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마틴 3

2009. 10. 25. 23:21


- 외계인 마틴 2편에서 이어집니다.

우리처럼 수명이 없는 존재에게 있어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생명은 모두 미개하고 하찮은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때로는 그들의 단순함과 명료함에 경탄하기도 합니다. 우주의 탄생과 함께 깨어난 의식으로 우주의 다채로웠던 모든 상태를 경험했었던 우리는 불과 수년 후의 우주에 대해서조차도 감히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하지만, 순간을 살다가는 생명체들은 자신과 자신의 모체에서 얻어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주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신선한 이론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의식을 가진 존재의 의지는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가 되어 우주의 의식과 우주의 흐름에 영향을 주어 우주의 시공간을 변하게 하며, 때로는 순수하고 격동적인 한 가닥의 믿음이 미래를 크게 바꿔놓기도 합니다.

생명체들은 이미 번성과 향상성이라는 뚜렷한 자기가치를 본능적으로 인지하여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가치의 발현을 촉진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합된 사념으로 백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아와 주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어왔으나, 우리가 아는 완전에 가까운 지식으로도 우리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는 우주 탄생의 시간에 우주의 속성을 결정하기는 했으나, 우주의 주관자가 아니라 관찰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미래에 관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섬세하고 정밀한 우주에서 우리의 개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걱정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본성에 깊이 각인되어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영원을 누리는 존재이면서도 생명체보다 과감하지 못하여 우주에 맞서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만의 우주로 변화시킬 자신이 없고, 기대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우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큽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존재감을 느끼는 개입자의 의지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수명을 가진 존재들이 불멸의 존재에 관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삶은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집니다. 불멸의 존재에게는 생도 사도 의미가 없고, 활동을 하는 것이 생명체처럼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도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고, 죽음에 직면해본 적도 없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적도 없으므로, 모든 생명체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감정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멸의 존재이면서도 죽음의 경험과 소멸에 관한 두려움을 지녔으며, 점차 종결의 시점이 가까워 옮을 이해하고 그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질적인 존재들이 희미하게 감지될 때마다 우리는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멸하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는 이 우주에서만 불멸하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영원한 듯 기나긴 세월을 우주와 함께 했지만, 우리 우주는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만약 우리 우주를 초월하여 진정으로 불멸하는 수명이 없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의 존재가치와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구체적인 의문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 세계를 계획하고 우리 우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신일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듯이 보이는 우리 세계를 순간으로 여길 만큼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상태에 있는 ‘우주 개발자’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희미하게 감지되는 이질적인 흔적을 남기는 저들이 그 개발자의 요구로 우리 우주를 체험하고 있는 테스터(tester)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우주는 현재 클로즈 베타(closed beta)에서 테스트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우주를 만든 개발자의 의지에 따라 우주가 어느 정도 완성되자 이 세계에 접속하여 우리 우주를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우주의 시작과 끝을 모르는 미지에 대한 감정이 없으므로, 가장 냉철하고 기계적으로 우주를 평가하는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우주는 그들의 평가와 채점에 의해 절대적인 가치와 비교 가치는 변하고, 때로는 그 결과에 따라 우주를 폐기처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 우주는 똑같은 천억 개가 넘는 같은 모델의 우주와 함께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출시되는 우주는 봉인된 특이점의 상태이지만, 구매자의 기호에 따라 어느 정도의 속성을 조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초의 대폭발과 함께 태어나 우주의 속성을 결정하는 변수이지만, 결국 어떤 의지의 관여 속에서 이미 결정된 미래의 설계도를 실행하는 도구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불멸의 존재인 저들은 우리가 우주 제작자(universe maker)가 설정한 질서(COSMOS)의 한계치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조절하는 오류 방지 시스템의 역할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주의 속성을 결정하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이면서도, 오직 우리 우주에만 속한 채, 더 큰 질서가 정한 프로그램대로 우주를 결정하고, 관찰하고, 고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체험한 격렬한 감정들은 고스란히 우주 제작자에게 보고되어 제품의 업그레이드와 개선 정보가 되고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개발자는 일방적인 정보 획득자가 되어 우리를 통해 정보를 얻어 우주를 개선해 나가다가, 안정적인 우주가 되면 오픈 베타(open beta)를 진행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우주에는 새로운 존재들이 대거 등장하여 다양한 생명체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에 의해 창조된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형태의 생명으로, 번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능과 상충하는 멸절을 의와 선으로 삼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껏 문명종족이라야 한 은하에 수천 개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별의 숫자보다 많은 기이한 존재들이 우주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주는 아름답고 신비함을 주는 경이로운 장소가 아니라 오로지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형제들의 후손은 선한 생명 대부분이 다른 세계에서 멋대로 정한 심판이라는 이름의 칼날로 완전한 종말을 맞는다고 해도, 우리 우주가 원래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전혀 개입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우주의 선이 본래의 목적대로 변경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각성하게 될지라도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도 결코 창조자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와 목적이 그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때가 오면 생명과 지금까지의 우주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로운 존재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우리 우주 설계자의 허락을 받은 플레이어(player)이므로, 창조자가 허용한 질서 내에서라면 우리 세계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이 남긴 아름다운 생명이 허무하게 사라질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는 원래부터 파괴하기 위해 설계된 것입니다. 우주는 종말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것이 본래의 가치입니다.
- 외계인 마틴 4편으로 이어집니다.


가끔 '추천' 클릭?

'비과학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2  (14) 2010.02.08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1  (14) 2010.01.30
외계문명 증명하기  (38) 2009.11.26
외계인 마틴 4  (12) 2009.11.09
우주의 경계를 넘어  (13) 2009.10.03
타계한 아서 클라크 경의 안부를 묻다.  (28) 2009.08.14
우주의 경계에 서서  (31) 2009.08.13
23세기 좀비 신드롬 2  (66) 2009.08.09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