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Metropop Song Festival을 통해 처음 알려져서, 현재까지 56개국 이상에서 26개 이상의 각기 다른언어로 번역되었고, 3천만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MBC가 주최했던 서울 국제가요제에 게스트로 초대 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도 Anak은 금방 번안되었고, 30년의 세월을 두고 수십명에 의해 다시 불려지고 음반에 수록되고 있다. 그 중에서 처음 번안곡을 실었던 조경수의 '아들'과 비교적 최근에 부른 이용복의 '아들아'등 일곱 가지 버젼을 이번 포스트에서 들어보려고 한다. 작년에 Anak의 베트남 버젼인 Luu Bich의 Con Yeu를 올리고 일년 반동안 폴더 한구석에 밀려있었지만, 약간의 자료를 근거로 시작해본다.
- Freddie Aguilar
Nu'ng isilang ka sa mundong ito
눙 이씰랑 까 사 문동 이또
Laking tuwa ng magulang mo
라낑 뚜와 낭 마굴랑 모
At ang kamay nila ang iyong ilaw
앝 앙 까마이 닐라 앙 이용 일라우
At ang Nanay at Tatay mo'y
앝 앙 나나이 앝 따따이 모이
'Di malaman ang gagawin
디 말라만 앙 가가우인
Minamasdan pati pagtulog mo
미나마스단 빠띠 빡뚤록 모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꿈이 이루어지는걸 보았지
우리의 꿈이 실현된것이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지
At sa gabi'y napupuyat ang iyong Nanay
앝 사 가비이 나뿌뿌얕 앙 이용 나나이
Sa pagtimpla ng gatas mo
사 빡띰쁠라 낭 가따스 모
At sa umaga nama'y kalong ka
앝 사 우마가 나마이 깔롱 까
Ng iyong amang tuwang-tuwa sa iyo
낭 이용 아망 뚜왕뚜와 사 이요
넌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아이였지
네가 방긋 웃을 때마다 우린 기뻐했고
네가 울 때마다 우린 네곁을 떠나지 않았단다
Ngayon nga'y malaki ka na
응아욘 응아이 말라끼 까 나
Nais mo'y maging malaya
나이스 모이 마깅 말라야
'Di man sila payag
디 만 씰라 빠약
Walang magagawa
왈랑 마가가와
Ikaw nga ay biglang nagbago
이까우 응아 아이 빅랑 낙바고
Naging matigas ang iyong ulo
나깅 마띠가스 앙 이용 울로
At ang payo nila'y sinuway mo
앝 앙 빠요 닐라이 씨누와이 모
아들아 넌 모르겠지
아무리 먼 길도 갈 수 있다는것을
우리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는
신에 맹세코 너를 끝까지 돌봐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한다면 너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거라는것을..
'Di mo man lang inisip na
디 모 만 랑 이니씹 나
Ang kanilang ginagawa'y para sa iyo
앙 까니랑 기나가와이 빠라 사 이요
Pagkat ang nais mo'y
빡까트 앙 나이스 모이
Masunod ang layaw mo
마수노드 앙 라야우 모
'Di mo sila pinapansin
디 모 씰라 삐나빤씬
계절이 여러번 바뀌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구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거지
이제 너도 어느새 다 자라버렸구나
Nagdaan pa ang mga araw
낙다안 빠 앙 망가 아라우
At ang landas mo'y naligaw
앝 앙 란다스 모이 날리가우
Ikaw ay nalulong sa masamang bisyo
이까우 아이 날룰롱 사 마사망 비쑈
At ang una mong nilapitan
앝 앙 우나 몽 닐라삐딴
Ang iyong inang lumuluha
앙 이용 이낭 루물루하
At ang tanong "anak ba't ka nagkaganyan?"
앝 앙 따농 아ㅤ아낰 밭 까 낙까가냔
그런데 무엇이 널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
넌 우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구나
큰소리로 네마음을 말해보렴
우리가 너에게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At ang iyong mga mata'y biglang
앝 앙 이용 망가 마따이 빅랑
Lumuha ng di mo napapansin
루무하 낭 디 모 나빠빤씬
Nagsisisi at sa isip mo'y
낙씨씨씨 앝 사 이씹 모이
Nalaman mong ika'y nagkamali
날라만 몽 이까이 낙까말리
아들아 넌 지금 망설이고 있구나
무엇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말이야
넌 너무도 외로운거야 네 옆엔 친구 하나 없는거지
아들아 넌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있구나
우리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 주련다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이든지
우리는 항상 문을 열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Freddie Aguilar(프레디 아길라/1952.2.5~ )
필리핀의 포크 록 가수, 작사가, 작곡가, 밴드 리더, 영화배우.
