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소리 2

2008. 9. 9. 21:03



-나팔소리 1편에서 이어집니다.

나팔소리2
그들은 잔인했던 원인불명의 그 소음을 '우주의 나팔소리'라  불렀고, 그 사건을 '6번째 대멸종'이라 칭했으며, 그 대멸종에서 살아 남은 인류는 어떤 이유에선지 유전적으로 지녔던 많은 원시적 인자들이 제거되어 있었기에 스스로를 '신인류'라고 칭했다. 신인류는 나팔소리에서 살아남은 후부터 끊임없이 그 원인을 찾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것에 근접할 수 없었다. 우주시대를 맞이한 수세기 동안 발견하고 밝혀낸 수많은 우주의 법칙과 이론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나팔소리의 원인과 근원을 유추해낼 수 없었기에 온갖 억측들만 난무할 뿐이었고, 오래 전 사라졌던 종말론이 은연중에 퍼지며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 이른바 신과학이라 부르는 새로운 이론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그 무엇으로도 나팔소리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부정하며 시작된 신과학은 과거의 관념적인 철학들을 도입하며 우주의 기원과 물질과 존재부터 새롭게 해석해 나갔고, 점차 검증하지 못하지만 고대의 철학들이 제시한 모델들이 현 상황과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0년 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주장했던 '우주 어디에도 관찰자에 전혀 상관없는 절대공간(absolute space)절대시간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은 각각 관찰자에 따라 정의될 뿐' 이라는 명제는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었기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제 그것을 비롯해 인류가 정의하고 축적해왔던 모든 개념들이 우주의 나팔소리에 의해 하나씩 의심받고 재검토 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뉴턴이 모든 상대적 공간의 근원이며 기준이 된다고 생각했던 영원불변의 절대공간은 플라톤주의의 개념처럼 절대자의 감각적 장소(sensorium)로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나팔소리는 '서로 등속도운동을 하는 모든 관성계(慣性系)는 동등하며 그 안의 어떤 좌표계가 다른 좌표계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리를 부정케 했고,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2백년 전의 정의인 스칼라양(scalar量)과 벡터(vector)와 비가역의 화살표로 표현할 수 있는 절대 불변의 개념 상태로 돌려놓고 있었다.



신인류는 과거와 같이 자극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나팔소리를 연구하며, 이제 시간과 공간은 방향과 좌표에 관계없이 숫자 값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곳에 위치할 지도 모르며, 나아가 어떤 물체도 초당 299,792,458m라는 광속(光速, velocity of light)보다 빠를 수 없다는 광속의 절대성과 전자기학적 광속의 불변성까지도 -한정적이지만- 이미 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우주는 미지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 모든 공간이 동일하게 통제되고 동시에 울려 공명하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나팔소리였다. 무엇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어제까지 보편적으로 믿어왔던 진리가 무너진 것이며, 그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고 회전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 만큼 신인류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어느 정도 문명을 재현한 신인류는 나팔소리의 원인 규명의 과정에서 사실 관측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어렵게 예산을 확보하여 '6번째 대멸종' 이전에 우주로 쏘아올렸던 수많은 관측기구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정밀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는 우주망원경(space telescope)의 통제권을 다시 확보했는데, 주거울의 지름이 22.3m이고, 관찰 가능한 파장영역이 무한대에 가까운 이 다중식-반사망원경 도깨비(Dokebi)는 해왕성(Neptune)의 위성인 트리톤(Triton)에 설치되어서 30여년 동안 홀로 우주를 관측하고 기록해 오고 있었다. 한동안 인류의 간섭과 통제가 없었지만 도깨비는 계획단계부터 정해져 있던 기본 명령대로 잠시도 쉬지않고 미세하게 방향을 틀며 우주 구석구석을 훑어 새로운 성운이나 블랙홀을 찾고, 특별한 현상들의 변화를 쫓고 있었는데, 관리자의 접속으로 그 동안의 누적된 기록은 즉각 지구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이 근거하여 최초로 얻은 결과 값을 계산하던  담당자는 자신의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너무 황당한 결과이지 않는가? 수십년을 손보지 않았던 탓에 프로그램이나 기계적인 오류가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계산대로라면 인류가 관측을 시작한 이래 적색편이(red shif)만을 보이던 우주의 모든 별들이 현재는 전부 청색편이(blue shift)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팽창하던 우주가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이 수축을 시작했단 말인가? 담당자는 자신의 황당한 상상에 미소 지으며, 최근의 데이타부터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전 계산과 일치하고 있었다. 이건 확실히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며 상부에 허락을 얻은 그는 도깨비에 대한 원격제어를 시작했다. 이제부터 도깨비가 관측하는 일체의 모든 정보는 자체적인 계산과정이나 여과없이 고스란히 지구의 컴퓨터로 직접 전송이 되는 것이다.

