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李承晩)은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18일 전격적으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이하 내각이 강력하게 반발하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9월 9일 재차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의 요시다 총리는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이대통령의 요구를 막아줄 것을 요청하였고,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이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전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데 방해되는 언사로 받아들이고 이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하였습니다. 그 후 이대통령은 공식적으로나 문서상으로는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외교사절을 만날 때마다 대마도 영유권을 역설하였습니다.



광복 후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처음 주장한 학자로는 초대 부산수산대학장을 역임한 정문기(鄭文基, 1898∼1996) 박사인데 정박사는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평화의 영속성이라는 논문에서 대마도를 조선으로 환속하는 것이 동양평화의 영속성을 기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미 군정 시기인 1948년 2월 17일에 열린 제204차 입법의원 본회의에서 입법의원 허간용(許侃龍·서북도 관선의원)외 62명은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복귀시킬 것을 대일강화조약에 넣자는 결의안을 제출하였으나 이 결의안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 폭주로 연기되다 회기가 종결됨으로써 실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간도지역이나 대마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면 마치 큰 잘못을 하는듯한 지탄울 받기도하고 한빠라는 이상한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일본이 독도의 날(竹島の日 다케시마의 날-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시마네 현으로 편입 고시함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5년 3월 16일에 시마네 현이 지정한 날)을 일방적으로 정했을 때 우리나라의 한 지방에서 대마도의 날(경상남도 마산시는 2005년에 매년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제정했는데 이 날은 김종서 장군이 대마도를 토벌하기위해 마산을 떠난 날임)을 만들자 그저 우스개 소리 정도로만 치부하고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다.

조선 세종 2년(1420) 윤정월 10일 대마도주는 사자를 보내, "대마도는 조선을 주군으로 하며, 그 주명(州名)을 지정받고자 한다. 동시에 조선 조정에서 주군인(州郡印)을 사여(賜與)해 달라"고 요청해 왔고, 동년 동월 23일 조선은 대외적으로는 외무장관 일을 맡는 예조판서 허조(許稠, 1369∼1439)를 통해 대마도를 다시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그 군관에 대한 관례대로 관인(官印)을 사여하였으며, 그 후에도 속령(屬領) 상태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세종 25년(1443)에 계해조약(癸亥條約)이 체결되어 대마도주는 1년에 50척의 세견선(歲遣船)과 200석의 세사미(歲賜米)를 특전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859년 3월 31일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으로 개항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유도에 의해 국내 정세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도 일변하였습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마도가 대행하고 있던 조선과의 외교와 무역을 직접 관장하려고 시도하게 되었고, 일본은 정변과 개혁의 과정을 거치며 외번부용(外藩附庸)의 대마도주 종의달(宗義達, 1847~1902)은 대마도를 판적봉환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종의달은 조신(朝臣)과 근위소장(近衛小將)이라 칭하고 이스하라(嚴原) 번지사(藩知事)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77년 대마도는 나가사키현에 편입되면서, 현에 속한 지방 행정지로 격하되었습니다.


일본은 멀쩡하던 우리땅 간도를 만주철도부설권 때문에 청나라에 팔아먹기도 했고, 대마도를 자신들의 국토에 편입하기도 했는데도 우리는 순진한 것인지 물러빠진 것인지 우리 것을 돌려달라는 말을 꺼내는 것 조차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다른 민족들의 터전이 된 땅조차도 자신들의 조상이 거주했던 땅이라는 이유로 온갖 외교를 통해 돌려받아 국가를 세운 민족도 있는데, 우리는 불과 한 세기전까지 우리의 조상들이 피땀흘리며 가꾸고 지켜왔던 국토를 빼앗기고도 아무렇지 않는 듯, 오히려 빼앗아간 세력과의 마찰을 두려워하며 국민들에게 쉬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몇 년전인가 모 TV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대학교수 한분이 나오셔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왜 백두산 관광을 가면 그곳이 우리땅이니 아니니 말해서 중국을 자극하느냐?" 그후에 그 분의 이름 얼굴만 떠도 채널을 돌려버리게 되었는데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물렁해 보였으면 이제는 독도까지도 내어달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강경하게 대응을 했었다면 감히 다시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을 야비한 족속들에게 우리의 정부와 외교방식이 그 정도로 한심하게 보였는가 봅니다.

눈앞의 경제적인 이익은 잠시이며 일본과의 마찰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 손해는 일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빼앗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틈이 보인다면 모든 경제력과 외교력을 동원해 독도의 피상적인 가치의 1억배를 지급한다고 해도 반드시 차지하려고 할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익이나 손실은 우리세대에 그치는 것이지만 그 영토는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도의 가치가 하나의 암초보다 못하고 아무런 자원이 없다고 해도 영토라는 의미가 지니는 가치는 무한한 것입니다. 당장의 급박한 재정때문에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아먹은 러시아처럼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고 두려워 한다면, 후세들의 역사책에는 이 시대를 가장 어리석고 무능했던 시대라고 기록할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살았던 우리도 덩달아 어리석은 백성이라는 원망을 영원히 받게 될 것입니다. 한 뼘의 영토를 더 차지하기 위해 우리의 조상들이 흘렸던 피는 가슴을 들끓게 만듭니다.

오늘따라 왜 받을거 다 받아가면서도 큰소리치는 북한의 배짱외교가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현세씨의 오래된 만화인 남벌이라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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