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 단순한 학술조사를 위한 승객 수백을 태운 탐사선이 호전적인 야만 종족의 공격을 받고 지구로 추락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호밀엥이라는 문명 종족의 일원으로 매우 지적이면서도 온순하며 도덕적인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였다. 그들은 추락 직전에 호밀엥 문명권과 당시 위치에서 가까운 선단을 향해 정해진 패턴에 따라 조난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구조 신호가 전파 변형기의 고장으로 초광속 회선을 타지 못하여 삼만 년 후에나 그들의 고향에서 수신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알았다고 해봐야 달리 취할 조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탐사선의 워프드라이브의 손상과 에너지 입자의 고갈로 당장 지구의 중력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들은 특수한 형태로 변형된 전파를 사용해 특정 물질을 압축, 결정화(結晶化 crystallization)하여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그 결정은 분자단위나 원자단위를 넘어 입자단위의 결정이므로, 가장 입자가 치밀한 물질도 십만 배 이상 압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보통 우주선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결정(結晶)은 우주선이 물리적 속도 한계에 대항할 때 소모되는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므로, 우주에서 가장 무거우면서도 입자의 붕괴(崩壞)가 쉬운 원소인 뮬론을 결정화한 기뮬론이었다. 적함에 공격당할 때 기뮬론은 흩어졌고, 다시 뮬론은 두가지의 다른 원소로 붕괴되어, 그들은 최소의 보조 동력만을 이용해 파괴된 우주선의 일부를 개조하여 생존해야만 했다.

파괴된 입자변환 장치를 어느 정도 복구했지만 지구에서 흔하지 않는 뮬론이라는 광물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행성을 스캔한 결과 적은 양이지만 지표면 아래에서 뮬론이 발견되었지만, 그들이 직접 채굴하기에는 행성 전체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산소의 독성은 너무나 위험했다. 다행히 행성의 생물은 환경에 순응한 덕분인지 자신들이 가진 하이드로게노솜(Hydrogenosome)과는 다른 콘드리오솜(chondriosome)이라는 형태의 세포기관 때문에 산소에 이용하며 생명활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처럼 독성이 가득한 행성의 가혹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지구의 수많은 생물군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그 중에서 비교적 지능이 높고, 원시적이지만 도구의 사용이 가능한 하나의 종을 선별해 그들을 훈련시켜 뮬론 채굴에 이용하기로 했다. 그 생물은 다른 생물에 비해 지나치게 나약하고 온순하며, 개체의 수도 빈약해 오래지 않아 멸종할 생물이었다. 매우 진보한 형태의 두뇌구조를 가지고 편리한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나, 현재 이 행성의 생물군의 형태로 보자면 시대에 앞서 나타난 프로토타입(prototype)의 시험적 생물이라고 여겨질 만큼 허점투성이였다. 그들은 우선 이들의 유전자를 몇 세대에 결쳐 조작하여 기본적인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해 뇌의 용량을 늘리고 도구 사용이 좀 더 용이하도록 안정적인 신경망과 섬세한 근육을 구축하게끔 변형을 가했다. 덕분에 지구에는 전혀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닌 새로운 종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호밀엥 문명의 기술자 몇몇이 자신들의 필요와 편의를 위해 이종 생명체에게 가한 작은 조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구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기술에 의해 생산된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먼 훗날 인류라고 불리는 종족의 기본적인 특성과 목적은 외계 종족의 자원채집을 위해 개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원시인류의 도움으로 충분한 양의 뮬론을 채집하였고, 기뮬론으로 결정화하여 자신들의 문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호밀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에서 가장 초월적인 문명을 이룬 종족이 되었다. 호밀엥이 대부분의 우주 문명이 대면하게 되는 문명 한계의 벽을 급작스럽게 뛰어넘고 다음 문명으로의 진보를 이루어낸 데에는 지구의 원시인류가 공헌한 바가 크다 하겠다.



