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에는 재일교포임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으며 일부는 그곳에서 불편 없이 살기 위해 귀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추성훈(秋成勳)은 일본인으로 귀화 후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그가 일본에서 비난받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도복에 새겨진 태극기 때문일 것입니다.

추성훈은 재일 한국인 4세로, 아버지 추계이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라는 당부에 따라 1998년 4월 그의 여동생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건너왔고, 부산시청에 들어가 유도 선수로 활동했으나, 2001년 9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그가 추성훈이라는 이름대신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이름의 일본선수가 된 이유에 대해서 교포에 대한 차별,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한국 유도계의 텃세와 파벌 싸움, 자신이 한국에서는 2인자로서 대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본인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국가대표가 된 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있어야만 했는데, 다른 선수들은 그런 훈련방식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내겐 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고 자란 일본을 떠나서 낯선 고국 땅을 찾아 왔던 과정에는 어려운 결심이 있을 것인데, 스타일에 안맞다는 이유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한국을 떠나 일본인이 된 것일까요?

2002년 그는 일본 대표로서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여했고,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대표인 안동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에 모 신문사에서 조국을 메쳤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는 등 한국의 여론은 추성훈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훗날 그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모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 기사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는 처음 보는 제목에 당황하며 울먹이듯 대답했습니다. "난 조국을 메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그는 국적을 떠나 진정 유도를 사랑하는 사나이였습니다. 추성훈이든 아키야마 요시히로이든 그가 한국을 메친 것이 아니라 한국이 그를 메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외형적인 국적의 문제를 넘어 언제나 자신의 피는 한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습니다.

추성훈은 후에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뒤, 2005년 11월 5일에 열린 히어로즈 서울 대회에서 한국 출신 선수단의 대표로 나타났고, 그는 오쿠다 마사카츠와의 대전에서 승리한 뒤, 링 위에서 “한국인이 아니지만, 제 가슴 안에, 여기 들어가 있는 피는 완전 한국인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2006년 12월 31일 K-1 2006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대전해 TKO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불법물질도포라는 반칙 행위가 발각되어 경기는 무효 경기가 되었고, K-1의 주최사인 FEG는 그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논란의 과정에서 일본의 여론은 추성훈에게 큰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를 보냈고, 그에 맞춰 히어로즈의 스폰서가 떠나고, 대회를 중계하는 TBS 방송국에까지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글러브 안에 쇠뭉치를 넣었다는 등  인터넷에는 그를 욕하는 악성 댓글이 무수히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2007 K-1 히어로즈 코리아 대회의 복귀전을 치루며, 일본에서 언론의 비난의 대상이 되던 추성훈은 일본 무대복귀를 염두에 둔 듯 이제 일본어로 인터뷰하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서 승리하자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관중들에게 마이크를 잡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가지 마세요. 할 말이 있어요." 그리고 잠시 후에 어색하지만 또렷한 말로  "이렇게 고국에 와서 여러분들 얼굴 하나하나 보는 게 힘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최고!" 라고 외쳐 일본기자들에게는 당황을 우리에게는 가슴 찡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7년 12월 31일, 일본에서의 첫 복귀 무대인 ‘야렌노카! 오미소카’에서 추성훈이 전 프라이드FC 미들급 그랑프리 챔피언인 미사키 카즈오와 맞붙게 되었을 때, 일본 격투기 팬들의 추성훈에 대한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일본의 수많은 네티즌은 온 몸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 추성훈의 사진을 올리고 온갖 추한 욕설과 야유를 퍼부으며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그의 어머니 가게에 협박전화를 하자는 등의 추한 제안까지 하며 열광적으로 비난하였습니다. 

결국 그날의 경기에서 추성훈은 미사키에게을 억울한 KO 패를 당했습니다. 상대 펀치에 맞아 양손과 무릎이 그라운드에 닿은 상태에서 얼굴을 발로 맞았고, 이것이 치명타였습니다. 승부를 가른 마지막 사커킥이 '4점 포지션의 상대 안면에 킥을 차는 공격을 금지'하는 야렌노카 룰에서 분명히 반칙이었지만 추성훈은 겸손하게 패배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경기 후 미사키 카즈오는 '과연 저게 스포츠맨 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하는 치졸한 행동을 보여 주였습니다. 반칙으로 승리를 했음에도 미사키는 승자로서의 아량을 조금도 베풀지 않은 채, 코뼈가 부러져 피를 줄줄 흘리는 추성훈을 불러 세워놓고는“일본은 강하다. 너는 링 위에서 팬들과 어린이를 배신하는 행동을 했다.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며 자랑스러운 듯 떠들었습니다.



추성훈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테지만 로션사건(불법물질도포)에 대한 기억때문인지 피를 흘리면서도 그의 연설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무기한 출장정지 처분 후 일본에서 악의 화신이라는 ‘흑마왕’으로 불리면서까지 어렵게 복귀한 무대였기에, 그곳에서 대놓고 불복해 봐야 야유만 더해질 뿐 아무런 이득이 없으리란 걸 알았을 것입니다. 후에 추성훈 측에서는 공식 제소를 통해 강하게 어필했고 지난 2월 22일 야렌노카 실행위원회는 심사위원회를 열고 추성훈과 미사키 카즈오가 치른 경기를 무효처리(No Contest) 했습니다.

미사키는 추성훈과의 재대결에 대해 "서로 무엇인가 엇갈린 것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배반이나 비겁이란 말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정당한 행동을 취한 결과가 센고쿠행이었다"고 반론하며 "언젠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무리 실력으로 말을 하는 세계라고는 하나 상당히 뻔뻔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제 추성훈의 지난 이야기를 떠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귀화(歸化)에 대하여 그것이 마치 조국을 팔아넘기는 매국이라도 되는 듯 너무나 민감하고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귀화는 비판할 문제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입니다. 일본에 사는 많은 교포들은 한국에서의 무관심과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도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오랜 세월 차별을 감당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들의 판단에 따라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이중국적을 보유한 높으신 분들과 원정 출산을 통해 자녀를 미국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안달하는 그 분들보다 차라리 국적을 포기할 망정 ‘내 피는 한국 것’이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추성훈같은 사람들이 더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나라에 이민을 가서 그곳 국적을 취득하고 정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으면서, 유독 차별이 심한 일본의 동포가 귀화하는 것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2004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선수를 판정으로 제압하고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여 받을 때, 일장기를 보았습니까, 태극기를 보았습니까?”라는 질문에 일장기와 태극기 사이를 봤다는 그의 대답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일본에 살 때는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다'면서도 "우리 대한민국 최고!"를 외칠 수 있는 추성훈. 그는 아름다운 한국인입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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