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메이커 1편에서 이어집니다.

환경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아 더 이상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유전자 메이커는 유전자라는 데이터베이스 속에 수억 년간 축적시켜왔던 정보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게 됩니다. 먼저 기존 하드웨어를 더 적절히 구동시킬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를 단행하여 일부의 비효율적 기능을 저하시켜 거기에서 발생하는 잉여 에너지를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기관으로 이입하여 효율성을 높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업그레이드를 위한 하드웨어적 개선점을 찾아 수정하고 그를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을 준비할 것입니다.


우선 유전자 메이커는 테스트타입(Test type)을 설계하여 개선점을 적용하고, 가상의 기능을 추가하여 그 기능이 주는 가능성과 효과를 시험해 볼 것입니다. 초기의 테스트타입은 이전 모델을 발전시킨 것이므로 기본적인 구조는 비슷하지만, 새로 부착된 기능으로 설계적 오류나 예상치 못한 오작동, 작동 범위의 비정확성 등 수많은 변수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것을 줄이는 과정에서 외형적인 디자인의 차이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테스트타입은 실제 투입이 목적이 아닌 글자 그대로 실험용 모델이기 때문에 수많은 변종을 디자인하여 각각의 장단점과 가능성을 찾으려고 할 것이기에 매우 불안정한 성능과 낮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안성성이 결여되었지만 대신에 가장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설계되었을 것이므로 테스트 모델은 사고력, 신체능력, 생존능력, 예지력 등 부분적인 기능면에서는 기존 모델의 수배가 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테스트 타입은 공개되지 않고 그 목적이 완료되면 폐기처분되고, 모아진 데이터만이 무한의 용량을 지닌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보관될 것입니다.

이제 테스트타입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설계할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 모델에서 검증된 기능을 추가하거나 개조하여 지향적(志向的)인 소수의 객체만 생산될 것인데, 대량 생산에 앞서 최종적인 점검과 오류 수정, 기능의 균형성 테스트 등이 그 목적입니다. 테스트타입에 비해 여러 면에서 안정성을 보이고 객체의 보수나 성능의 조율이 상대적으로 편리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 투입하여 무리한 능력이나 부족한 성능 등에 대하여 개선해 나가면서 점점 안정성을 찾게 될 것이고, 마침내 최종적인 양산형을 완성하고는 대량 생산을 시작할 것입니다.

유전자 메이커의 진화계획은 테스트 기간이 길지만 그 결과에 대한 적용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났습니다. 이미 수억 번을 넘게 이런 진화계획을 시도했던 경험으로 실행 기간이 짧을수록 그 효과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고 신종의 진화체가 번성하는 데는 불과 수천 년도 걸리지 않았기에, 화석들을 통해 과거의 고리를 살펴보면 매끄럽지 못한 연결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종과 그 다음 종은 뚜렷하게 구분되면서도 그 사이에 존재할 듯 한 중간치의 형태가 실제로는 전혀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인 것입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찰을 하며 장기간의 운행시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거나 부가성을 높여나가고, 그에 따른 설계도를 공유하여 분석하고 정보를 확장해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산형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견된 우성적 형질은 착실히 복제되고 적용되어 양산하는 공정에 추가됩니다. 이것은 거의가 소규모의 업그레이드로 외형적인 디자인 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영양 공급을 받은 성체는 크기나 지능 등에서 동일하지만, 성장기간을 조절하여 성체의 시기를 늦게 잡거나 유아기를 길게 하여 초기의 인지력을 향상시키는 등 일부 과정의 배치를 내부적으로 변화시킨 경우입니다.

인류는 수십 만 번의 테스트를 통해 변형되며 발전된 모델로 설계되었으며, 수백 번의 대규모 적용과정을 거치며 진화한 성공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자 메이커는 항상 그랬듯이, 하나의 모델이 환경이 요구하는 요소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출력의 한계점에 다다르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그 한계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증기기관은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입력하는 연료량에 비해 그 중력은 저조했습니다. 이후에 입력량에 비해 출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고효율의 엔진 개발이 이어졌고, 그 결과 증기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연료가 다른 엔진이 개발되면서 증기 기관은 사라졌듯이 대규모의 진화는 수차례에 걸쳐 이전 종의 종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주력 모델은 오랜 기간을 두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소규모의 기능 개선을 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인류(人類)는 생물 분류학상으로 영장목(靈長目) 사람과의 포유류인데 두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을 포함한 호미니데(Hominidae), 즉 사람과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종에 속하는 영장류입니다.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경우 97%에서 99.4%의 DNA를 공유하고 있기에 일부의 학자들은 침팬지를 사람속(屬)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침팬지를 전혀 다른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사람과 침팬지라는 두 엔진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엔진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류는 침팬지와 동일한 연료를 사용하는 동일한 엔진이며, 거기에 부가적인 옵션을 추가하여 기능을 개선시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식물과 동물의 차이를 우마차와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파충류와 포유류는 증기기관과 디젤기관의 차이정도이며 코끼리과와 사람과는 화물과 승용의 차이정도이며, 수많은 포유류 중에서 사람과 침팬지는 동일한 자동차에서 몇 가지 옵션이 차이나는 정도일 뿐입니다.


유전자 메이커가 볼 때, 우리는 같은 양산형에서 필요에 따라 설계도를 아주 살짝만 변경해서 기능을 일부 개선하고 추가한 모델인 것입니다.
어쩌면 같은 자동차를 튜닝한 정도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처럼 인지력은 극대화 되었는데 저장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진화라는 대단위가 아닌 미미한 조절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입력되는 정보에 대한 저장 능력을 향상시키고, 무리하게 대량의 연료를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연료탱크(지방층 등)의 용량을 줄이고, 자세의 안정성을 위해 무게를 분산하는 외형적인 디자인을 조절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위대하다고 자만하고 있지만 우리는 단지 다양한 고객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생산되는 100만 가지 모델중 한 가지이며, 지금도 끊임없이 접수되는 고객의 불만을 근거로 소규모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중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전자 메이커 본래의 임무인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고 새 모델에 적용하는 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을 것이기에 어쩌면 지금쯤 파충류 포유류와는 근본적인 구조부터 다른 고효율 기관을 개발해서 테스트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생명체를 진화시키는 힘을 가진 유전자 메이커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시키고 섭리를 주관하는 존재입니다. 유전자 메이커는 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주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진화 그 자체가 엔트로피(entropy)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우주의 흐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유전자 메이커는 식은 블랙커피를 홀짝거리며 우리에게서 적합한 새로운 형질을 테스트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인류는 양산형일까요?

'비과학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뱅 임계점 2  (20) 2008.04.19
빅뱅 임계점 1  (32) 2008.04.17
안드로이드는 무엇을 꿈꾸는가? 2  (35) 2008.04.15
안드로이드는 무엇을 꿈꾸는가? 1  (28) 2008.04.14
유전자 메이커 1  (25) 2008.04.12
외계인의 성별(性別) 4  (33) 2008.04.10
외계인의 성별(性別) 3  (25) 2008.04.09
외계인의 성별(性別) 2  (29) 2008.04.08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