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재미있는 기사가 떠돌더군요. 빌 게이츠의 굴욕이니 구직 좌절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돌고 있는데, 지난 6일 미국 Las Vegas에서 진행했던 제41회 소비자가전전시회(CES, Consumer Electronics Show) 2008의 기조연설에 앞서 공개한 동영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빌 게이츠가 직접 출연한 MS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Bill Gates' last day at Microsoft)이라는 동영상은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있습니다.

이 동영상은 NBC 뉴스의 간판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멘트로 시작하는데, 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빌 게이츠의 하루(오전 6시~오후 6시)간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비서, 중역들을 포함해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앨 고어, 힐러리 클린턴, 배럭 오바마 등 미국의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카메오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엉뚱한 모습과 묘한 자신감을 내세워 여러 유명 인사들에게 일자리를 부탁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그에게 퇴짜를 놓거나 면박을 주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는 가수로의 전업을 노리며 열창하지만 유명 프로듀서 Jay-Z나, 록스타 U2의 보노로부터 더이상 맴버를 받을 수 없다며 퇴짜를 맞습니다. 영화계로의 진출을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 앞에서 엑스맨(나이트메어인가?)이나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재연해 보지만 스필버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게 있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또 스필버그의 전화는 받은 조지 클루니는 자신은 빌게이츠와는 연기할 수없으니 러셀 크로에게 물어보라며 거절하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의 한 사람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자신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쓰면 어떠냐고 제의하지만, 클린턴 의원은 "정치가 당신에게 어울릴지 모르겠다"며 거절을 했고, 또 다른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도 전화를 걸어 "안녕 나 빌이야"라고 자못 친근하게 말하지만 오바마 의원은 "빌? 빌 클린턴?" 라며 그를 모른체 해서,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 7분 짜리 가상 취직 좌절기는 CES에 참가한 4천여명의 청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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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William Henry Gates III)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한 후에,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으로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에 폴 앨런과 함께 앨테어 8800에서 동작하는 Altair Basic 인터프리터를 고안했고, Altair는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개인용 컴퓨터로 평가되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학습용으로 개발된 배우기 쉬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직에서 영감을 얻어, 폴 앨런과 함께 새로운 BASIC 버전을 개발하여 MS-DOS의 핵심적 프로그램 언어로 채택했고, 1990년 초 이래로 개인용 컴퓨터의 급속한 발전과 분포는 MS-DOS의 지위를 확보해주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시장의 주도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MS-DOS는 Q-DOS의 라이센스를 구입하여 약간의 손을 본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윈도우 역시 애플을 모방한 부분이 많으며, 윈도우95의 핵심적인 기능은 그 이전에 나왔던 IMB의 OS2의 기능을 대부분그대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뛰어난 기술자라기보다, 뛰어난 장사꾼과 사업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IBM이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면서 OS를 하청줄 회사를 몇 곳을 선택했을때, 대부분의 회사가 시간이 촉박함을 이유로 거절을 했지만, 빌 게이츠는 OS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에 Q-DOS의 라이센스를 구입하고 이것을 손 봐서MS-DOS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MS-DOS는 유사한 제품군들 가운데 성능면에서나 기능면에서 가장 최악의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IBM이 MS-DOS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의 하드웨어에서는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것과 일반사용자가 사용하기에는 심각할 정도의 오류는 아니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고, 큰 기술의 개발도 없이, OS 시장을 석권한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빌 게이츠는 시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없었지만 현실 감각이 뛰어난 경영자 였습니다.
메모리는 64K면 충분하다는 유명한 예언을 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실무진들이 끊임없이 인터넷과 관련된 건의 했지만 나는 인터넷의 철자도 모른다며 무시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예언이 빗나간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나섰습니다. 네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의 전쟁에서도 결과적으로 네스케이프는 영원히 잠들어 버렸습니다. 도스, 윈도우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익스플로러는 완전한 개발이 아닌 모방에서 시작해서 시장을 주도해버린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송과 위기를 맞았지만 MS가 여전히 굳건한 성역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빌 게이츠의 이러한 흡수능력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빌게이츠는 90년대 이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존재입니다.
빌 게이츠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인물이 아닙니다. 빌 게이츠는 미국 서부 명문가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윌리엄 헨리 게이츠 2세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외할아버지 J. W. 맥스웰은 미국 국립은행 부은행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며 그것도 단기간에 가장 큰 부를 쌓아 올린 신화적인 인물입니다. 빌 게이츠가 30대일때 그의 재산은 이미 100조원이 넘었습니다. 비록 IT거품 붕괴와 주가하락으로 재산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하지만, 이미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IT 산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치고,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역시 이러한 꿈을 가지고 구글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이유를 막론하고 IT의 현재를 일구는데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존재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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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회사업가 빌 게이츠로 불러야겠군요.
MS의 성공신화를 일군 빌 게이츠는 실제로 오는 7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서, 자신과 부인 멀린다 씨가 함께 세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자선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고 합니다. 빌-멀린다 재단은 작년에도 결핵 퇴치를 위해 2억8000만 달러(약 2600억원)를 기부했고, 결핵 진단 시약 개발에도 8000만 달러를 별도로 기부하는 등, 1999년 재단설립 이후 지금까지 총 136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특히 빌-멀린다 재단은 2억5800만 달러를 말라리아 백신 연구개발비로 내놓는 등 빈곤국에서 발생하는 전염병 예방 및 치료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포브스 지에 따르면 2007년 현재, 그의 재산은 약 560억 달러(약 55조원)으로 13년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돈이 많으므로 저런 기부를 한다는 수준을 훨씬 넘는 엄청난 금액이 분명합니다.

빌 게이츠가 경영일선에 있을때와 이후의 MS가 어떤식으로 변모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누가 뭐라고해도 최고의 기업인이었고, 최고의 자선사업가입니다. 수많은 소송과 분쟁속에서도 자신의 기업을 지켰듯,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동영상에서 보여준 유머와 여유를 잃지않고, 돕는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후세의 젊은이들에게 사회사업가의 꿈을 안겨주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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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
개처럼 벌 자신도 없지만 정승처럼 쓰기는 더 어려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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