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3편에서 이어집니다.


문명과 문명이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차분하고 냉철해진 의식으로 잡힐 듯 말 듯 한 비밀에 대한 사념을 이어갔다. 생명체의 활동을 분석해 보면 자주성을 가진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괴뢰(傀儡)적인 움직임이라는 뉘앙스가 풍기고 있다. 그것은 생명 활동이 다분히 의도적인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성을 가진 존재들은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자유의지 아래서 의식을 유지하는 시간보다 잠을 자는 등의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두뇌의 상당부분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나 생각, 교감하는 것에 사용되고 있다. 생명체는 스스로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지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물론 생명체라는 도구의 역할은 우주를 노화시키는 요소를 상쇄시키는 것이리라. 생명체의 활동은 저울의 추와 같아서, 적은 무게만으로도 반대편에 매달린 거대한 별들을 들어 올려 저울의 평형을 유지한다. 블랙홀(black hole)처럼 엔트로피를 급격히 증대시키는 요소가 발생하면, 그 힘의 대척점(對蹠點)에는 반드시 그 힘을 상쇄시킬 수 있는 만큼의 새로운 생명체나 문명이 발생한다. 그리고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명체의 의식 활동은 화이트홀(white hole)같이 특별난 작용을 하는 구조물을 생성해 블랙홀이 끌어 들인 에너지를 우주의 다른 영역에 분사시키고 있다. 생명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웜홀(worm hole)인 것이다. 그래서 우주에는 블랙홀  만큼이나 흔하게 생명체의 군집이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생명이라도 그에게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와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명과 문명이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체감 시간으로 백만 년이 넘게 생각하고 있으나,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발상이 매우 진취적인 방식으로 질문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매순간의 사념이 시스템을 통해 종족들에게 전달되면서 정체되었던 공동의 사고 영역에는 거대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그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백억의 종족은 그의 생각을 엿들으며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일제히 침묵하고 있었다.

문명이란 생명체가 충분히 역할을 감당해 내고, 그 역할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문명은 다른 생명체의 군집과 다르게 조금 더 보장된 자유 의지를 누린다. 어쩌면 조물주는 너무나 정교하게 맞물려 계획된 대로 돌아가는 우주에 미확정적인 요소를 추가하기 위해 문명을 계획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힘의 1조배가 되는 막강한 활동력을 지닌 생명체가 블랙홀의 대척점에만 고정된 채 정해진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장소로 이동한다면 그 만큼 우주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변수는 없을 것이다.

아! 그렇다. 문명과 문명이 만난다는 것은 1조배의 힘과 1조배의 힘이 부딪치는 것이다. 문명 하나의 무게는 블랙홀 하나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른 문명과 만나는 순간, 거대한 은하의 무게를 상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문명끼리의 자유로운 만남을 제한하지 않으면, 두 개의 문명이 아니라 수십이나 수백 개의 문명이 만나 전 우주를 위기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순간 우주에 퍼진 그의 종족들은 벅찬 환희에 휩싸였으나, 여전히 침묵하며 그의 생각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들이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은 자신들이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에서 그것을 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해답이 이미 선조들이 정리한 정보 속에 숨어있었는데, 그들은 이 광대한 우주에서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구한 해답을 통해 그들은 이미 나머지 절대 비밀의 해답 또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짐작대로 숨겨진 차원과 종족의 연계성은 하나의 문제였다.

노련한 조물주는 테이블 위에 24억 9천 5백만 73번째 주사위를 던지며,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형태의 우주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미 수없이 반복하며 다듬어 왔던 생명체라는 기교를 부려, 독특하며 아름다운 세계가 꾸며지도록 계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생명체를 통해 최소한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했는데, 바로 그들 종족이다. 우주를 구동하는 힘은 숨겨진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가진 의지가 태초에 주사위를 던진 힘에 의한 것이다. 숨겨진 차원은 절대자의 가벼운 손짓에서 비롯된 불변의 지속되는 힘이며, 생명체와 문명은 그 힘에 숨어있는 던지고, 거둬들이고, 팽개치고, 휘돌리고, 당기고, 감는 기교인 것이다. 그들 종족이 의식적이거나 우연, 혹은 불의로 만난 문명은 이미 고유 역할이 종결되어 소멸이 예정된 힘(기교)이며, 그를 수행하는 것이 그들 종족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는 문득 생각을 멈추고 사막 한 가운데에 멈춰 섰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 종족 모두가 일순간에 여행을 중단하고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 종족은 서로의 생각이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일치되었다. 중단! 그들을 살아가게 했던 원동력,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을 쉬지 않고 생각하게 했던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종족이 아니라 온 우주에 퍼져 있으나 하나의 생각, 같은 생각, 같은 의식을 가진 존재,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우주만큼 거대한 존재로 변해 있었다. 백억의 사념이 통합되는 순간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멈춰선 그대로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본래의 역할을 중단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 거대한 사념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우주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우주 최초로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역 은하의 한 변방에서 시작된 문명이 불과 6광년 떨어진 곳에서 막 대기권을 벗어날 기술을 이룩한 다른 문명과 만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내 우주 곳곳에서는 문명끼리의 만남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하여 우주는 극단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며 활력이 넘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때 그들이었던 그는 알 수 있었다. 곧 우주는 원시의 점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어떤 개입도 간섭도 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어쩌면 이 또한 태초에 절대자의 기교 아래 계획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이다.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마침
-그림출처 :
http://exper.3drecursio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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