본명 : Ferdinand Pascual Aguilar(퍼디낸드 파스쿠알 아길라/나중에 Freddie Aguilar로 개명.)
1973년 필리핀 여성 Josephine Quiepo(조지핀 키포)와 결혼하여 슬하 1남을 둠.
1978년 자작곡 <Anak>으로 가수 데뷔.
1989년 필리핀 영화 <Sakuko>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
1. Anak
2. Kasay Sayan
3. Buhay Nga Manan Ng Tao
4. Pag Ibig
5. Ala Ala
6. Pulubi
7. Katamaran
8. Anak Ng Mahirap
9. I Kaw Bay Pilipino
10. Naglaho
(2007-06-20)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 우린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50대 연령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시작되는 외국곡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1970년대 어느 날 TV에 등장한 낯선 외국가수. 통기타에 긴 머리.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를 시작한 그의 이름은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 그 노래의 제목은 ‘아낙(Anak.아들)’이었다.
KBS 수요기획팀은 20일 ‘프레디 아길라, 그를 기억 하십니까’를 통해 70년대 세계를 사로잡았던 수퍼스타 프레디 아길라를 만나 노래처럼 감동적인 그의 삶을 만나봤다.
80년대 초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 등 팝의 황제들과 함께 당당히 빌보드 싱글챠트 5위라는 기록을 남긴 프레디 아길라가 지금 살아가는 곳은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다.
그는 그곳에서 한칸의 교실에서 이 지역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공부방 아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필 한 자루까지 공연을 통한 수익금으로 채운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누렸을 당시, 필리핀은 마르크스 독재에 신음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프레디 아길라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독재를 피해 망명중이던 니노이 아키노가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암살된 것. 분노한 민중은 거리로 나섰고, 독재에 항거했다. 프레디 아길라는 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의 숨결로 노래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필리핀 민중의 삶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자유를 외치는 곳,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이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존경이 담긴 전설이 되었다.
항쟁의 시기는 끝났지만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는 여전히 필리핀 사회를 보듬고 있다. 그는 여전히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어루만진다. 58살,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감동의 순간을 KBS 수요기획팀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원문보기맨 처음 Anak를 번안해서 불렀던 가수는 故조경수씨 인듯 하다. 1978년 그의 독집에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는데, 조경수씨는 지난 포스트 징기스칸 - Dschinghis Khan vs 조경수 vs 나미 vs 林子祥에서 소개했으므로 노래와 음반만 살펴보기로 한다.
- 조경수
(음원삭제)
1.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그날 밤
우린 모두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천사 같은 너의 모습을
우린 언제나 보고 있었지
밤새 엄마는 너에게 우유를
따뜻이 데워주셨지
낮엔 언제나 아빠가 네 곁을
감싸며 지켜주었지
2.너는 크면서 언제나 말했지
이젠 자유를 달라고
진정한 의미도 모르며 졸랐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변해가는 너의 모습에
우린 너무나 가슴 아파했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버리고
너는 그만 떠나버렸지
엄마 아빠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고 떠나버렸지
3.지금 네가 가는 그 길은
거칠고 험한 길이지
갈수록 험하고 나쁜 길이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도 이젠 후회하겠지
엄마는 언제나 울고만 계신다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있겠지
듣다보면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듯 하다. Anak은 누가 번안해 불러도,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이렇게 느껴지는 노래이다.
1978
Side 1
1. 행복이란
2. 흙냄새 그 아가씨
3. 사랑하고 미워하고
4. 보내는 마음
5. 낙엽위의 바이올린
6. 그누가 뭐래도 Side 2
1. 아들
2. 그때 그 여인
3. 사랑하니까
4. 왜그래
5. 오해
6. 내 사랑아
1979년 Anak은 다시 정윤선과 황은미&문채지의 음반에 실리는데 남자인 프레디 아길라나 조경수씨의 Anak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노래를 자세히 들어보면 미묘한 가사의 차이에서 오는 모성을 느낄 수 있다.
