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은 열린공간인 대청과  폐쇄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적인 공간인 방과 마당과 헛간 등으로 나뉘는 데, 시대에 따라 구조와 역할이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그러나 전통가옥은 형태와 상관없이 집을 지을 때는 언제나 자연이나 주변의 환경과의 조화를 먼저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전통 건축물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빛과 바람과 비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전통 건축물들은 후손들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유지와 보수를 위해 노력하지만,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가공하여 자연의 일부처럼 지어졌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와 달리 현대의 건축물들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재료를 이용하여 자연에 거슬리며 지어졌기에 자연속에 두어도 어우러지지 못하며 큰 이질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과 조화하기 어려운 디자인의 차이에서 기인한 부분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재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람은 원래 자연의 일부였기 때문에 오랜 옛날 정착하지 않았을 때에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잠시 머물곳을 정했을 것이지만, 농경이 시작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나 바위 밑, 나무 아래에 거주하는 것에서 터를 잡고 집을 짓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술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과 환경에 따라 형태와 방식이 달라지며 발전해 왔으나, 자연이 준 재료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824년 영국의 J.애스프딘이 포틀랜드시멘트(Portland cement)의 제조법을 개발하면서 건축과 관련된 많은 부분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시멘트 그 자체만의 역할이 적어 그리 각광받지 못했는데, 1867년 프랑스에서 철망으로 보강된 콘크리트가 만들어지고, 독일을 중심으로 철근콘크리트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 편리성이 인식되었고, 지금은 일반주택을 비롯하여 고층의 아파트나 빌딩 등의 건축재료와 댐이나 교량 등의 토목공사의 가장 중요한 중심재료가 되고 있습니다.

고대에도 콘크리트는 사용되었었는데 그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습니다. 나폴리 서부의 포츠오리란 지역에 쌓인 화산회(火山灰)와 석회석을 혼합해서 만든 고대 시멘트는 신전이나 경기장 등의 대규모 건축물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중국 서안시 교외에 있는 대지만 유적에서는 고대 로마의 것과 유사한 5천년 전의 콘크리트가 원형에 거의 가까운 상태로 발굴되어 화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시멘트는 고대의 시멘트가 자연에서 채취한 그대로를 사용한 것과 달리, 석회질 원료와 점토질 원료를 적당한 비율로 혼합하여 미분쇄하고 이를 소성하고 다시 기타의 재료를 첨가하고 미분쇄하여 만듭니다.

시멘트에는 건축에 편리한 여러가지 특성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물과 반응하면 굳어지는 수화반응(水和反應)으로 인해 시멘트를 물로 개어 골재와 섞으면 강도 높은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으며, 그것과 철근을 결합시키면 콘크리트의 압축성과 철근의 인장성이 서로 부합되어 짧은 시간안에 안정적인 구조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보통 콘크리트는 타설하고 며칠만 양생해도 최소한의 강도가 나오며 정해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데, 만약 콘크리트가 없다면 현대 건축물의 90%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더 많은 기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 40kg 포틀랜드 시멘트 한 포의 가격이 4천원 정도인데 이 정도 무게에 이 정도 가격의 제품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므로, 시멘트의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편리한 콘크리트에도 단점들이 다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설 공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콘크리트는 약알칼리성으로 그 상태가 알칼리성일때 가장 안정적인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공기나 지하수에 표면이 노출되게 되는데 이때 칼슘 성분이 녹아 내리고 열화가 진행되며, 대기 중의 탄산가스나 이산화탄소 등과 화학반응을 하며 차츰 중성화로 전환되며, 콘크리트가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철근 콘크리트는 시공할 때 철근이 부식되지 않게 충분한 피복을 해야하는데, 시공상의 실수가 없다고 해도 건조수축균열같은 자연적인 균열이나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균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균열 사이로 공기나 수분이 들어가면 철근이 녹쓸며 부피가 팽창하게 되고, 그 팽창은 다시 콘크리트의 균열을 촉진하는 악순환이 진행됩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제대로된 재료를 정량으로 사용하고 올바르게 시공할 경우 이론대로라면 10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지는데, 위와 같은 여러 이유로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없다면 그 수명은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크랙을 보수하고 저하된 내구력을 보강하고 표면을 잘 관리한다면 문제없이 50년 정도는 거뜬히 사용할 수 있지만,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보수를 한다고 해도 백년 동안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거의 모든 건설공사의 경우 도급업체는 토목, 골조 등 공정별로 하도급을 주고, 하도급 업체는 다시 철근 목수 등의 분야별로 하도급을 주는 데(최하도급의 경우 법인이 아닌 개인임), 최일선의 시공 기술자들은 도급식(돈내기) 일을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시공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부실한 시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철근 이음에 충분한 인장거리를 확보하지 않거나 피복이 부족한 경우도 다반사며, 콘크리트 타설시에 재료분리가 일어나거나 다짐이 불량한 경우도 있고, 양생기간이 지나기 전에 무리하게 거푸집을 해체하는 등의 부실이 있는 편입니다. 거기에다 상당수의 공사가 이런 시공자를 기준으로 정하다보니 충분한 공기를 확보하지 않는 상태이고, 그에 따라 무리한 일정으로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부실을 알고도 눈감아준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점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필자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부실은 여전한 편입니다.