담당자는 자신의 계산을 믿을 수 없었다. 도플러효과(Doppler effect)는 이미 오래 전에 발견되었고, 2백년을 거치며 그 방정식은 더욱 정밀해졌다. 도플러효과는 상대 속도를 가진 관측자에게 파동의 주파수와 파원(波源)에서 나온 수치가 다르게 관측되는 현상인데, 파동을 일으키는 물체가 관측자와 가까워질수록 스펙트럼선이 장파장(Red) 쪽으로 편향된다. 관측에 있어 가장 초보적인 방정식에서 실수 했을리 없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다시 한번 계산을 했다.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인 적색편이가 보인다는 것은 파원이 관측자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이고, 반대로 청색편이라면 파원이 관측자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깨비가 관측한 모든 별은 청색편이를 보이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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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팽창하는 우주가 일시에 수축을 시작했단 말인가? 만약에.. 만약이지만 이 결과 값이 사실이라면 한때 인류의 95%를 죽음으로 내몰고, 남은 이들을 신인류로 진화시켰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현대의 불가사의이며 신인류의 숙제인 나팔소리에 대한 자료를 도깨비가 관찰하여 전송해 준 값에 대입해보기로 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랍을 열고는 세작(細雀)을 농축한 분말을 진공팩에서 꺼내 뜨거운 물이 담긴 컵에 풀고는 그 맛을 음미했다. 그토록 좋아하지만 신인류는 직접적인 식량이 아니면 재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구하지 못해 정금같이 아껴왔던 차(茶)였다. 그러나 차 맛을 느끼기에 그는 너무 흥분되어 있었다.

그는 계산을 하면서 고의적으로 중간의 결과값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알려진 나팔소리의 정보들과 도깨비가 관측한 결과치들을 충실히 대입해 나갔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아주 큰 별에서 나오는 스펙트럼선은 약간 긴 파장쪽으로 몰리게 되는데, 파동을 전파하는 물리적 매질이 존재하지 않는 광파와 전파의 경우에는주파수의 변화는 파원과 관측자의 상대속도만으로 결정된다. 이 경우에는 시간에 대한 상대론적 효과(相對論的效果)에 의하여 파원과 관측자의 각도는 상대속도와 파원의 주파수, 관측되는 주파수 등에 의해 그 값을 계산하는데, 나팔소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듯 하면서도 도플러 효과와는 묘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의 보고를 받은 관리자가 미간을 찡그리며 보고서를 살피고 있었다. 아직까지 종이에 인쇄된 것 보다 사람에게 친숙하고 편리한 것이 없었기에 급하게 작성된 보고서도 십 여장의 종이 묶음으로 되어있었다.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한 첫 장을 읽을 때 잔 웃음을 짓던 관리자의 표정이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신중해졌고, 마지막 장을 넘길때는 손의 떨림 때문인지 보고서도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워낙 중요한 사안이다보니 그는 다시 한 번이라는 말을 했고, 담당자는 그날 전송된 도깨비의 자료를 바탕으로 어제와 같은 반복적인 계산을 했으며, 그 결과 값은 어제와 같았다. 관리자의 신중한 보고가 있었고, 상부에서는 곧 긴급 예산을 편성해 도깨비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구인류에 의해 비교적 최근에 설치되었던 우주망원경 하나와 통신을 재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얻은 결과는 그들의 기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결과는 우주의 빅크런치(big crunch 대붕괴)를 나타내고 있었다. 빅크런치는 우주탄생의 대폭발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주 모형은 세 가지인데, 계속 팽창하는 열린우주와 팽창이 멈추게 되는 평탄우주, 그리고 한 점으로 다시 수축한다는 닫힌 우주가 있다. 그 중 닫힌 우주에서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수축을 해서 마침내 한 점으로 수축하는 우주의 종말이 빅크런치이다. 중력이론을 균일등방인 우주모형에 적용해서 물질의 밀도와 공간의 곡률에 따라 팽창율을 계산해 보면, 이전까지의 관측의 결과는 항상 우주가 열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순식간에 그것이 역전될 수 있단 말인가? 곡률항의 부호가 음에서 양으로 변경되었다면 우주 질량의 변화가 있었거나 그 질량 만큼의 에너지가 우주의 외적인 부분으로 가감되었을 경우에야 가능하지만, 그럴리가 없다. 한때 일었던 다중 우주에 대한 논란은 백년도 훨씬 전에 충분한 검증을 통해 유일한 단일 우주라는 것으로 결론나지 않았는가?


