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1 - 타임머신은 가능할까?
에서 이어갑니다.

시공간의 휘어짐이나 그 휘어짐이 시간평면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거나 또는 왜곡된 시간평면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사상과 맞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수학적으로 물체가 빛의 속도로 운동할 경우 물체의 질량은 무한대로 되기 때문에 물체는 빛의 속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물체가 광속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 버립니다. 반드시 빛의 속도가 아니라고 해서 그 속도에 비례해서 상대적 시간 차이가 나게 됩니다. 가상의 우주 중심점을 기준으로 동일 시간에 물질이 움직이는 거리를 속도라고 보면, 전 우주의 모든 물체는 움직이는 속도가 전부 다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전 우주의 모든 물체에는 결코 동일한 시간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현재라는 말 자체는 이미 각기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고 있는 물질이 모인 우주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결코 현재라고 할 수 없으며 모든 물체는 다른 시간대를 달리는 것이 됩니다.

시간(Time)은 시각(時刻)의 연속적 인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시각(時刻)이 사물의 위치를 나타내는 3차원 좌표 X,Y,Z상의 한 점이라고 보면 시간(時間)은 그 점이 W 좌표를 따라 움직이며 나타내는 궤적(軌跡 자취)을 말합니다. 궤적은 그 원래의 대상보다 아래 차원의 그림자를 만드는데, 3차원의 그림자가 2차원이듯 4차원의 그림자는 3차원으로 투사됩니다. 여기서 수학적인 좌표상의 W축과 차원적인 시간좌표 W축은 그 개념이 다르지만 일단 상식선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차원은 하나의 지점을 이야기 하며, 시공간상의 고정된 위치만 나타낼 뿐 부피도 변화(시간)도 없어 실존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위치의 점이기 때문에 아무리 확대를 한다고 해도 면적은 0 이며, 우주가 아무리 움직이고 변한다고 해도 그 위치는 고정되어 있는 기준점으로만 나타납니다.

1차원은 선으로 표현하는데, 면적이 없는 점과 점 사이의 연결이지만, 길이 혹은 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차원 역시 아무리 확대를 한다고 해도 일체의 부피와 크기는 존재하지 않는 위치의 궤적일 뿐입니다. 1차원에는 무한의 점(위치)가 포함되어 있지만 간섭할 수 없습니다. 선은 직선일 수도 곡선일 수도 있지만, 1차원에 존재하는 점(0차원)의 생물은 이것을 절대로 인지할 수 없습니다. 부피와 면적이 없으므로 상대적인 개념인 휘어짐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차원은 우주의 절대적인 고정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우주의 팽창과 축소에 따라 거리가 달라지고, 휘어질 수 있고, 그 속에 포함된 위치적 점은 어차피 무한대이므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의 고차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늘어짐을 인지 할 수 있습니다.

2차원은 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넓이와 거리와 위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X,Y 두 축상에 존재하는 절대의 평면상태이므로 높이는 표현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만약 여기에 생물이 존재한다면 1차원적인 선의 상태일 것인데 길이는 있지만 키와 몸체의 폭은 0 이므로, 2차원 세계에서는 교통체증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좁은 길이라고 해도 두 생물은 완벽하게 같은 지점을 겹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자신들의 세계가 직각으로 꺽여 있다고 해도, 절대로 면의 구부러짐을 느낄 수 없으며, 서로 다른 두개의 면(타 차원)이 교차한다고 해도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3차원은 면과 면이 교차할 수 있는 X,Y,Z의 세 방향을 가진 입체라고 할 수 있는데 부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차원적 속성인 면적이 m x m 인 m^2 이라면, 3차원에서는 부피 m x m x m 인 m^3 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얇은 입면체라도 그 속에는 무한의 2차원이 모든 방향으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차원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이 있다면 그것은 키가 0 이며, 2차원의 형태로 각기 독립된 차원속에 한 차원당 하나의 생명체만 존재할 것입니다.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스쳐지난다고 해도 서로를 인식할 수 없을 것이고 공간이 일그러져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손바닥으로 하는 그림자 놀이에서 처럼 그림자가 비치는 벽이 기울거나 울퉁불퉁해서 그림자가 휘고, 그림자의 면적이 커진다고 해도 그 그림자 생명체는 결코 그 휨이나 면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3차원속 생물의 궤적은 2차원의 성질을 지니지만, 시간의 변화가 포함되면 횡적인 시각에서는 입면체를 이루게 됩니다.

