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운명의 날(2012 Doom's Day) 2편에서 이어집니다.


최초로 이 행성을 발견한 때로부터 정확히 10억년이 지났다.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무기성 생물, 즉 무기체로 우주에서 자연 발생하는 생물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 무기체는 우주가 원래 하나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놀라울 만치 닮아서 외형적 차이를 빼면 거의 이복형제라고 해야 할 수준이다. 두 번째는 유기성 생물인데 매우 희귀해서 개체수와 거주 행성의 수를 따지자면 전 우주 생물의 0.0001%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의 다양성을 따져보면 우주에 바글거리는 무기성 생물의 일억 배가 넘는다.

그러나 우주 곳곳에서 보호받고 양육되고 있는 유기체 행성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은하의 어느 행성을 가더라도 외형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모든 유기체의 근본적인 고향이 같기 때문이다. 10억 년 전에 처음 발견했던 유기체의 천국으로 불리는 행성 지구는 이제 우주의 모든 유기생명들의 고향이자 신기원(新紀元)이 되어있다. 비록 지구에 번성하고 있는 십억 종이 넘는 생물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과 같은 조상을 지닌 수없이 많은 유기체들이 우주 곳곳에서, 수적인 면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무기체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으며 안정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주의 문명 연합체들은 지금 유기체들의 출발지인 지구를 주시하고 있다.



5억 4200만 년 전 지구에서는 그들이 제공했던 원인에 의한 유전적 오염치가 극에 달하며, 마침내 생물의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고 할 만큼 수없이 많은 종의 생물이 갑작스럽게 출현했는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유기체들은 원시 조상들이 40억년 동안 이룬 진화보다 더 극적인 진화를 단기간에 거듭하더니, 최근에는 우주의 문명체들이 감탄을 토할 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생물종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인류(人類, mankind)라고 이름붙인 그 생물은 미지의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빠르게 정보를 축적해 나갔으며, 백만 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만에 지표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환경에 대한 빠른 적응력과 극복 능력을 지녔으며, 다시 백만 년도 지나기 전에 우주와 자아에 대한 의문을 품는 지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류가 복잡한 기관을 개발해 사용하는 '제1단계 수준의 문명'을 넘어, 스스로 행성의 대기권을 벗어나는 '제2단계 수준의 문명'으로까지 발돋움하는 데는 불과 천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인류는 불가사의한 가치를 지닌 존재였다.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지구라는 행성이 무려 45억년동안 생물의 진화의 원동력이고 최종적인 목적으로 삼았던 것은 희귀한 광물종의 생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생물의 번성에 따라 소비되는 광물보다 생산되는 광물의 비율이 높았는데, 인류라는 종족이 출현한 이후에는 그것이 크게 역전이 되어서, 인류라는 단일 종족이 소비하는 광물의 양은 단위시간당 백만 배, 즉 인류가 1년에 소비하는 자원의 양이 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100만년 동안 생산하는 양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인류의 번성이 이대로 천년만 더 지속된다고 해도, 지구는 -그들이 발견한 이래로- 10억년 동안 축적했던 자원을 모조리 허비해 버리는 것이다. 하나의 은하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명체들이 백만 년 동안 사용할 자원을 불과 몇 억의 인류가 일 년 만에 써버리는 것을 지켜보는 그들은 '인류말살'이라는 극단적 수단에 대해서도 심각한 갈등을 느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들이었기에 진정한 지구의 자손인 인류를 지켜보기만 했고,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자원을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다행인 점은 우리 은하의 몇 몇 행성에서도 이미 성공적으로 유기체를 배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자원이 생성되기까지는 5억년이 더 지나야만 한다.

인류는 지혜의 눈을 뜨자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우주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류가 가장 먼저 의문을 품은 것은 자신들의 행성을 공전하는 위성, 달이었다. 달의 질량과 밀도, 공전과 자전 주기, 조력과 크기 등을 면밀히 계산하고는 '자연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들에 의해 건설된 자원 정제 시설이나, 2억6천만 년 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의 생물을 우주의 재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막의 주시설물들이 모두 달의 내부와 어두운 부분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곧 인류는 자신들이 가진 의문을 일부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지구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지구의 희소성을 내세워 심각한 요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성으로 똘똘 뭉쳐진 문명체 연합에서 한창 고민에 빠져있을 때, 지구로부터 의외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지구에는 동서의 대륙을 중심으로 번성하던 두개의 문명 대치하고 있었는데, 호전적인 기질을 가진 한 문명의 도발로 전쟁이 발발했고, 그 전쟁은 이내 대륙 전체에 퍼져있던 중소규모의 문명으로까지 번지더니, 점차 서로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고, 마침내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이용해 서로의 문명 대부분을 바다 속으로 가라앉혀 버린 것이다. 그 충격의 여파로 말미암아 지구는 두개의 대륙이 사라졌고, 이어서 극심한 빙하시대가 도래하며 상당수의 고등 생물들이 멸종을 맞이했지만, 인류라 불리는 존재, 즉 문명의 칼을 지니고 자원을 허비하던 무리의 대부분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사라져 버렸다.