- 황은미 문채지
(음원삭제)
네가 태어 났을 때 엄마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단다
오직 두 사람만을 믿고 믿고 믿고 태어난
네 기특하고 예쁜 두 얼굴
엄마는 밤새워 애태우며 우유를 데웠단다
아빠는 온종일 바라보면서 너만 너만 사랑했었지
너는 어느새 자라서 자유를 달라고 했었지
엄마 아빠는 그저 당황했단다
너의 거친 성미 부모근심 아랑곳없이
너는 너는 너는 집을 나었지
뿌리치고 나가는 네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아들아 너는 못된 길에서 후회하고 있지 않느냐
네게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엄마 아빠는 그저 울며 너의 일만 걱정하고 있단다
왜 못된 길로 접어들어 엄마 속을 태우면서
눈물짓게 만드느냐
필연코 네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으리라
필연코 지금쯤엔 너도 후회하고 있으리라
필연코 지금쯤엔 너도 후회하리라
필연코 지금쯤엔 너도 후회하리라
1979-02-16
Side 1
1. 아들아(Anak)(오학영/외국곡)
2. 세월이 가듯(이정선/이정선)
3. 등불(백순진/백순진)
4. 노래(이정선/이정선)
5. 하얀 손수건(조용호 작사/최종혁 편곡)
Side 2
1. 달에게(김용길/황은미)
-'78 TBC 대학가요제 입상곡
2. 꽃신속의 바다(이정선/이정선)
3. 내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윤지영/윤지영)
4. 우리들의 젊음을(이응수/황은미)
5. 뭉게 구름(이정선/이정선)
정윤선은 숙명여고와 미국 메릴랜드 대학을 졸업했고, 1973년 MBC-TV 드라마 '다녀왔습니다'에서 '제남'역으로 출연해서 1979년까지는 탤런트 생활을 했는데 1979년에 '잊지는 못할거야' 로 가수로 데뷔하여 그 해에 10대 가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 정윤선
(음원삭제)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그날밤
우린 모두 기뻐서 어쩔줄 몰랐지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천사같은 너의 모습을
우린 언제나 보고 있었지
밤새 엄마는 너에게 우유를 따뜻히 데워주었지
낮엔 언제나 아빠가 네곁을 감싸며 지켜주었지
너는 크면서 언제나 말했지 이제는 자유를 달라고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졸랐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변해가는 너에 모습에
우린 너무나 가슴 아파했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버리고 넌 그만 떠나 버렸지
엄마 아빠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고 떠나 버렸지
지금 네가 가는 그길은 거칠고 험한 길이지
갈수록 험하고 나쁜 길이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도 이젠 후회 하겠지
엄마는 언제나 울고만 계신다
너도 이제는 두눈에 눈물이 고여 겠지
너도 이제는 두눈에 눈물이 고여 겠지
1979
1. 잊지는 못할거야
2. 청춘만세
3. 갈길은 먼데
4. 다시 온다 말해주
5. 아쉬움
6. 아들 (Anak)
7. 무지개
8. 달님과 별님
9. 오직 그대뿐
10. 멀리 멀리 갔더니
그녀의 앨범을 보면 눈에 익은 제목이 많을 것이다. 1986년에 탤런트 정동환씨와 결혼 후 가수활동을 하지않아 아쉬움이 있다.
