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2 -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에서 이어집니다.

우주에서 시간과 공간과 질량은 서로 뗄 수 없는 존재이며 이 셋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만약 시간을 빼고 멈춰진 상태의 우주를 상상한다면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주의 공간은 각 공간이 저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회전하고 공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다시 공전하는 달의 시간은 지구보다 조금 더 느리게 흐르고 있습니다. 만약 시간이 멈춘다면 우리가 지금보고 있는 달은 그 모습과 위치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고, 태양과 저 먼 별들의 위치와 상태도 지금 보이는 것과 큰 차이가 발생할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살아가는 시간은 보기 좋게 자른 오이의 단변과 같지 않고, 현재라고 말하는 이 순간을 그대로 도려내어 본다면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우주의 오이 조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라기보다 변화를 측정하는 단위이지만 이와 같이 관측하는 공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만일 관측자가 전혀 없는 우주라면 우주는 매우 평평하고 예쁜 원형에 질량이 평준화로 분산된 상태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존재가 관측하는 순간, 변화와 측정의 단위인 시간이 추가되므로 우주는 휘어지거나 일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측 전에는 고양이가 살았건 죽어있건 확률이 반반이지만 관측이 일어나는 순간 어떤 경우가 되어도 그건 이미 확정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주의 크기는 우주의 나이와 밀접해서 태초의 순간에 이미 그 크기는 한정되고 결정되어 있어서, 무한으로 확장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크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빛의 확장속도를 시간의 단위로 계산한다면 지금 우주는 동일한 속도의 두 배로 커지고 있겠으나 빛은 우주의 본체를 투사하는 그림자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이기에 본래의 우주의 크기는 불변하게 됩니다. 셀로판지에 그림을 그려 빛을 비추면 벽에 원하는 크기만큼의 그림자를 만들 수 있지만 그 본래의 크기와 질량은 불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4차원의 그림이 투영된 그림자가 3차원 세계의 실체라고 본다고 해도, 벽에 투영된 우주가 커질수록 그 그림자 속에 한정된 인간이라는 관측자도 같이 커지게 되므로 우주가 팽창을 하건 수축을 하건 상대적인 비율을 결국 동일하므로 관측자는 그 변화를 측정할 수 있을지라도 우주의 크기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에서 시간을 멈추듯 질량을 멈춰 0 으로 만든다면 우주는 시간의 정지보다는 더 극적인 변화가 생길까요? 물론 그것은 관측자의 입장에서 살펴야 합니다. 만약 우주에 관측자가 없다면 우주가 여전히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 순간 모든 그림자놀이는 막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보이건 보이지 않건 우주를 살피는 눈길이 있으므로 변화가 있고, 고양이가 살아 있음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질량이 멈춘다면 온 우주는 모든 질량이 빛이나 열의 형태로 일시에 변화되어 환하거나 뜨겁거나 한 상태가 되겠지만 그 순간 관측자가 사라지므로 우주는 밝지도 어둡지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고요한 상태, 절대의 정지상태 또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간이 사라진다면 모든 물질은 하나의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부피도 질량도 위치도 없는 점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본질의 우주는 동일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개념보다는 거리적 개념이므로 물질과 물질 질량과 질량사이가 0이 된다고 해서 그 속에 포함된 관찰자의 시선을 변경하지는 못할 것이며, 그 관측자는 겹쳐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우주가 빅뱅전의 알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이 순간 빅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위의 그림자놀이에서와 같이 관측하는 대상이나 관측자가 동일한 환경이라면 그것은 크기뿐 아니라 모든 변화에 그대로 적용되므로, 대상과 관측자가 각기 다른 온도, 시간, 질량의 변화의 길을 걷고 있지 않고, 같은 변화의 과정에 속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우주가 불변의 상태라는 그대로의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중력과 같습니다.  침대 매트리스에 놓인 볼링공의 무게로 주변이 움푹하게 꺼져있어도 그 표면을 기어가는 개미처럼 중력장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 공간의 휘어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스타킹의 표면을 잡아 늘인다고 해도 그 표면이 세계의 전부인 우리는 스타킹 표면의 격자와 함께 같이 늘어나므로 그 크기와 휘어짐, 위치에 따른 휨의 정도 등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 인류가 우주의 관측자가 되어 눈을 떴을 때 우주는 1광년의 크기에서 그 크기가 100억 배로 확장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마치 상자의 뚜껑을 열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았던 변수와 확률들이 관측이 시작되면서 관측자의 의지가 작용하거나 받아들이는 사유의 크기를 그대로 반영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환상의 상태로 혹은 미지와 전설로 남아있던 많은 어둠속 부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수도 있고, 또는 우주가 끝없이 크기를 확장하면서 매순간 마다 최외곽의 껍질을 하나씩 부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까지 지구를 중심으로 돌던 우주가 관측자의 의지에 의해 역전되었고, 10억년 후 관측자의 시선이 감겨진 틈을 타서 우주는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실체를 끊임없이 비추는 빛에 의해 꾸준히 투영되는 미묘한 변화의 순간이기에, 한 차원 높은 관측자가 유희(관측)를 위해 발산하는 빛의 속도를 한계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빛은 질량 없는 입자이고, 우리는 빛이 사라지는 순간 시간과 질량과 공간도 사라져야하는 서글픈 그림자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여행한다는 것은 관측의 위치를 바꾸는 것입니다. A시간대를 관측하던 시선을 B시간대로 돌리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우리의 현재 의지로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림자를 만드는 필름의 주인이 다른 프레임을 영사기에 걸고 그 속의 객체를 활성화 시켰을 때 우리는 다른 시대와 공간을 관측하게 될 것이지만, 그 관측자가 되었다 해도 우리는 기존의 자아를 상실하고 새로운 객체가 프로그램된 그대로의 의지를 자아로 받아들여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주사위를 던졌던 던지지 않던 선택된 회로와 저장된 기억의 메모리는 객체의 의지대로 쉽게 리셋할 수 없고, 그 메모리가 의지 자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라는 그 자체가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이미 선택되고 확정되고 예정된 의지일 수도 있지만, 만의 하나라도 자유의지의 기회가 부여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림자가 아닌 실체의 일부분으로 회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빛이 사라진 어둠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속에서 안정과 명상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런 회귀의 순간에 대한 본능이 프로그램되어 숨겨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렇기에 이토록 지구를 벗어나고 우주로 향하려하고 다른 시간대를 탐내고 빛의 본질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그림자의 세계(타차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100조테라바이트의 매트릭스 속에 하나의 개체로 선택되어 다운로드된 시간여행자이며, 실체를 투영한 비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비현실적 존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끝-


제 블로그를 처음온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글을 잠시 즐겁게 웃으며 읽었으리라고 봅니다. 처음 방문하셨다면 심각한 이야기도 과학적인 이야기도 아니므로 눈으로만 읽으시고, 페이지를 닫는 순간 모두 잊어 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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