유지관리를 잘 한다면 백년을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이지만, 또 다른 이유에서 그 보다 훨씬 짧은 20 ~ 30년 만에 해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재건축의 경우입니다. 재건축은 반드시 부실시공로 인한 문제가 발생 했거나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더라도, 유지보수비가 지나치게 높거나 건축물의 가치나 수익성 등의 요소를 고려해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재건축요건의 강화와 건물연면적제한 등의 법적인 제약이나 공사비 상승으로 리모델링이 늘어나는 편이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누구라도 50년 이상된 콘크리트 건물에서 불안감을 느낄 것이기에 리모델링 보다는 재건축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재건축이란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땅값이 싸고 건축비가 저렴할 때 저층으로 지은 건물은 허물고 고층으로 새로 지우면 기존 건물보다 훨씬 넓은 연면적의 건물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면적의 세대들로 이루어지고 저층인 건물들은 1980년대에 아파트 시대가 개막된 후 십여년간 지은 것 밖에 없습니다. 90년대 이후에 지은 아파트는 거의가 15층 이상의 고층이며, 최근 몇 년 동안 지어진 아파트는 40층을 넘어서는 초고층의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이런 아파트들은 50년 후에 노후하게 되더라도 수익성의 문제로 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아파트의 주인들이 스스로 철거비와 건축비용을 분담한다면야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만, 그 정도의 비용이라면 새로운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더 큰 비용이 될것이므로 굳이 재건축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진출처 :
Flickr -mugley

오늘 만났던 한 분의 말을 빌자면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주택은 남게 되는 데도, 상위 100 여개의 건설사들이 장비와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50만호의 주택건설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급이 넘치는 만큼 실수요자들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므로, 건설사들이 결국은 최소의 이익만 남는다면 주택을 짓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향후 10년 이내에 주택가격의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한 전망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나 역시 개발업무에 종사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현재의 아파트 분양가의 30~50% 가량이 거품인 것은 확실합니다.

한때는 공급이 수요를 못따라가서 무분별한 개발 붐이 일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특정지역을 제외하고는 준공을 하고도 주인을 만나지 못해 수년동안 방치되는 아파트가 넘치고 있습니다. 현재 약 25만호 이상이 미분양이라고 추정되는데, 시행 시공사가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인하고 있는데도 판매율은 극히 저조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발을 준비중인 수많은 후보지가 있으며 정부에서도 이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기존 미분양 주택을 적정가격(현재 실거래는 70~80%)에 매입하여 임대하거나 분양하고, 입주자에게 저리로 대출해 주는 것이 건설업체나 무주택자 모두에게 효율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빠졌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며,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 일인당 녹지율은 1.5평 밖에 되지 않으며 인구가 감소하는 데도 녹지율을 늘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 녹지의 대부분도 공원이 아닌 산인데, 그 산마저도 무차별적으로 개발되며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전체 주택의 90%를 아파트가 차지하게 될 것이고, 지금 남아있는 녹지의 상당부분도 사라져 숲을 보려면 산으로 가야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아파트가 되었든 도로가 되었든 우리의 강산은 어느 사이엔가 흙이나 물이 보이지 않는 한 겹의 콘크리트로 덮혀 버렸습니다.

더이상 자연과 융화된 건축물은 새로 지어지지 않고 있으며, 단독주택도 멸종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앞장서서 전국적으로 아파트만 지어 댄다면 백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흉물스러운 폐기물의 숲에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있을지 몰라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건축물은 없으며, 500년 후까지 보존될 만한 가치있는 건축물 또는 그때까지 보존될 수 있는 건축물이 있기나 할런지 의문입니다. 앞으로 50년이 지나면 재개발 가치가 없는 2천만 세대의 콘크리트 주택이 넘쳐날 것이고, 후손들은 그 폐기물을 해체하고 녹지를 복원하기 위해 백년을 희생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현재의 절감된 비용이 미래의 복구비용으로 전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점이 많지만 그 편리성과 저렴함 때문에 현대 건축물의 대표 재료로 사용되는 시멘트는 결국 사용한 무게 만큼 후손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서 거둬들여질 것입니다. 거주보다는 과시와 단절의 의미가 부여된 부자들을 위한 초고층의 주상복합이 증가하고 있는데, 돈 많은 부자들은 부디 아름다운 목조주택을 짓고 살길 바랍니다.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20%의 부자들, 또는 우리나라 부동산의 90%를 가진 5%의 갑부들이라도 부디 후손들에게 물려줄 만한 건축물을 짓기 바랍니다. 후손들이 5백년전 조상들이 지은 예술작품이라고 극찬할 만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짓기 바랍니다.


사진출처 :
Flickr - 24by36

그래서 100년 후에 폐기물 숲을 바라보며 한숨짓던 후손들이 아름다운 유산을 보며 그나마 위안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어진 미래의 건축폐기물(construction waste) 처리에 고심할 후손들에게 미리 사과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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