그도 아니라면 나팔소리에는 과학으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주관하는 주체, 혹은 우주 그 자체가 지닌 의지가 빅뱅의 순간부터 우주 내면에 숨어있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분적 추측과 이미 일어난 현상에 대한 이해를 위한 방편으로 도출된 가능성은 너무나 비과학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달리 반박할 만한 여지도 없었고 다른 이해를 찾기도 어려웠으므로, 결국 과학은 그 본질적 순수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했고, 일부에서는 철학과 신화와 전설과 타협하며 빅크런치에 대한 이해를 시도했다.

우주의 의지라.. 그것이 있다면 아마 전 우주를 생각하고, 10의 80승이 넘는 중성자 양자 전자와 10의 90승이나 되는 광자의 갯수를 일일이 세어 계산하며 추진시키는 실체적인 존재일 것이다. 아무튼 그 절대적 의지는 우주가 무한하게 팽창하던 어느 순간 강력한 의지로 물질계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모든 질량은 양의 에너지가 가진 고유의 질서를 뛰어넘는 미지의 간섭에 의해 강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쳐도 팽창을 감속시키고 수축으로 전환하는 시점이 너무 일시에 시작되었다. 10의 56승 그램의 우주를 절대적 시공간 아래 놓고 한꺼번에 역행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마저 그렇다고 인정해도 그 의지는 어떤 도구를 이용해 지름이 무려 400억 광년(허블 상수를 76 km/s으로 잡을 경우)인 우주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일까? 진정 우주는 신의 영역이고, 그 신은 모든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단 말인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더해지는 그런 의문도 20기의 우주망원경이 수 년간 보내 온 정보를 종합하며 부분적으로나마 풀리기 시작했다. 더 넓은 범위로 우주를 관측한 결과 모든 별이 청색편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쉐아트(Scheat)라 불리는 페가수스자리 베타(Beta Pegasi)는 관측값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원래의 199광년보다 다소 가까운 190광년이었으며, 300광년 거리에 있던 폴라리스(Polaris) 역시 290광년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으나, 우리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4.2광년 거리에 있는 적색 왜성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Proxima Centauri)나 전갈자리에 있는 16.3광년 거리의 적색 왜성 글리제 682(GJ 682)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절대 등급이 태양보다 몇배나 되는 큰개자리 에타는 3198광년 거리에 있는 청색 초거성이었는데, 그와의 거리는 현재 3천 광년에 지나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적색거성으로 진화된 상태로 관측되었다.
오랫 동안 팽창하던 우주의 별들은 대멸종이 일어난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사이에 방향을 돌려 우리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이지만, 관측값이 아닌 절대적 상태를 놓고 보면 먼거리에 있을 수록 더 빨리 혹은 더 이전에 수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광년(光年)
이라고 하면 시간의 단위가 아닌 거리를 나타내는 천문학적인 거리측정 단위이다. 우주적인 척도에 비하자면 4605×1012㎝(약 10조㎞)인 1광년은 그리 큰 것이 못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척도의 단위로 환산하자면 굉장히 큰 것이 된다. 그런데 거대한 항성들이 순식간에 몇 광년의 거리를 단축한 것이다. 하나의 작은 물체를 움직이려고 해도 그 물체가 지닌 고유한 운동성을 거스를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지금 우주에서 일어나는 초유의 사태를 관장하는데는 우주 전체의 질량의 수 배에 이르는 에너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태양의 400만배나 되는 극대거성인 용골자리 에타(η Carinae)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반세기 전에 관측된 거리와 2천광년에 이르는 오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거대한 질량 덩어리를 탁구공처럼 스매싱(smashing)해서 받아 넘긴 주체는 얼마 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즉 모든 의문의 본질이 되는 나팔소리에 대한 해답은 명쾌하게 풀렸다.

-나팔소리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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