다음 들어볼 곡은 Malaysia 버젼이다. Carefree라는 그룹의 Kumpulan 앨범에 실린곡인데 kebebasan(꺼배바산)은 말레시아어로 자유(自由)를 뜻한다. 이들의 Anak은 독특한데 밤에 혼자 들으면 약간 오싹해지는 애기 울음소리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 Carefree
Betapa murni kasihnya
Ketika kau nyenyak tidur
Menatapi wajahmu oh anak
Kenanglah ibu mu tidur tak lena
Menjaga tidur mu
Takut engkau terbangun
Menangis kehausan susu
Di belai mu dengan cermat
Penuh kasih dan sayang
Tiap detik dan setiap waktu
Kini masa terus berlalu
Di mandi dengan kasih sayang
Kau besar sudah oh anak
Kebebasan yang engkau mahu
Di samping didikan agama
Yang sempurna untuk hari mu
(1979)
01 Bayangan Tari Mu
02 Dendangan Lagu Ku
03 Anak
04Joget Mak Enon
05 Kenangan Ku
06 Aku Terpesona
07 Ke Disko
08 Rindu Bayangan
09 Menari
10 Rayuan Kasih
11 Perkelahan
12 Hanya Kita Berdua
맴버
Jay Jay
Simon Justin Leo
Charles Paiva
Raja Rahman (Boy)
Raja Rashid (Wan)
Nana Pawan Chik
Lokman
Rahim Osman
Album
Kebebasan
Kebebasan II
Kebebasan III
- Miguel Bosé
음악듣기(다른 가수)
Difícil es el amanecer
Profundo este anochecer
Suave es el silencio que huele a ti
Que frágil es lo que yo te doy
Que fuerte aun cuando yo no estoy
Que eterno para quien lo quiera romper
No me dejes que esta noche soy cobarde
Estoy desnudo de valor
Quédate hermano mío que tu sombra es
Mi refugio y mi calor
Tu eres mi debilidad
Mi océano y mi tempestad
Podrías destruirme y volverme a inventar
Quisiera abrirte de par en par
Vibrar en tu sensibilidad
Tenerte en exclusiva, poderte robar
La nostalgia que me brilla en la mirada
Es por que no estas aquí
Vierta el cielo sus estrellas sobre ti
Y te traiga hasta mi
No ha habido nunca una mujer
Nadie antes nadie después
Capaz de conquistarme como lo haces tu
Decir te quiero, así sin mas
Y limitar mi devoción
Seria traicionarte por pudor
Quiero ser protagonista de tu vida
Ser tu amigo de verdad
Vuela alto hermano mío
Que en tu vuelo toco al fin la libertad
Vuela alto hermano mío
Que en tu vuelo toco al fin la libertad
Vuela alto hermano mío
Que en tu vuelo toco al fin la libertad.
Te dire
Metropolis
Hermano mio "Anak"
You can't stay the night
Ma Keen Dawn
Mas alla
I'll keep holding on
Que se yo
Si esto es amor
Marchate ya
Nana luna
이용복은 '한국의 호세 펠리치아노' '한국의 레이 찰스'로 19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추억의 이름이다. 무엇보다 당시 이탈리아 니콜라 디발리의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을 번안한 노래 '1943년 3월4일생'과 '마음의 집시'로 올드 팬들의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다.
(저작권으로 음원 생략)
네가 태어나던 그날밤
우린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랐지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천사같은 너의 모습을 우린 언제나 보고 있었지
밤새 엄마는 너에게 우유를 따뜻이 데워 주셨지
낮엔 언제나 아빠가 니 곁을 감싸며 지켜 주었지
너는 크면서 언제나 말했지 이제는 자유를 달라고
진정한 의미도 모르며 졸랐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변해가는 너에 모습에 우린 너무 가슴 아파했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버리고 너는 그만 떠나 버렸지
엄마 아빠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고 떠나 버렸지
지금 네가 가는 그길은 거칠고 험한 길이지
갈수록 험하고 나쁜 길이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도 이제는 후회 하겠지
엄마는 언제나 울고만 계신다.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눈에 고여 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눈에 고여 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눈에 고여 있겠지
1970년 친구를 따라 그 무렵 젊음의 전당인 음악다방에 놀러 간 것은 음악인생으로 새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여기서 우연히 무대에 올랐다가 강렬한 음색에 반한 작곡가 김준규씨에 발탁되어 음반을 취입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후 그의 활동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워 로보(Lobo)의 'We'll be one by two today'를 번안한 '우리 함께'를 비롯해 순수 가요인 '그 얼굴에 햇살이' '어린 시절' '줄리아' '잊으라면 잊겠어요'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인기 가수 가운데 한사람으로 군림했다. 70년대 중반에는 방송사 10대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4/02 임진모 (jjinmoo@izm.co.kr) 출처 : http://www.izm.co.kr)
이용복 1집 1989
좋은 노래는 일부러 기억하려하지 않아도 오래동안 남은모양이다. 프레디 아길라는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하지 않아 악보도 볼 줄 모른다고 한다. 그의 Anak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고 음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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