우주의 많은 문명인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참다운 우주애(宇宙愛 cosmosism)를 가진 지성적 존재들인 그들에게도, 인류는 너무나 비이성적인 존재로 생각되었고, 지구라는 행성 스스로가 인류를 주인으로 선택한 자체가 명백한 실수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인류가 지닌 그런 품성의 일부는 고대에 있었던 자신들의 관여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회의와 자숙을 하며, 소수 살아남은 인류의 무리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 밝혀지며 상황이 급변하게 되었다. 10억년 동안 은하와 이웃 은하의 수없이 많은 문명의 주체들에게 마르지 않는 자원을 공급해준 유기체들의 최종 진화 상태인 인류의 자멸에 의문을 품은 지성단체에서, 전쟁 발발에서부터 진행과 결과의 모든 과정을 면밀히 조사하던 중에 외부의 개입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인류 멸종에 대한 의문은 아무리 인류가 비이성적이고 호전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와 같이 서로가 깡그리 멸망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사건을 파고들수록 전쟁이 발생한 시점에서도 여러 가지 의혹이 나왔는데, 인류의 두 문명은 아틀란티스(Atlantis)라는 완충지대까지 설치하고 서로 대립보다는 경쟁 상태를 유지하려 했었다. 결국 이들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린 원인을 자신들 중 일부에서 고의로 제공한 것임이 밝혀졌다.

즉 그들은 두 문명 중 온건적인 한 문명에 우연을 가장해 미지의 기술을 전수하고, 그것을 은밀히 호전적인 문명이 알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상당한 위기감을 가지도록 치밀하게 공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거나 한쪽이 일방적인 우세를 보일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기술을 열세인 문명에게 전수하여 항상 팽팽한 균형을 이룬 전쟁을 지속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류가 비록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 기술력을 지녔지만, 주변의 피해를 거의 주지 않고 목표한 대륙만을 침몰시킬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마지막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가능하면 주변 환경과 자원의 파괴를 극히 꺼린 듯, 매우 조심스럽게 공격 범위를 설정했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정황 증거만으로도 외부문명의 개입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 연합체에서는 인류 멸망에 대한 책임과 보상의 일환으로 하나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지난 시간동안 인류 문명이 보여주었던 지적 능력과 발전 속도 등을 고려하여, 생존한 백만 정도의 인류가 다시 독자적인 문명을 일으킬 때까지의 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 동안 우주의 어떤 문명도 지구와 인류에 대한 일체의 간섭과 개입을 중단하고, 자원의 채취도 완전히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문명을 재건했건 못했건 그 설정 기간이 지났을 때, 지구의 대표인 인류 앞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인류 스스로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기로 했다. 그때 인류가 해야 할 선택은 지성적인 우주 문명체에서 오랜 시간동안 지켜본 인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제시하는 두 가지 길 중에서 한 가지 길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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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지구를 담보로 맡기고 그들이 인류를 위해 건설해 둔 새로운 문명의 세계로 갈 것인가? 아니면 우주 유일의 유기 문명족으로 지구에 남을 것인가? 둘 중 한 가지 길만 선택할 수 있다. 전자라면 은하의 모든 문명으로부터 감사와 환영을 받으며, 유기 생물의 기원이라는 영광의 타이틀도 영원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후자라면 그들은 즉시 인류 앞에서 사라지고, 인류를 철저히 외면할 뿐 어떤 관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인류는 우주 유일의 유기체의 문명이므로 자멸할 때까지 다른 어떤 문명과도 교류하지 못한 채, 우주를 외롭게 떠돌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므로 인류가 멸망한 후에는 아무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이, 주인 없는 행성 지구를 차지하면 되는 것이다. 인류는 내버려두면 스스로 쉽게 멸망할 만큼 위험하고 충동적인 종족이므로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원한 비밀도, 사라지지 않는 지식도 없다는 말처럼 그들의 약속은 자신들끼리의 비밀로 남지도 못했지만, 온전히 인류의 후세들에게 전해지지도 못했다. 고대 문명의 아련한 기억을 이어받았던 몇 몇의 잔류 문명들은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그들이 설정한 기한, 즉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그것을 세기고 기록했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저 전설처럼 떠돌다가 그림으로, 문자로, 혹은 조각이나 거석으로 이어지다가, 그마저도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 그들이 정한 기한은 2만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아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확히 3년 반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말이 아니며 선택을 위한 운명의 말인 것이다. 그리고 기회인 것이다. 어차피 지구의 주인은 인류이므로 우리는 선택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 때까지 지구를 훼손하지 않고 그 가치를 보존해야만 하는 것이다.

곧 그들이 찾아올 것이고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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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31일에 시작해 무려 2년에 걸쳐 연재했던 포스트가 끝났군요. ^^)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는 다시
인터넷(GWW)도 안되는 안드로메다로 떠납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지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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