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갑자기 멈춰서는 일이 생겼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대로 멈춘 채 몇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거나 길을 걷다가도 그 자세 그대로 멈춰선 채 꼼짝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외계 탐사를 하던 중요한 순간에 멈춰 버려서 다른 대원들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리고 보통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데, 자신에게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증상에 대해서 처음에 셧다운 증후군(shutdown syndrom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전원 고장이나 기타 오류 등의 이유로 컴퓨터 시스템의 작동이 중지되듯이 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알 수 없는 오류에 걸린 듯 갑자기 행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 현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멈춰있는 중에는 평소보다 더 활발한 뇌 활동을 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증상의 이름을 좀비 증후군(zombie syndrome)이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좀비 증후군이 실리콘밸리의 한 AI 소프트웨어 기술자에게서 나타났을 때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는 증상이었고, 또 두 시간 만에 정상을 찾았기 때문에 그를 원격 검진했던 회사 소속 의사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의 검진 기록 메모리를 복사하여 원칙대로 질병협회에 전송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비슷한 증상을 기록한 메모리 차트 일곱 개가 협회에 도착했고, 인공지능은 그것을 따로 묶어서 별도의 섹터(sector)로 분류한 후 담당자를 호출했다.



좀비 증후군은 특별한 원인 없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 발생 그룹은 실리콘밸리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본과 인도, 캐나다 등지에 산발적으로 발생했고, 그들의 증상이 사라진 후에 다시 증상을 보인 세 번째 그룹 역시 이전 그룹과의 별다른 개연성이 없는 장소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좀비 신드롬이 독특한 것은 한번 경험한 사람에게 다시 발생하는데 그 증상을 보이는 시간이 지역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증상이 나타나는 사이클은 전혀 일관성이 없지만, 첫 번째 그룹이나 세 번째 그룹이 세계 어디에 있던 같은 시간에 증상이 시작되고 같은 시간에 일시에 깨어나는 것이다.

학자들을 가장 당황하게 한 것은 최첨단 기기들의 도움을 받고도 실제 증상이 일어날 때까지는 아무런 사전 증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좀비 신드롬 환자 자신도 전혀 징후를 감지하지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장소에서나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서 황당하고 위험한 상황에 부딪치기도 했다. 한 달 사이에 좀비 신드롬 증상이 발현한 것은 모두 4회였고, 환자의 수는 200명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좀비 신드롬이 발생하고 난 후에는 그 수가 무려 1000명에 육박했기에 유엔(UN)은 전 세계 공통 네트워크를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이 공식적으로 공표하였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실제 상당수의 사람들이 좀비 신드롬 증상이 발현되는 중에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증상 자체는 사람에게 아무런 위험을 주지 않지만, 증상의 특성상 상황에 관계없이 몸이 멈춰 버리므로 추락이나 질식 등의 이차적인 이유로 사망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외출을 피했고, 집안에서도 증상에 노출되었을 경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의 집안 일은 안드로이드(android)의 몫이지만 목욕이나 운동처럼 직접적인 인간의 활동이 필요한 부분까지 안드로이드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질병협회는 유엔의 도움을 받아 긴급히 좀비 신드롬 증상을 보이는 전 세계의 환자들을 한 장소로 모아 격리시켜 연구하기로 하고, 샌타클래라에 거대한 규모의 수용 시설을 확보했다. 곧 최초의 증상을 보였던 사람을 시작으로 이틀 안에 생존해 있는 800여명이 모두 시설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학자들은 좀비 신드롬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들어서던 사람들이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차츰 안정을 찾으며 서로에게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입장에서 서로가 반가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니지만 대다수가 5~20명 단위로 친밀한 그룹을 이루고 있었고, 점차 그룹의 일원들 중 몇몇이 이웃 그룹의 몇몇과 다시 인사를 나누며 반가워했다. 학자들은 곧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Six Degrees of Kevin Bacon)을 기억해 냈다.



몇 가닥의 무작위 연결만으로 세상사람 모두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이 법칙을 작은 세상 네트워크(small world network)라고도 부르는데, 좀비 신드롬 환자들 800여명은 1~4단계의 연결만으로 모두가 아는 사이였고, 최초의 발현 환자를 빼면 모두 세 단계 이내에서 서로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관계였다. 그리고 학자들이 증상의 발현 순서대로 그룹을 나누자 그들의 관계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첫 번째 증상을 보였던 환자 한명이 두 번째 그룹의 일곱 명을 직접 알고 있었고, 세 번째 그룹은 모두 두 번째 그룹과 네 번째 그룹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룹 사이에는 지역적으로 가깝거나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가 서로 친구나 친척 사이라고는 해도 상당히 먼 거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증상이 전달되거나 감염(?)이 일어나려면 직접적인 접촉이나 최소한의 매개체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 중에는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음에도 1단계에 위치한 경우도 허다했다. 어쩌면 수년 전에 이미 좀비 신드롬과 관련되는 공통되는 원인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가 이제야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서로 먼 지역에 거주하면서도 같은 시간에 일시에 같은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여섯 번째 좀비 신드롬이 발생했다. 기존의 모든 좀비 증상의 환자가 한곳에 모여 일시에 멈춰버린 그 시간, 전 세계 곳곳에서도 오천여명의 사람이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정보가 곧 질병협회를 거쳐 특별 시설의 연구소로 전송되었고, 학자들의 예상대로 그들은 모두 기존 그룹 환자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연관성은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매개체는 찾을 수 없었고, 한 사람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수백 명 중에서 어떤 관계의 사람에게 좀비 신드롬이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노련한 학자 한사람이 좀비 신드롬에 빠진 상태의 사람에게서 보이는 뇌 활동과 평소의 뇌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비교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좀비 신드롬이 유발된 상태에서는 송과선(pineal gland)의 활동이 유달리 두드러지는 것에 주목하고, 정밀한 기기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관찰한 결과 그곳에서 일반인에게 드문 다량의 방해석(calcite) 결정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좀비 활동이 한창일 때에 이 결정들을 중심으로 미약하지만 분명한 라디오파가 발산되면서 곧 다른 환자들의 주파수와 공명하기 시작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워낙 미약해서 거의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지만, 그것은 놀랍게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다른 환자와도 서로 공명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처음 파동이 불일치하다가도 수초가 지나면서 서로 완벽하게 같은 간격 같은 파장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에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난 좀비 신드롬의 발현으로 환자는 백만 명이 넘어섰으나 여전히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3~4번 정도만 더 발현되어도 인류 전체로 감염이 확산될 것이다. 만약 조금 더 빨리 송과선의 결정 문제를 알아냈다면 전파가 완전히 차단된 장소에 격리하므로 더 이상의 확산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이젠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미 확산 속도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버린 것이다.


-그림 : 영화 아이 로봇 중에서
-다음 편에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스토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알아맞혀 보세요.

-23세기 좀비 신드롬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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