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한없이 넓어 광대하기만 합니다. 우주의 크기는 우리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끝이 없고, 실제로도 그 끝의 영역을 임의적으로 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우주이고 어디서부터가 우주가 아닌지를 구분 짓는 개념을 논리적으로 이해한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주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면 우리는 최근에 우주에 나타나서 겨우 우주의 작은 면을 보고 있을 뿐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지각할 수 있는 한계까지를 우주라고 여기고 그 이상의 것은 그저 막연히 추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시력의 한계까지였고, 지금의 우주는 온갖 도구의 힘을 빌려서 그 영역을 확장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우주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으며, 우리의 기술이 발전해서 더 세밀하고, 더 거대한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그와 비례하여 더 많은 보이지 않는 부분과 볼 수 없는 부분이 늘어만 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십억 년 정도, 인류의 기술문명이 벽을 넘어 꾸준하게 발전하며, 늘 새롭고 획기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 하여도, 우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실체의 대부분을 숨긴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Amy's Mardi Gras Style face paint moved to SPACE using Photoshop CS4.
Amy's Mardi Gras Style face paint moved to SPACE using Photoshop CS4. by Kostyn Racing Photography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그런데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이 우리의 인지를 제한했던 것일 뿐이지 우주는 무엇을 숨기려고 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주를 발견하고 우주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력 체계인 다섯 가지 감각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감각들은 수용범위가 지극히 한정적이며 대부분이 매우 주관적인 반응 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특성과 경험에 의해 상당히 다른 형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오감 중에서 공기 중의 휘발성 물질을 감지하는 감각인 후각(嗅覺)은 감기 걸린 똥개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미각이나 촉각의 경우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으며, 물이나 공기 등을 통해 전해지는 음의 진동을 감지하는 청각의 가청 범위는 20 Hz에서 20 kHz 정도에 지나지 않아 적합자극을 넘어서면 별도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감지할 수도 없습니다. 많은 수의 동물들이 우리가 듣지 못하는 고주파 등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데 비해, 우리는 지나치게 좁은 범위의 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 현상과 상태를 인식하는 감각인 시각(視覺)은 사람이 지닌 오감 중에서 가장 외부 자극에 민감하면서 많은 정보를 수용하고 있는데, 색과 사물의 모양과 질감, 거리 등의 공간감각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은 약 400∼720 nm의 전자기파로, 많은 지구 생물체 중에서 그다지 우수한 편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우주는 백억 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자극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우리가 우주 공간에 나간다면 이런 여러 감각 중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각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빈약한 감각기관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우주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막중한 압력을 주고, 거친 기류가 굽이치며, 시간의 소용돌이가 휘감기는 우주에서 너무나 미약하게 태어난 존재인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방법은 체감할 수 있는 우주를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적게 보고, 조금 듣고, 아주 가까운 주변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는 우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우주의 아주 조그마한 부분만을 선택해 그것이 전부인양 생존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영원한 속박을 전제하며 설계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미지에 대한 갈증을 지니고 있으며, 그를 충족시키려는 지적인 갈구로 인해 감각 이상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보조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과 육체 중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편중되지 않는 고요한 상태에 이르면 감각 이상의 감각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처음 지성을 계획할 때, 우주를 제한하면서도 더 넓은 우주를 인정하고 그를 향하도록 한 생명적 본능, 원형의 의지를 그 바탕에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생명의 본질은 우주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어쩌면 우주 자체가 의식적으로 생명을 설계할 때, 생명에게 그러한 본성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모든 생명은 생존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더 나은 상태로 진화하려고 하고, 감각과 정신의 지수를 조절하며 기능을 개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류의 본질적인 가치관이 객체의 생존보다는 종족의 불멸을 우선 하는 것도 그런 의지의 본능적인 작용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04/05/2009 (Day 3.124) - Veni Creator Spiritus
04/05/2009 (Day 3.124) - Veni Creator Spiritus by Kaptain Kobold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아무튼 우주는 아무리 많은 속성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모두에게 공평하고 동일한 반응을 하고 있는데도, 수용하는 객체의 인지력에 따라 반응은 현상으로 감지되어 주관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백만 가지의 감각을 지닌 객체가 보는 우주는 우리보다 분명 수만 배 더 섬세하고 웅장하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우주를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우주는 보는 이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서 우주의 속성 중 긴밀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결코 객관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천억의 천억 배가 넘는 우주의 별들 중에 하나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고 살아 왔던 수천 년 동안에도 우리는 그것의 잘못을 알지 못했듯이, 지금도 우리는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볼 수 있는 제한적인 시야에 근거해서 우주의 나이와 크기를 계산하며, 그 잘못된 추론을 진리의 가운데 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오류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진보가 일억 년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하여도 지금의 오류는 정정될지언정 시대를 기준으로 하는 주관적인 오류는 무한히 반복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지성들 역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주를 자신들을 기준으로 삼아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외계인을 상상할 때,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외형을 가졌으리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감각 체계를 기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시각, 청각, 후각 등이 외부 신호를 받아들이는 주요 감각일 것이라는 착각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를 더 확실하게 관찰하는 데는 시각이나 청각, 후각보다 효과적으로 자극을 인지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수없이 있습니다. 또 주변을 의식하고 받아들이는 데도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우리의 오감은 무의미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심해와 같은 환경을 지닌 행성에서 진화한 지성이라면 시각이나 후각 보다는 오히려 전기적인 자극을 이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눈이나 귀, 코는 불필요한 기관이고 다양한 전기적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기관만이 대화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압의 환경에 적절한 신체구조를 지녔을 것이므로 우리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외형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대기가 희박하고 중력이 약한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라면 매질의 부족으로 후각이나 청각보다는 시각이나 압력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므로, 역시나 우리와는 매우 다른 형태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와 동일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선택과 외형 이외의 다른 생존 전략 등의 요소에 의해 우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지성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우주에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외계인은 1억 종의 지성체 중에서 겨우 한 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가 지닌 다양한 속성을, 생명체마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우주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주므로, 결과적으로 그런 다양성이 바로 우주가 처음부터 지닌 의지이고, 의지의 실현이자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등하지 않고 무작위한 이런 변수로 인하여 우리 우주는 다른 수많은 우주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게 되는 현상일 것입니다.

우주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주는 처음부터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굳이 목적을 찾자면 존재하는 자체가 목적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도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근본적인 우주의 목적인 존재를 위협하거나 대응할 수 없으며, 동등하게 될 수도 없습니다. 그 속에 계획되고 포함된 모든 생명체들 역시 우주의 속성을 이어받았기에, 존재한다는 것보다 우선되는 목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만큼의 우주만 받아들이며, 더 큰 우주를 지향하는 목표를 가지면 됩니다. 어차피 우주 그 자체가 아닌 이상 우주는 주관적인 진리 위에 놓여 있으므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던 변방에 던져 놓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The Hitchhikers Sign to the Universe
The Hitchhikers Sign to the Universe by orvaratl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섬세한 우주는 그것을 관찰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반응하고 있으므로, 주체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우주는 그를 우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한 생명체의 의지에 의해서 우주가 격력하게 요동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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