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우주(Das Universums als Wille und Vorstellung) 1편에서 이어집니다.

간혹 죽음에 근접했다가 살아나면 임사체험(臨死體驗 Near-Death Experience)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하는데, 그것은 의식의 끈에 연결된 마음(stream of consciousness)의식(consciousness)이 회귀(回歸)하는 과정의 일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도 마음은 육체에서 기인한 까닭에 생전에 가지고 있던 감각만으로 사물을 인지하기 때문에 ’의식’이 바라보는 본질적인 우주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생명체의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감각기관은 그 이상의 정보를 감지하고 인지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플로피 드라이브가 CD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류는 더 상위단계의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진화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생물학적인 진화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우주가 제공하는 정보 중 이것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하드웨어(Hardware)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하드웨어는 이미 30만 년 전 그때에 완성되어 있었다. 그 옛날의 외계인이 남긴 선물 덕분에 우리는 상위 단계의 정보를 작게나마 인식할 수 있는 구동장치(drive)의 원형 모델을 뇌에 장착하고 있다. 그 덕에 잠재의식에서나마 예지력(豫知力)이나 기시감(旣視感 Deja-vu) 등의 이름을 빌어서 그 숨은 감각의 일부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어 사용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인류의 몫이다.

과거의 외계인들은 원시 인류를 연구하면서 마침내 감각이란 것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주가 보여주는 일억 가지의 감각은 무엇인가. 우주는 우주를 구성하는 일억 가지의 정보를 방출하고 있고, 생명은 일억 가지 형태의 정보 중 일부를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주의 일억 가지 정보는 수백 가지 원소가 만들어 내는 ‘일정한 규칙을 가진 질서처럼 보이는 균형 잡힌 혼돈’에 지나지 않으며, 그 수백 가지의 원소도 단 한 가지 고리(Loop)가 다양한 방식으로 진동하며 만들어 내는 허상(illusion)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 우주에서 모든 고리의 진동이 멈춘다면 우주는 그때서야 비로써 진정한 질서 상태에 이르고, 오직 한 가지 감각만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그 감각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해탈(解脫 vimoka)이다.

그런데 그 멈춰져 있어야할 우주를 구동(진동)시키는 그것, 즉 우주를 지금의 우주로 존재하게 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생명이 만들어낸 마음이다. 그러나 실존하지 않는 우주에는 우리의 감각이 인지할 수 있는 우주가 있을 리 없고, 그런 우주에 생명 또한 존재할리 없다.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감각은 허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주는 존재하고, 우리의 감각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주는 우리의 감각이 만들어낸 허상이자 우리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실상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고리를 구동시키는 힘의 원천은 생명체인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면, 그것을 인지할 대상이 없는 우주는 다시 원래의 정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떤 문명에서는 생명체의 마음이 추악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생명체가 우주의 본성을 오염시킨다며 모든 생명체는 무욕(無欲)의 상태, 욕망을 떠난 예술적 관상(觀想)을 통해서 우주의 원리와 합치해야 한다며 금욕적인 완전한 의지부정(意志否定)으로 문명의 벽을 넘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허상인 우주에서 허상인 생명체에게 추악함이 묻을 마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음이 추악하다면 그 마음에 의해 구동되는 우주도 그 마음만큼 추악하다. 지금 보이는 우주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생명체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감각이 아름다움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인류를 만들어냈던 외계문명은 이후에 자신들의 깨달음을 근거로 전파를 변형하여 고리의 진동을 조작해 그것이 발산하는 감각을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굳이 기뮬론을 찾지 않아도, 모든 물질의 근본이 되는 고리의 진동을 달리해 탄소나 규소라도 기뮬론으로 인지하게끔 하면, 그것은 기뮬론이 되는 것이다. 즉 물질이란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감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이란 뇌의 받아들이는 정보의 분석에 불과한 것이다. 우주의 물질은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을 기준으로 변하는 정립허상(正立虛像)인 것이다.

