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설계(知的設計, Intelligent design)
는 생명체의 구조나 정보에 자연선택처럼 방향성 없는 진화 원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소가 많고, 또 우연적인 요소보다는 의도적인 요소가 많으므로 생명이 지적인 존재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피조물이라 믿고, 그것을 검증 가능한 과학적인 도구로 증명하려는 논리입니다. 진화론이 생물의 발생과 변화에 인위적인 유도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모든 생물학적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적설계이론은 진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특정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의 해답으로 지적설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적설계이론은 UC 버클리의 법학 교수인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이 1991년에 출판한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이 효시라 볼 수 있지만, 이미 2500년 전 플라톤(Plato)은 티마이오스 (Timaios)에서 우주가 지성적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우주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demiourgos)는 무엇을 창조하든 선(善)을 실현하며, 무엇을 만드는 과정은 무엇을 본뜨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우주도 이미 존재하는 원형을 본뜬 모상(模相)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수천 년을 격한 둘의 주장은 모두 지적설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비슷하면서도 범위나 대상이 서로 다릅니다. 또한, 현대의 지적설계이론에서는 지적인 존재에 의해 설계된 사실만을 증명하려 할 뿐이지 설계자가 누군가인지는 다루지 않고, 그 원리와 목적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플라톤은 창조자의 창조 원리로 선(善)의 이데아를 내세우고, 모상인 피조물의 의미도 밝혔습니다.



우주가 지적인 존재의 설계로 탄생하였다면 설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계자는 그것을 설계하기 전에 우주의 모델을 구상하면서 손수 창작을 하거나 어떤 원형을 참조하여 모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계의 구상 과정이나 설계자가 누군지는 우리 수준에서 알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설계와 창조의 목적은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시간이 워낙 짧아서 그 목적을 추측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우주는 지금 완성된 상태가 아닐 것입니다. 현재 우주는 안정적으로 고정되지 않아 아주 활발하며 격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우주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설계도에 따라 건축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우주의 건축 사업이 137억 년 전에 시작되었음을 아는 우리 중에는 그 긴 세월 동안에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에 반감을 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광대한 우주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보고 설계할 정도의 지적인 존재에게 137억 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장구한 세월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 남은 앞으로의 수백억 년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우주의 역사는 길고 긴 억겁의 시간이지만 다행히 현재의 과학만으로도 아주 먼 미래에 완성될 우주의 형태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형 우주를 통해 우주의 운명, 즉 설계자가 의도하는 우주의 목적도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2001년 발사된 더블유맵(WMAP,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위성은 우주배경복사가 얼마나 적색편이(red shift) 되었는지를 관측하였는데, 관측 자료를 분석해서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알려진 우주 팽창속도는 우주거리의 기본단위인 1Mpc당 초속 71km로, 대략 326만 광년 거리가 매초마다 71km 정도 속도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 팽창 속도를 역으로 추산하면 우주가 하나의 점이었던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다소 복잡한 요소들이 추가됩니다. 물질이 서로 멀어지면서 약해졌던 중력이나 인플레이션시대(inflation epoch)의 팽창률 등을 고려해서 계산하면 우주가 하나의 전자보다 작은 점에서 대폭발(Big Bang)이 일어났던 시기가 약 137억 년 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15년 모든 우주론의 초석이 될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던 아인슈타인은 원래 우주가 정적이고 균일하다고 믿었지만, 곧 자신의 방정식이 역동적인 우주를 암시하고 있음을 발견하자 당황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주에는 밀어내는 힘인 척력(斥力)을 가진 에너지가 있어 서로 끌어당기는 에너지와 힘의 균형을 이룬다는 가설을 세워서 중력의 세기를 좌우하는 ‘중력 상수’처럼 척력의 세기를 좌우하는 ‘우주 상수’ 개념을 만들어 이미 완성된 자신의 방정식에 추가하였습니다. 1929년 허블이 거의 모든 별에서 적색편이를 발견했는데 멀리 떨어진 별일수록 더 빠르게 우리에게서 멀어지며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습니다. 그전인 1922년에 이미 러시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ksandr Friedmann)은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단순화해서 우주가 팽창할 수도 있고, 수축할 수도 있다는 해를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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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AP 위성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구성을 밝혀냈는데 우주는 4.6%의 물질과 23%의 암흑물질(dark matter), 그리고 72%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비는 우주의 평균밀도에 대해서 각각이 지닌 특성인 인력과 척력 등으로 팽창력에 영향을 주므로, 앞으로 우리 우주가 어떤 종말을 맞이할지 예측할 수 있게 해 줍니다.

