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점(Boundary point) 1편에서 이어집니다.

서늘한 느낌보다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끝없는 공간으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은 눈을 감았다고 해도 바닥 있는 것과 까마득한 절벽에서 뛰어내렸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나 봅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눈을 뜨며 동시에 두 손을 휘저어 무언가를 움켜잡았습니다.  단단하고 평평한 촉감으로 그것이 버스의 맨 아래 계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올의 빛도 없는 온통 까만 세상에 당황해 머리를 들고 위를 봤습니다.


사각형. 그것은 직사각형이었고 그 평면적 직사각형에서 희미한 빛이 끊어지듯 짧게 세어 나오는데, 나는 그 직사각형의 밑변을 잡은 채 매달려 있었습니다. 당황과 곤혹으로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사실 그렇게 외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지금 술에 취해서 버스에 매달려 바동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소했지만, 너무나 현실감 있는 상황이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외친 기억이 납니다. “ 아저씨, 도와주이소~” 그리고 곧 버스 기사의 대답이 아득한 저 편에서 들려왔습니다.

“예 그라입시다”

우습게도 이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공포 영화에서 과장되게 표현하는 발자국소리. 저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울리며 다가오는 뚜벅거리는 발소리. 그리고 바로 위의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도 메아리 효과를 너무 사용한 듯 아득하게 울렸고, 곧 장갑을 낀 듯한 서늘한 손이 내 팔목을 잡아끌었습니다.

나는 상황이 곤혹스럽다고 느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좀 과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힘센 팔에 의지해 몸을 뒤로 비틀며 오른팔을 팔목까지 버스 계단에 걸치며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버스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악~“ 사실 그때까지 공포영화를 볼 때마다 공포에 직면한 사람들의 비명이 심하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무서우면 저렇게 비명이나 나오겠어? 비명을 지르느니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가야지..’ 그러나 나는 기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목구멍은 숨이 넘어가듯 컥컥거리면서도 저절로 비명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달걀귀신! 맨질맨질하고 말랑말랑할 것 같은 살결이었지만 얼굴에는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었고 검고 곱실한 머리카락 뿐. 달걀귀신의 모습 그대로 였는데 그 모습은 너무나도 무섭게 보였으며, 아무것도 없는 얼굴인데도 모든 표정이 살아있는 듯 했고, 어쩌면 미소를 짓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명과 함께 후다닥 손을 뿌리치며 바동거렸고, 곧 까만 공간에 떠있는 새하얀 직사각형이 끝없이 멀어지고 작아지는 것을 보다가 의식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왠지 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흔들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하며 반가운 목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떴습니다. “야 임마! 속 안 좋다고 먼저 가더니 여기서 자고 있냐?” 눈을 비비고 겨우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옆의 평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멍한 기분과 몸이 공중에 뜬 느낌.
“지금 몇 시고?”
“8시다. 니 그거 한잔 먹고 완전히 갔나보네”

친구와 헤어진 지 5시간이 지났고, 4x번을 기다리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것이 오후 5시이므로 이후 3시간이 지났습니다. 친구가 슈퍼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줬고, 잠시 후 그 친구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은 4x번 버스 노선과 똑같은 길이므로 택시 안에서 바깥을 보며 묘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oo여고를 지나 제과점 담뱃가게, 슈퍼 등등. 불과 몇 분전의 일인 듯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여고생의 얼굴과 투털거리던 말. 버스 기사의 투박스럽지만 친절했던 목소리까지..

친구는 그런 나를 술 때문이라고 여겼는지 아무 말 없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대충 샤워를 하고 저녁도 먹지 않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그것이 꿈이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너무나 생생한 기억들은 그것을 비현실로 몰고 갈 수 없게 했습니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자정이 넘어 잠이 들 무렵, 머리맡에 놓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오늘 오후 3시경 부산 xx동에서... 트레일러가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서 마주오던 4x 번 버스와 정면으로... 다행히 승객은 없었지만 버스 기사 A씨는 그 자리에서 ...”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는 버스기사는 종점에서 막 출발한 상태였고, 맞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트레일러를 못 보았기에 전혀 피하지도 못한 채 즉사했다고 하는데, 워낙 거센 충돌이었기에 얼굴과 온몸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끔직한 그 사건 때문에 2시간 정도 4x번 버스의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수소 원자를 1조배 정도 확대한다면 우리는 ‘운동장 한가운데 야구공 하나가 있고 트랙 제일 바깥쪽으로 좁쌀 하나가 외로이 떠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이와 같이 물질의 본질은 대부분의 텅 빈 공간에 야구공과 좁쌀이 양립하는 상태일 뿐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만지고 반응하는 물질이란 이렇듯 있는 상태보다 없는 상태가 훨씬 더 많아, 전 우주를 오직 있는 상태로만 압축한다면 전우주의 부피는 지름 10cm의 공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물질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하나의 좁쌀보다 작은 물질이 자신의 수천억 배를 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를 놓고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끌어 태양이라고 은하계라고 인지하고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담을 쌓고는 콘크리트라는 물질의 벽이라 인식해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는 통과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그 모든 물리적 현상은 마음에서 비롯되어 의지로 표출되고, 한계를 인정하므로 물질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납덩이의 99.99999%는 텅비어있고 우리 손과 발과 신경과 핏줄의 99.99999%도 비어있지만, 우리는 그 텅 빈 곳의 장력을 인정하기에 서로는 섞이지 않으며 인체라는 제한적 공간을 유지해 나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체의 그 빈 공간이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의지이듯, 우주의 텅 빈 곳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채워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조물주가 부여한 물질계의 법칙일 것입니다.