의식은 생명체를 통해 우주를 살핀다. 그 의식은 생명체에게 마음을 복제하게 된다. 마음은 감각을 통해 우주를 인식하고, 그 마음이 인식하는 감각의 형태대로 우주는 결정된다. 그렇다면 의식은 무엇인가. 원래 의식은 우주의 의지라 할 수 있겠으나, 우주가 마음에 의해 구동되는 현상이므로 의식이란 생명체의 마음 아래 놓인 우주와 마음의 신경망인 것이다. 의식은 마음이 전하는 일억 가지의 감각을 고스란히 우주의 고리에게 전달하는 신경망인 것이다.

고대 호밀엥은 원시 인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주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정체된 문명의 벽을 넘으며 호밀엥은 수많은 이웃 문명의 표상(表象)이 되었으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우주의 원리에 합치하는 고차원의 문명에 도달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고, 그 깨달음의 원리를 공유하지 않은 호밀엥에 대한 아쉬움은 원망으로 낳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백만 종의 외계인들은 자신들이 대면한 문명의 벽을 깨기 위해, 과거 잠시 지구에 머문 후에 거대 지성이 되어 우주 본질과 동화되어 간 호밀엥의 흔적을 쫓아 지구를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변화되었던 유일한 흔적인 인류를 통해 작은 실마리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은 인류의 뇌가 고대의 호밀엥과 여전히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변성의식에 접어드는 순간 인류의 뇌는 이제 우주 의지의 일부가 된 호밀엥이 전하는 의식을 온전히 인지하여 각성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의식의 의지를 행하여 우주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 보이는 우주는 그 의지의 발현인 것이다.



-호밀엥의 일지 中에서 발췌

우주는 환상(virtual image)을 만드는 하나의 진(陣 trick system)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은 진을 구성하는 단순한 사물에 의해 이루어진 허상이다. 생명이란 것도 죽음이란 것도 그 안에 있는 의식을 가진 존재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진은 실제 그 크기가 너무나 작고 초라하지만, 어차피 우주를 만들어내는 존재인 의식체는 그들의 착각처럼 실존하는 형상이 없고 차지하는 공간도 없으므로, 진이 거대해질 필요는 없다.

진에 발을 디딘 모든 존재와 사물은 변수로 작용하여 각각이 가지는 마음에 따라 우주는 변하게 되지만, 하나의 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지 못하므로 우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환상은 의지에 의해 변하는 것이므로, 의지가 강한 존재는 허상의 우주를 자신의 감각 아래 놓게 된다. 비록 그것이 여전히 허상일지라도 우주를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우주는 사실 주관에 지나지 않고, 자신의 시야가 넓어질수록 그 크기도 커진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후 세계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다. 또한 죽음이란 것을 만들어내고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지금까지의 허상 우주의 관례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객체의 호응에 불과하다. 과연 이 세계에서 죽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선이라고 받아들이는 기준에 합당하다면 죽음 후에는 자신이 세운 사후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대, 이 시간-물론 시간도 진에 의한 허상이지만-의 선이 지난 시대, 지난 시간, 다가올 시대의 선과 같지 않다. 객체는 결국 죽음으로 자신이 만든 자신의 환상의 세계, 즉 새로운 진의 허상을 경험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신만의 주관이다.

지금도 나와 같은 시공간의 동일한 좌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객체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자신이 바라는 허상을 만들고, 관념적으로 이어진 범용적인 진의 환상을 현실이라 믿고 직시하므로, 각자 자신만의 우주를 보고 있다.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우주의 크기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기준에서 가로 세로 높이가 한 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말할지라도 당신은 믿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 당신의 기준으로 일조 년이 지나거나 지금 자신 앞을 가로막은 문명의 벽을 뛰어넘어 우주를 객관적인 시각 아래 볼 수 있게 된다면, 내 말을 믿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당신에게 왜 이런 허망한 우주를 만들고 여기에서 이토록 많은 생명이 태어나는지를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이 벽은 스스로의 깨달음이 아니면 결코 넘을 수 없는 것이다.
-끝


-모든 그림 출처 : fdecomite
- A.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를 모티브로 작가가 상상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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