우주는 우주를 구성하는 376가지 원소와 그 원소를 구성하는 36가지 기본입자(elementary particle)와 그에 대응하는 36가지의 반입자와 다시 기본입자의 근본을 이루는 고리(Loop)와 그 고리를 담는 공간(space)으로 되어 있다. 고리 자체는 일차원의 끈으로 되어 있지만, 끈은 둥근 형태로 말린 채 대칭구조를 가진 고유한 영역의 공간(space group)을 차지하므로 각 개체는 2차원을 형성하고 있다. 다시 그것이 진동하면서 진동하는 범위에서 막을 이루어 좀 더 자신의 위치를 강건하게 하고 있다. 고리는 단 한 가지이고, 그 숫자도 정해져 있어 그 고리의 총체가 우주의 무게이고, 그 고리를 담고 있는 공간이 우주의 부피이다. 그리고 한 가지의 고리만으로도 우주는 일억 가지의 색과 일억 가지의 온도와 일억 가지 다른 형태의 물질과 에너지로 화려하게 꾸며진다.

우주에서 난 생명은 어떤 형태로든 그 자극을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이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가 같은 감각을 가지지도 않았고, 같은 양의 정보를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 가지의 감각 기관을 가진 생물은 천 가지의 감각으로 우주를 인지하고, 어떤 생물처럼 열 가지도 못되는 감각만으로 우주를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호밀엥은 선조의 노력으로 잘 조화된 뇌를 타고난 덕분에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종류의 감각을 인지할 수 있었다. 보통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그들은 가시광선(可視光線)을 비롯하여 적외선(赤外線, infrared ray)이나 여러 종류의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s)에서 중력상호작동 등의 약 오백여 가지의 감각을 인지할 수 있는 기관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변성의식상태(變性意識狀態)에서는 일반 의식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숨겨진 감각을 받아들여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인류는 비록 몇 가지 감각만을 제한적으로 받고 있지만, 그것은 그 상태가 생명유지에 덜 위험하고, 생명활동에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의 뇌를 조작한 그들은 생물학적인 면에서 뇌의 기능과 그 가능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의 뇌를 연구하며 그들이 알고 있던 기능적인 역할 외에도 독특한 작용과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의 단순한 도구 개발의 목적과 달리 그들은 진화의 과도기에 놓인 미개한 외계 종족의 뇌를 다루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진보의 힌트를 얻었던 것이다.




이미 문명을 이루어 온전해진 생명체는 정리되고 잘 관리된 효율적인 뇌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극의 인지와 수용, 판단과 결정, 전달과 실행의 과정이 가장 이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지만, 다양한 형태의 격정적인 감정과 결정되지 못한 불안하고 겹쳐진 구조적 모순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우주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원시 인류의 진화에 개입하다보니 그들은 모순이 가득한 뇌의 여러 기능과 역할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이미 완벽하게 밝혀졌다고 믿었던 뇌, 본래의 성질에 대한 의문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매우 충격적인 문제로 뇌, 정확히 생명체의 주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다뤄야하는 철학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그 문제는 다시 마음(citta)의 주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오래전 그들은 마음이란 뇌의 활동에 따른 부가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정밀한 뇌는 더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마음을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대다수의 문명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스스로 유전자의 변형을 가하여, 점차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뇌와 그를 지탱하는 신체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자신들에게는 이미 사라진 원시의 뇌를 조작하면서 그들은 뇌가 단순히 정보 분석과 주체의 생존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의 존재 이유가 객체의 본능에 의한 것만이 아니며, 그것에는 우주 자체의 의지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관여하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었다. 생명체의 뇌는 그 객체의 주체인 ‘의식(意識)’이 현 우주의 감각을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필터(filter)이며, 그들의 의식을 발현(發顯 apparition)할 연결고리였다. 생물의 뇌가 불완전하면 의식은 우주를 원하는 만큼 인식하여 분석할 수 없고, 반대로 자신의 의식을 현상 우주에 뚜렷하게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뇌는 단순히 우주와 의식의 가교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정보를 생물학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이란 ‘생물의 본래가 되는 선천적인 의식과 그 의식이 행한 모든 정보의 집합에 의해 복제되었지만 독립된 자아를 가진’ 생물학적인 ‘마음’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채 공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뇌의 기능 정지와 함께 ‘마음’은 사라지고, 본래의 의식은 미련 없이 도구가 되어준 육체를 버리고 우주의 본질로 돌아간다.



-모든 그림 출처 : fdecomite
-이 포스트는 작가의 상상에 의한 픽션(fiction)입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우주(Das Universums als Wille und Vorstellung)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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