4차원은 초입체입니다. 표현의 단위도 m x m x m x m 인 m^4라는 초부피가 됩니다. X,Y,Z의 세 축과 각 각 직각을 이루는 세로운 W축이 존재하는데 수학적으로는 증명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음(-)의 부피일 뿐입니다. 보통 SF에서는 이 W축을 시간의 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4차원 세계에서 우리는 3차원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위 차원에서 마지막 축의 높이가 0 이었듯 우리는 시간축에 대한 키는 0 이며, W축의 휘어짐이나 교차되고 겹치는 상태를 절대로 인지할 수 없습니다. 4차원 생명체가 그림자 놀이를 한다면 그 그림자는 분명 입체의 성질을 가질 것이지만, 그 투영된 3차원의 그림자가 시공간이라는 스크린의 상태로 인해 일그러져 부피가 변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5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4차원 구조체인 나비 한마리가 3차원 세계에 온다면 완벽하게 봉쇄된 상자속의 꿀도 W축 방향으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속에도 무한의 하위차원이 겹쳐있지만, 입체의 우리가 그 하위 차원으로 이동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3차원 구조의 우리 세계는 4차원적 구조체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W 방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가 그것을 개념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차원에서의 세 방향축을 가진 전체세계(우주)를 하나의 탁구공이라고 본다면, 시간축으로 이동하는 탁구공은 연속적인 궤적을 남기게 됩니다. 탁구공 표면적의 팽창과 수축에 따라 그 자취는 변하게 되겠지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만큼의 무수한 시간단위 만큼 그 탁구공은 겹치면서 W축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두께가 0 인 평면을 아무리 많이 겹친다고 해도 3차원을 이룰 수 없지만, 3차원 속에는 무한의 2차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계는 무한히 겹친 채 4차원속에 포함될 뿐이고, 그 겹침의 순서에 따라 자아가 인지해 나가는 속도를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 시간의 속도는 자아가 인지하는 속도이므로, 모든 물체마다 고유의 시간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 역시 전혀 느끼지도 간섭하지도 못하는데, 그 이유는 상위차원에서 투영된 그림자로 이루어진 시간의 부피와 면적과 속도는 우리의 의식까지 반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필름을 천천히 돌린다해서 필름속에 속해 있는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영화가 느리게 돌아간다는 것 알고 조절하는 것은 초고차원의 타임메이커(Time Maker)의 입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차원의 탁구공의 궤적은 더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보면 단 하나의 초X축을 따라 움직일 뿐이므로, 이 탁구공은 다시 초Y,Z축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어, 한 방향이 아닌 다양한 방향으로 겹치며 움직이게 되므로, 신의 시각에서 본다면 모든 시간과 모든 초회전축 속에 있는 우주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서양의 시간이 너무 방향의 흐름에만 집중하다보니 이런 시간의 중복성과 동시성을 간과하였지만, 우리의 사상에서 시간은 신의 입장과 비슷한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은 신의 시간속에서는 동시에 존재하고, 우리의 자아는 그 한 지점(좌표)을 인지하며 그 순간을 현재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윤회라는 개념의 도입해 본다면 내가 지금죽어 100년후의 지구인 혹은 우주의 다른 생명체로 살아날 수도 있지만, 1억년 전 내 조상중 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시간의 동시성입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현재의 우주는 분명 왜곡된 상태입니다. 움직이는 우주라는 탁구공은 반드시 직선의 궤적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거시적인 도너츠모양을 이루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리에서 한 발만 벗어나면 우리는 1000 억년 후로 이동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시간의 순환고리가 닫혀있다면 1000억년 후와 200억년 전이 동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에서 초Y나 초Z축으로 이동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우주의 어느 순간의 세계에서 새로운 눈(Eye)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려면 타임머신이 아닌 자아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서양적인 시간의 개념속에서 시간여행이란, 같은 영화의 다른 프레임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복사된 다른 필름의 프레임으로의 이동이므로, 우리가 최소 2개 이상의 차원벽을 넘어야 하기에 그 가능성을 더욱 희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의 순서가 아닌 차원의 이동은 한 단계의 발전(진화)이 아니라 비슷한 상태로의 이동일 뿐입니다. 즉 3차원을 넘는다고 해도 그건 또 다른 3차원에 들어 갈 뿐입니다. 3차원에 살고있는 2차원 생물이 Z좌표로 이동했다고 해봐야 결국 신체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다른 3차원 속 평면으로 이동했을 뿐이며, 자신이 4차원속 3차원 구조체가 되었다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먼 훗날에 블랙홀을 이용해서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시간이 아닌 또 다른 세계나 위치에 대한 공간적인 이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여행이란 우리의 자아의 새로운 성장과 진화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4차원적 생명체로 진화한다는 것은 결국 3차원적인 신체구조를 벗어나는 길 밖에 없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자면 구조적 한계를 관념적으로 벗어 났을 때도 가능하다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우리의 신체는 3차원인 영화 필름 한 프레임에 속해 있으며, 우리의 자아는 이 육체를 인지를 위한 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아가 본질을 깨닫고 다른 눈으로 다른 프레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를 다양한 을 통해 직접 인지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장자(莊子)는 아주 환상적인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비로 변신한 그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밭 위를 날아 다니는데, 어찌나 자유롭고 즐거웠던지 자신이 한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꿈속에서 놀라며 깨어났는데 '나는 사실상 오래 전부터 인간이었지 나비가 아니었단 말인가?' 하며 비몽사몽(非夢似夢) 속을 헤매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닐 때, 나는 내가 인간인지 몰랐고, 지금 이 순간 꿈속을 벗어나 보니 나는 인간이다.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장자(莊子)인가? 아니면 그 나비가 꾸는 꿈속에서 내가 장자(莊子)로 변신하여 고민에 잠겨 있는 것일까?'-

우리가 현재라고 인식하는 것은 자아가 우리 세계에서 어떤 한 대상을 눈으로 삼아, 이 세계를 인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장자가 꿈을 꾼것은 다른 어느 세계의 나비를 눈으로 삼아 그 세계를 인지한 것이고, 다시 꿈에서 깨어 장자인 자신의 눈으로 돌아와 미래나 과거의 기억으로 고민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여행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그 세계속에 동화되어 그 세계를 인지하는 것이므로 시간여행의 오류가 생기지 않게 되며,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옮겨왔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어쩌면 죽음이 세계에서 세계로 시간에서 시간으로 이동하는 유일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자아는 반드시 이러한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해도 각성을 통해 시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에 만난 유령이 어쩌면 시간을 지키는 수문장일 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런 인과율의 오류없이 과거의 시간대를 방문했고, 갈라져 진행된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쓸쓸히 죽어간 미래의 자신을 보고 왔으니까요. 타임머신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발전된 과학을 선물하게 되겠지만, 해탈을 통한 시간여행은 인간에게 새로운 진화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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