7H 단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정보 총량은 109비트이고 원시시대는 106비트인데, 칼 세이건은 1973년 당시 전 세계 도서관에 있는 책의 평균 페이지 수와 페이지 당 평균 글자 수, 사진과 그림, 영상정보를 합해서 현대문명이 가진 정보의 총량이 대략 1013비트라고 계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인류가 외계문명과 접촉할 수 있는 시기는 문명이 우주여행을 위한 정보를 완전히 습득한 1.5J~1.8K 단계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문명은 매 단계마다 이전의 단계보다 훨씬 빠른 정보 습득 능력과 우수한 계산 능력을 보유할 것이지만, 기준이 되는 정보 총량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로 0.7H 단계의 현재 문명이 1.5J에 도달하려면 최소 수백 년 이상이 걸려야 합니다. 아마도 인류가 수천억 개의 은하를 모두 지배하는 최후의 문명 단계에 도달하려면 앞으로도 수백만 년이 더 걸려야 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문명에 대한 분류 방식은 커즈와일이나 칼 세이건 보다 이전인 1964년에 러시아의 물리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세프(Nikolai Kardashev)에 의해서 처음으로 고안되었습니다. 그는 외계로부터 날아온 라디오파 신호를 분석하면서 각 단계의 문명은 고유한 형태의 복사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를 통해 외계 문명을 찾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에너지의 사용량에 따라 외계문명을 세 단계로 분류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던 것입니다.

즉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그들 역시 에너지를 사용할 때(열원을 일로 바꿀 때), 열원을 100%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 없으므로, 반드시 엔트로피가 열에너지 형태로 방출되면서 문명마다 고유한 사용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방출하는 복사에너지를 분석하면 그들 문명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문명의 기준 자체를 에너지의 생산(소모) 총량에 두는 분류법의 지수를 카르다세프 척도(Kardashev scale)라고 하며, 카르다세프 척도로는 문명을 3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 Gina Miller

I 단계 문명
I 단계 문명은 하나의 행성에 쏟아지는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지구의 경우 태양으로부터 약 1.74 ×1017W(174페타와트1) 정도의 에너지를 받는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원래 카르다세프는 1964년 당시의 지구 기술수준이 I 단계 유형과 유사하다고 했으나 당시의 에너지 량을 수치로 환산하면 약 4 ×1012W정도로 기준에 미치치 못한 상태였습니다. 문명이Ⅰ단계 수준에 도달하면 행성전체를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되는데 지금도 우리는 그에 한참을 못 미치고 있습니다.

1973년 칼 세이건은 현재의 문명수준을 좀 더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지수가 증가할 때마다 소수점 이하 자릿수를 하나씩 증가시켜서 문명의 단계를 세분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즉 에너지 소모량이 1016와트인 문명을 1.0 단계로 잡을 경우, 소모량이 1017와트면 1.1 단계, 1019와트면 1.3 단계로 분류하는 식입니다. 그 결과 칼 세이건은 당시의 지구 문명이 약 0.7 수준이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생산된 에너지를 기준으로 1973년의 문명 단계를 계산해 보면, 에너지 생산량이 8.2테라와트로 카르다세프 척도로는 약 0.69 정도가 됩니다. 칼 세이건이 계산한 0.7 수준은 1989년이 되어서야 도달하였습니다.

아무튼 칼 세이건이 제안한 방식의 카르다세프 척도는 에너지 생산량(소모량)이 기준의 10배가 될 때마다 0.1씩 증가하므로, 문명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서는 에너지 생산량이 100억 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I 단계 문명의 에너지 생산량이 1와트라면 II 단계는 100억 와트가 되는 것입니다. 지구의 1900년 에너지 생산량은 0.67테라와트(연간 500 mtoe2)로 카르다세프 척도 0.58이었고, 2004년은 14테라와트(연간 10,600 mtoe)로 0.71수준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성장을 이룬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문명은 겨우 0.13정도 밖에 발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추세로 성장이 계속되고 에너지 생산의 증가치가 매년 1~2% 정도만 유지된다면 계산상 앞으로 100~200년 후에는 'I 단계의 문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누적하고 활용하는 기술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커즈와일의 예측대로 앞으로 수년 이내에 획기적인 에너지 활용 기술들이 개발된다면 우리는 I 단계 문명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II 단계
I 단계가 수동적으로 행성 에너지를 이용하는 단계라면 Ⅱ단계는 항성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단계로 별이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100% 끌어들여 사용하는 단계입니다. 실제 태양에서 최대한 뽑을 수 있는 에너지는 3.86 ×1026W인데 카르다세프 척도에서는 II 단계의 에너지 생산량을 4 × 1026W로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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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단계에서는 우리 태양의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므로  다른 별의 핵융합반응을 인공적으로 제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사히 I 단계의 문명에 도달하고 꾸준히 발전을 이어간다면 다시 Ⅱ 단계로 진보하기까지 약 1000~5000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에너지 개발과 제어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수많은 위험을 피해서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사히 넘기기만 한다면 다음 단계까지는 오직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III 단계
III 단계의 문명은 은하에서 뽑아 낼 수 있는 에너지를 100% 이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에너지 소모량은 대략 4 ×1037W 정도입니다. II 단계의 문명은 가까운 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후에 점차 주변의 별을 식민지화하며 문명을 확장시켜 나갈 것입니다. 물론 확장하지 못하면 멸망할 것이지만 이 수준에서는 당연히 공간을 극복하며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이때 II 단계에서 에너지 소모량이 백억 배인 III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100만 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은하의 지름이 10만 광년이므로 문명의 확장 속도는 거의 광속의 5~10%에 가깝습니다.

카르다세프 척도대로라면 III 단계 문명은 매 순간 은하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사용하게 되므로, 이 단계에 접어들면 우리 은하는 모든 에너지를 문명에 빼앗겨 빛을 잃은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명은 에너지의 소모량만을 끝없이 늘리는 것이 아니므로, 카르다세프 척도의 III 단계는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 정도의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은하의 에너지 총량을 표면적인 발생량만으로 따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초신성이 폭발할 때에 10초 동안 나오는 에너지는 1046줄(joule3)정도가 되는데, 이것만으로도 III 단계의 문명 1000개가 1년 이상이 운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III 단계에 이른 문명은 빛나는 별보다는 은하 중심과 곳곳에 숨어있는 블랙홀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기술이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III단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문명은 0.7 정도의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카르다세프 척도에서는 I 단계부터를 문명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우리 수준은 문명의 '0 단계'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에너지 생산량이 대략 1.5×1013W 수준이므로, 지금보다 만 배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수준이 되어야만 I 단계 문명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의 대부분을 광물에서 얻는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우리는 200년이 아니라 2만년이 흘러도 I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에 화석 에너지 사용으로 야기된 문제들 때문에 문명은 종말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비록 환경의 위험을 피한다고 할지라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100년 후에는 어차피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 페타와트(Petawatt)는 10의 15제곱 와트, 즉 1000조 와트.
  2) mtoe(million tones of oil equivalent)는 석유 백만 톤이 가지는 에너지.
  3) 줄(joule) : 1줄은 1와트를 1초 동안 내는 데 필요한 힘.



-카르다세프 척도는
위키백과와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를 참조하였습니다.
-인류 문명의 낙관적인 미래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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