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LPGA는  내년부터 모든 선수들에게 영어사용을 의무화하기로 하고, 기존 멤버들에 대해 영어 구술 평가를 실시해서,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2년 동안 투어 참가를 정지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영어사용 의무화 조치를 결정했습니다.  LPGA 측은 "LPGA는 미국의 투어경기"라면서 선수들이 후원자, 미디어, 팬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지만, 이번 결정은 아무래도 '한국 선수 죽이기'가 분명합니다.

LPGA(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인데, 이 LPGA 사무국이 스폰서들의 후원을 받아 주최하는 공식대회가 LPGA 투어입니다. 1950년 단 13명의 선수로 출범했고 미국 내에서만 경기가 치뤄졌지만, 60여년 동안 발전을 거듭하며  비미국인 선수도 많이 참가하는 다국적 투어로 바뀌었고, 경기 장소도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영국·프랑스·한국·일본 등의 여러나라에서 치뤄지며 세계적인 투어로 변모하였습니다.

PGA(미국프로골프협회)가 선수의 성별과 관계없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비해, LPGA는 반드시 여자 선수만이 참여할 수 있어, 지금의 LPGA는 세계 최대의 여성 골프  투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LPGA주관으로 1년에 30여개의 대회가 열리는데 대부분의 대회는 스폰서 등의 이름을 따서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비스코챔피언쉽, 맥도날드챔피언쉽, US여자오픈, 브리티쉬오픈이라는 4대 메이져대회 외에도 세이프웨이 챔피언십, 미즈노 클래식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다수 참여해서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삼성월드챔피언쉽을 비롯해서 SBS오픈, CJ나인브릿지 등의 여러 대회를 스폰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LPGA를 후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선수들이 많이 참여하고, 또 좋은 경기를 해주고 있어 그로 인한 광고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LPGA에는 미국 선수들 이외에도 26개국 121명의 선수들이 등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 45명이 한국 선수들입니다. 등록된 한국 선수들은 단순히 인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매년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거나 상위에 랭크 되는 등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조치는 그러한 한국선수들을 타깃으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LPGA측에서는 스폰서를 핑계를 대면서 특정 선수나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올해 4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맥도날드챔피언쉽, US여자오픈, 브리티쉬오픈의 3개 대회를 아시아 선수들이 휩쓴 것처럼, LPGA투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아시아계 선수들에 의해 점령되는 것을 막기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LPGA의 영어 의무화 정책에 대해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는 '덤 앤 더머'라는 표현을 써가며 멍청한 정책이라거나, 한국 여자선수들을 겨냥한 명백한 인종 차별 정책이라는 거센 비난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결정에 대해 오늘 PGA(미국프로골프) 투어의 최경주와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등의 선수들도 비판에 가세했습니다. 최경주는 AP와의 인터뷰에서 " 영어를 잘하면 선수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만, 영어를 못하면 대회 출전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고 하며,  " 만약 그때(2000년) LPGA 투어의 영어사용 의무화 정책이 실시됐다면 나는 집에 가야 했다 " 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국 선수들이 원인을 제공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가 서툴다보니 투어 중에 한국선수들 끼리 몰려다니며 한국어로 떠들거나, 그 선수들의 부모들이 경기 중에 코스 주변에서 언쟁을 벌여 갤러리들이나 스폰서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으며, 결국 일부의 한국선수의 부모는 대회장 출입금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어가 서툴러 경기 중에도 여러가지 해프닝을 연출해서 참가한 대회의 스폰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점도 있습니다.

실제 자국의 선수 성적이 부진해서 대회의 몇몇 스폰서가 떨어져 나갔다는 소리도 들은 듯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잘하면 우리나라 스폰서가 늘어나고, 호주 선수가 잘하면 호주 스폰서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처럼 LPGA는 해외로부터 훌륭한 선수들이 오면서 거둔 자신들의 국제적 성공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 조치로 많은 수의 한국 선수들이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이고, 또 LPGA진출을 목표로 땀흘리는 여러 꿈나무들도 스포츠가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는 세계가 아님을 알고 실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프로 스포츠가 순수한 경기만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최소한 다른 스포츠에서 처럼 실력으로 말할 수 없게 된 점이 아쉽습니다. 만약 10년 전에 이런 조치가 있었다면 우리는 스웨덴 출신의 애니카 소렌스탐이나 한국의 박세리를 LPGA에서 더 늦게 보게 되었거나, 그녀들이 어학원에 다니다가 언어장벽에 부딪혀 진출을 포기하여 아예 LPGA에서 볼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 야구가 자국 내의 경기 만을 놓고 월드시리즈라고 자만하고 있는데 비해, LPGA는 앞에 W자를 붙이지 않아도 이미 월드 시리즈, 월드 투어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투어를 "LPGA는 미국의 투어경기"라며 자국만의 축제로 만들려고 하는 이번 LPGA의 결정은 놀라운 역행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들은 언어 소통을 걸고 넘어졌지만, 실력과 관계가 없는 언어 소통이라는 문제를 이용해 참가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결정을 우려한 대로 인종차별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으며 대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제한 수위를 조절하거나 철회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한국의 낭자들이 메이져대회를 휩쓴 후에 유창한 영어로 이번 조치를 항변하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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