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천재라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자신이 만들 상대성이론이 블랙홀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그 존재가 관측되기 전까지는 블랙홀이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블랙홀은 우리 은하계 안에만 해도 약 1억 개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은 자신을 유명하게 했던 3개의 혁명적인 이론 중 하나인 ‘블랙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량을 잃고 증발한다.’는 블랙홀 증발 이론을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30년 만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정보가 방출될 수도 있다'며 자신의 이론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손수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지동설을 지지하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Dia1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tolemaico e copernicaon)를 집필하였으나, 그 책은 교황청에 의해 금서목록에 올랐고, 그는 이단행위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이단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약하였으나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 그의 서약과 상관없이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회전한다는 오랜 믿음은 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릴레이의 말처럼 우주는 고유한 수학문자로 쓰인 책이며, 신은 하늘로 가는 방법만 알려주고 있을 뿐이지 하늘이 운영되는 방식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우주는 우리의 관측과 관계없이 원래부터 지구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았으나, 우리는 오랫동안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과학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도 여러 부분에서 오류가 많고 검증되기 어려운 빅뱅 같은 이론들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과학적 상식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많은 가능성들이 가차 없이 폐기되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상식은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진실을 가리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가능성이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는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물리적 타당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완전한 진리는 발견하지 못했고, 발견한다고 해도 그것이 영원히 불변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보편적인 물리 현상은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넘는 순간 절대 일어나지 못할 현상이 되고,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도 우리 우주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우주에서는 본래부터 금지된 사건이 아닌 한,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메릴랜드대학의 찰스 미스너(Charles Misner)가 제안했던 미스너의 우주(Misner space)는 우주 전체를 침실 같은 좁은 공간에 요약해 놓고 있습니다. 미스너의 우주는 왼쪽 벽에 있는 모든 점들이 오른쪽 벽에 있는 점들과 물리적으로 동등하며, 앞과 뒤의 벽, 위와 아래의 벽도 마찬가지로 서로 동등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왼쪽 벽을 통과하는 순간 그는 오른쪽 벽을 통해 다시 실내로 들어오고, 앞의 벽을 뚫고 지나가면 뒤의 벽을 뚫고 실내로 다시 들어오게 됩니다. 즉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항상 반대쪽을 통해 다시 실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또 이 우주는 어느 쪽 벽을 들여다보더라도 맞은편에는 똑같은 방이 무한히 길게 이어져 있고, 각각의 방안에는 똑같은 내가 있습니다. 모든 ‘나’는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방의 나는 앞의 방으로 가있고, 뒤쪽에 있던 내가 이전에 내가 있던 방에 있습니다. 만약 이 방이 매우 좁거나 내가 충분히 크다면 손을 앞의 벽 너머로 뻗어 내 등에 닿을 수도 있고, 양팔을 벌려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미스너의 작은 우주는 다른 흥미로운 점도 많습니다. 만약 경계를 이루는 벽이 수축하고 있다면 경계를 넘는 나는 경계를 통과할 때마다 속도가 증가해서 광속에 근접하면서 시간여행도 가능하게 됩니다. 호킹은 미스너의 우주를 연구하여 왼쪽 벽과 오른쪽 벽이 수학적으로 웜홀의 양 입구와 거의 동일하지만, 한쪽 벽을 향해 빛을 비추면 경계를 통과할 때마다 에너지가 증가하여 결국 무한대의 에너지를 획득하게 되므로 이것은 물리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역사보호가설을 주장하는 호킹은 이로 인해 시간 여행이 불가능함을 증명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우주를 허용하는 순간 복사 에너지가 무한대로 발산하는 문제는 간단하게 피해갈 수 있게 됩니다.



우주는 개인의 믿음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이 말했듯 시인은 우주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주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논리적인 과학자는 우주를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가 우주를 단편적으로 관찰한 결과를 놓고 우주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부족한 정보로 우주를 바라보며 불편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은 우주를 한꺼번에 이해하려는 무리한 발상에 의한 것입니다. 오히려 우주는 알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언제나 경이로운 곳이며, 하나하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 낼 수 있는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믿음에 의문을 가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로운 상상을 이어가서 우주를 확장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였던 세계는 이제 수백광년이 되었고, 텅 비어있던 우주 공간은 무언가로 채워졌고, 물질과 정보의 종말이었던 블랙홀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습니다. 우주에서는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진실이 무참히 깨어지기도 하고,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절대 가치보다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우주의 속성을 이해할 때에야 우리는 우주를 더 깊게 바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스너의 작은 우주는 사실 우주가 아니라 우주의 밖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수백억 광년 우주의 경계면을 뒤집으면 우주의 바깥은 안이 되어 미스너의 작은 방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블랙홀은 수천억년 마다 우주의 안팎을 뒤집기 위한 경계면의 구멍이기 때문에 그리도 지독하게 시공간을 빨아들이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블랙홀과 블랙홀은 다른 경계면을 이어주는 웜홀의 양 입구가 되어 우주를 단축하고 있고, 또 뒤집힌 우주는 가로지르는 것보다 바깥을 향해 나아가 시공의 경계면을 통과하므로 더 빠르게 반대편 우주에 이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스너의 작은 우주는 꼭 특정한 장소에 존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바로 미스너의 우주이고 내가 바로 우주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우주는 내 바깥 면을 향해 갇혀 있고 내가 바라보는 우주는 나만의 우주일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내가 우주의 바깥이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우주를 내 안에 둘 것이지만 감각적으로는 지금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블랙홀을 중심으로 우주의 절반쯤은 작은 방의 안으로 걸쳐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는 그 우주의 경계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림 : 영화 큐브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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