WMAP 위성의 관측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우주의 미래에 대해 두 가지 예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우주가 팽창하다가 다시 수축해 하나의 점으로 돌아간다는 대붕괴이론(Big crunch)과 영원히 팽창하여 차갑게 식는다는 빅프리즈(Big Freeze)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WMAP 위성은 우주가 팽창이 점점 가속되면서 마침내 물질이 완전히 찢어져 버리는 빅립(Big rip)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증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물질은 우주가 팽창하면 단위 부피당 에너지가 줄어드는데, 공간 자체에 고르게 존재하는 진공 에너지(vacuum energy)인 암흑 에너지는 우주가 팽창해도 단위 부피당 에너지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력을 가지는 물질의 반대 힘인 척력의 암흑에너지는 상대적으로 계속 증가하면서 우주를 더 세게 잡아당겨 팽창 속도를 빨라지게 합니다. 빅립 이론대로라면 약 220억 년 후에 우주는 원자 단위 이하로 조각나서 평균 밀도가 거의 0에 이르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이 되기 6천만 년 전에 은하는 해체되고, 3달 전에는 태양계가 흩어지고, 30분 전에는 지구가 폭발하고, 마침내 원자마저 조각난다는 빅립의 시나리오는 끔찍하면서도 서글픔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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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설계자가 처음부터 빅립을 계획하여 설계한 것이라면 우리 우주의 목적은 물질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즉 빅립은 겨우 우주의 4.6%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릇을 굽는 과정에서 뜨거운 불길이 필요하지만, 불꽃이 사라진 후에야 그릇이 완성되듯 우리의 지금 우주는 완성된 우주를 위해 불을 지피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주를 아름답게 하고 찬란하게 만드는 빛의 우주가 단지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마는 소모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현재 발견되는 증거가 비록 우주의 최후로 빅립을 예견하고 있다지만, 우주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얻은 것은 아닙니다. 지적 설계자는 하나의 일회성 소모품을 위해 그 복잡한 설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우주가 설계되었다면, 설계자는 결코 우주의 모든 운명을 일일이 결정해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계자는 최소의 항목과 변수만 설정하고 주사위를 던졌으며, 우주는 주사위가 땅에 닿는 순간 위대한 지성을 지닌 지적 설계자의 의도대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확률이 동시에 발생하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잠시 주사위를 던지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Heisenberg)가 발견한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하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어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이 확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 하면 위치가 불확정해집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확정적인 값을 가질 수 없으므로, 하나의 현상을 어느 범위에서는 입자의 측면에서 보고, 다른 범위에서는 파동의 측면에서 봅니다. 따라서 미시적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여러 번의 관찰로부터 얻어지는 기댓값과 같은 통계적인 예측만을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의 전자는 관측하기 전까지 어느 한 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핵 주변에 전자가 놓일 수 있는 지점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Katze) 실험에서 관측자가 상자를 여는 동시에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은 둘 중의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관측자가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 고양이’입니다. 즉 대상에 대한 관측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전자도 관측 전까지는 원자핵 주변의 놓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지점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우주는 전자보다 작은 하나의 점에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우주에 양자역학을 적용해 보면 우주는 다양한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던 상태였습니다. 양자론에서 나타나는 여러 역설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다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에 따르면, 모든 사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각자의 세계로 분리되어 평행 우주가 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우주가 대폭발의 순간 빅립을 지향하는 우주가 되었다면, 다른 종말의 시나리오를 가지는 수없이 많은 우주도 대폭발의 순간 함께 분리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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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는 수많은 종말 중에서 잔인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영원을 꿈꿀 수 없으며, 결국 220억 년 후에 우주와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그런 결말을 선택한 채로 태초를 맞이했으므로 우리의 운명도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평행 상태의 우주 중에는 평균밀도(Ω)가 1보다 훨씬 커서 이미 대붕괴를 맞이하고 나서 새로운 빅뱅이나 빅바운스(big bounce)로 더 많은 우주를 생산하는 진동 우주(oscillatory universe)주기적 모델(cyclic model)의 우주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Ω=1’로 빅칠(Big Chill)을 향해 식어가는 우주도 있고, 미묘한 힘의 균형으로 정적인 우주를 영원히 지속해 나가는 우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우주는 빅립을 선택했고, 우리는 그런 우주를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종말도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지적 설계자는 어떤 의도로 이 우주에 생명체를 추가한 것일까요? 어쩌면 게으른 지적 설계자는 골치 아픈 모든 항목을 그냥 복사해 붙여 넣고, 단지 오메가라는 하나의 변수만을 달리하면서 원하는 만큼의 재미있는 우주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부터 공학자는 쉽게 피곤해지는 법이고, 기일에 항상 쫓기며 삽니다. 우주를 이렇게 설계한 목적은 게으른 공학자가 완벽한 하나의 우주를 설계하기보다는 수많은 결과 우주 중에서 하나를 취해 상품화하려고 주사위를 던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데미우르고스는 발주자의 요구대로 하나의 원형을 모델로 수많은 모상을 조각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 우주에서 물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불과하고, 우리가 설계의 목적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아 참, 생명체……. 생명체는 설계되었을까요? 이 거대한 우주에 천억의 천억 배의 별을 종류별로 난수(亂數)로 배치하고, 각각의 변수에 따라 랜덤하게 행성계와 소행성대 등을 분포시키고, 어떤 조건에서 어떤 별이 새로 태어날지, 얼마만큼의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열어둘지, 암흑 물질과 에너지를 어떻게 분산해 숨길지 등등, 결정해야 할 문제가 이렇게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면, 당신은 우주 전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생명체까지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이미 말했듯 공학자는 항상 피곤하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는 발견해도 모른 체 넘어갔다가 발주자의 제기가 있다면 그제야 패치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수습생 중 누군가가 이스터 에그(Easter egg)로 그것을 끼워 넣었을지는 모르겠군요.



-모든 그림은 위키백과의 공용미디어와 NASA에서 제작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내일(2010.6.9) 예정된 나로호(KSLV-I)의 성공적인 발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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