사람이란 것은 스스로 운동력을 가졌고 제한적인 수명을 지녔으며, 지적인 사고력의 가능성을 지닌 상태를 말하는데 죽음이 찾아오면 사람이라는 상태가 깨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각을 소유하고 유지해왔던 의식체와 그 의식체의 의지는 고스란히 남아, 지속적인 사고를 이어가며  자신의 육체와 지속해오던 주파대가 끊어져도 잔여 의지를 지닌 채 의식을 유지해 나갑니다.

그 의식체는 이미 자신의 의지를 표출할 대상이 없으나, 자신의 육체와의 통신상태가 끊어진 것을 모른다면 주변의 비슷한 물질을 대상으로 통신을 이어가게 됩니다. 엑토플라즘(ectoplasm)의 형태로 나타나는 그 의지는 일반 물질계와는 다른 주파대역을 가지고 있어 일반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게 되지만 비슷한 주파대역의 심리상태에 이른 경우 부분적으로 나타나거나 현상화 되기도 합니다.

4x번의 기사의 의지는 자신이 물질계와 단절된 상태를 모른 채 정해진 코스를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돌고 있었고, 마침 그 의지가 xx 정류장에 다가왔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그 의지와 비슷한 트랜스 상태에 이르러 있었기에 절묘하게 의식이 교차되고 겹쳐졌을 것입니다. 내가 육체와 더불어 4x번 버스에 탄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버스에 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식체의 가상공간의 신호를 수신할 확률이란 1억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버스에 타는 순간 의식을 잃자 주변 사람들이 취객으로 보고 평상에 눕혔을 수도 있으나 창문너머로 보고 들었던 여자의 음성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감 있게 각인되어 있기에 나는 분명히 육체를 고스란히 지닌 채 4x번 기사가 만든 가상의 의식세계로 공간을 이동했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의식체는 영혼과 달리 살아있을 때의 의지가 임의로 만들어낸 의지의 결과이며 그 의지는 기억의 한계인 1세기를 넘기 어려우므로 그 속에 동승한 외부의 의식은 같이 소멸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4x번의 노선을 순환하거나, 현실과의 너무 큰 괴리가 발생한 후에야 빠져나와 나 자신도 나의 육체를 감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까요?

가끔 새벽이나 늦은 밤에 텅 빈 버스에 혼자타고 있으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 이 이야기는 허구이므로 오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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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계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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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8 14: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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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하십니다. 마틴님~~
    안그래도 여름이라고 납량특집이 아닌가... 했는데... ㅠㅠ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마틴님!!
  2. 2008.08.08 14: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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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오싹오싹....;;;
  3. 2008.08.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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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일단 실제있었던 일이라고 한번 질러줘야 먹힐 듯 ㅋㅋ
  4. 2008.08.0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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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요, 이렇게 설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혀 허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5. 2008.08.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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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비슷한 경험을 두 번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마냥 허구로 들리지만은 않네요.
  6. 쪼굴이
    2008.08.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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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서버라..그래두 재밌네요..위의 Dalky님
    비슷한 경험담좀 들려주세요.
  7. 2008.08.09 12: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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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버스 운전사가 접니다. (응? 면허증이 자동2종인데?)
  8. 성야
    2008.08.0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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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름 끼치게 엄청난 내용이었는데 허구라...

    태공망이시군요 -ㅅ-
  9. 2008.08.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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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예전에 대낮에 가위 눌린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하네요.
  10. 2008.08.10 22: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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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구이던 아니던...
    정말 여름날, 시원하게 잘 읽었습니다!!
  11. 2008.08.10 22: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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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무서운 이야기를 과학에 연결짓다니, 새롭네요.
    근데 허구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핫.
  12. 쪼굴이
    2008.08.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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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읽어도 무섭당
  13. 2008.08.12 00: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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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허구라는 건가요.?
    ㄷㄷ

    정말 재밌네요.
  14. 행복해요
    2008.08.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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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라
    완전 몰입하고 정독했어요 ^^;;;;
    근데 정말 허구인가요?
  15. 2008.08.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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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ㅎ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난중에 선행감응(... 일종의 예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에 관한 글도 써주심이 어떨런지 ㅎㅎㅎ. ^^
  16. 골드
    2008.08.21 18:1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2003년 여름 혼자서 자가용을 타고 강원도 여행중이었다.
    너무 지쳐서 갓길에 차를 세운채 잠시 낮잠을 취했다.
    너무 피곤해 쉬이 잠들지 못하고 반쯤잠든(비몽사몽)상태였다.
    도로앞에서 가방을 멘 초등학생하나가 자나가면서 나를 슬쩍 흘려보며 지나갔다. 약간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가위에 눌린몸을 일으킬수 없었다.
    잠시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놀라운것은 내가 차를 세운지점이 인가가 아주먼 산길이었다.
    어른들도 걸어서 다니지 않는 그런길이다.
    도저히 초등학생이 걸어갈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과연 내가 본것은 무언지!!!!!!!!!!!
  17. 2008.09.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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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보다가 허구에서 좌절....쩝
  18. ㅎㅎ
    2008.09.12 03: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멋지군요!!
    1편까지 봤을 때는 정말 실제 겪으셨던 일인줄 알았습니다.
    이 블로그는 처음 와 보는데 혹시 작가이신가요?
    스티븐 킹과 움베르트 에코를 합쳐 놓은 듯한 글이군요;;;
    앞으로 자주 들르겠습니다^^
    • 2008.09.15 01: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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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처음 이런 류의 글을 올렸는데 좋은 칭찬을 해주시네요.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
  19. 지수
    2008.12.01 00: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으 한겨울에 이 글을 읽게 되네요. 아 괜히 읽었다. 무서운 영화도 못보는데.ㅠㅠ
  20. 랑유
    2009.12.0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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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허구였군요;;
    밤에 본 걸 후회하고 있었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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