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2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들도 영원히 사는 존재는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생체를 잘 보수할 경우 십만 년 정도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십억 년 이상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수명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를 선택하여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실체를 원자 수준으로 재구성하여 광속에 준하는 속도로 은하를 유영한다. 일반적인 관념 아래서 그들의 시간은 다른 생명체와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이 여행하는 항로는 항상 사막에 반쯤 걸쳐져 있기 때문에 여행자가 체감하는 시간은 관찰자의 시간과 비슷하다. 실제의 물리적인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흐르지만, 여행자는 무한한 사념의 시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는 이제 오직 사막만이 펼쳐진 광대한 무한의 시간을 건너고 있다. 너무나 장대하여 끝이 없을 것 같은 고독한 시간 속에서 그가 떠올린 생각 한 올 한 올은 모두 순식간에 시간과 공간의 강을 건너 고향에 있는 시스템으로 전달되고 있다. 생명체가 가진 의식은 어떤 물리적인 제약에서도 자유롭고, 스스로 정하지 않는 한 한계가 없다. 그는 시스템과 교감하여 종족들이 체득한 정보를 검색하며 멈추지 않는 사념을 보태고 공유한다. 풀리지 않는 절대 미지의 영역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있다. 신비롭지만 이제는 권태로운 일상에 가까워진 절대 비밀.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하는 것 밖에 없다.

우주는 똑같은 하나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너지와 물질은 물론이고, 그것을 쪼개서 얻을 수 있는 미립자(素粒子)와 그에 동반되는 모든 미립자와 파동과 역장(力場) 또한 모두 하나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형태로 변해있건 모든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물질이니 암흑물질이니 하는 구분도 초미시의 세계에 진입하는 순간 경계가 모호해지다가, 더 이상 근접할 수 없는 근본과 대면하는 순간 우주를 구성하는 파동 또는 그 파동을 일으키는 근본 입자(끈)가 모두 똑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우주는 하나에서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하나가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서 다른 성질을 지니게 되고, 다른 성질은 다시 또 다른 성질과 만나 더 다른 상태를 만들어 낸다.

과거 그들의 선조는 물질계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인 엔트로피(entropy)를 계산하는 일에 몰두한 적이 있다. 선조들은 우주 전체의 에너지양은 일정하지만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고 생각했었다. 먼저 우주의 나이를 추산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와 별의 수와 그 별들이 연소하는 에너지양을 계산하였다. 거기에 블랙홀의 확률적인 평균 분포도와 규모와 수를 산출하여, 은하가 블랙홀 안으로 붕괴되는 정도의 양을 계산하였다. 수 만년 동안 이어진 그 작업은 온 우주에 퍼져있는 별빛과 우주마이크로파배경, 암흑물질 등 엔트로피에 기여하리라 예측되는 모든 요소를 측정하였다. 심지어 우주에 산재한 문명의 수를 구하고, 각 문명의 존속 기간과 각각의 단계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 같은 극미(極微)의 변화치수까지 고려하였다.

점점 정교해진 수치를 얻어내며 그들은 곧 우주의 운명까지 예측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요소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우주의 열적 상태를 완전히 다른 결과로 바꿔버리는 새로운 항목이 발견되어 그들을 놀라게 했다. 분명 하나의 요소가 추가되면 우주의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해야 함에도 그 항목만 넣으면 엉뚱한 값이 도출되곤 했다. 우주는 복잡한 구조물로 이어져있고, 그 모든 복잡한 구조물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엔트로피 증가라는 순효과를 낳는다. 그런데도 그 항목은 놀라운 역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 구조물 중에서 엔트로피 증가 효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의 무시무시한 영향력과 비교하자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보잘것 없는 활동력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 선조들은 결과 값에 별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여기고, 그것을 제거해버렸을 정도였다. 그것은 우주에서 자연 발생했으나 문명을 이루지 못한 생명체의 각 개체에 의한 활동량이었는데, 전 우주에서 활동하는 모든 생명체가 신진대사를 통해 소비하는 에너지 총량을 더해도 별 몇 개의 활동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 나비의 날개 짓 같은 요소가 더해지면 우주는 거대한 태풍에 휩싸인 듯 격정적인 열적 변화를 거치면서 엔트로피의 수치는 뚝 떨어져 버린다. 그들은 황당한 결과 값을 검증하기 위하여 수없이 계산을 반복하고 새로운 변수와 요소들을 추가해 보았으나, 생명체의 활동이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곧 우주는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 시작한 후,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하는데, 생명체의 활동에 의해 우주의 엔트로피가 역전된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우주의 다른 모든 활동과는 구별되는 형태로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그 영향력의 정도를 자연적인 물리활동의 수치와 비교해 보면 대략 1조배 정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생명체가 1초 동안 1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실제 우주에서는 1조의 에너지가 재사용 가능한 상태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당시의 선조들은 공식은 얻었지만 생명체의 활동이 우주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해 오랜 세월 고민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에너지의 상태가 변화되거나, 어느 공간에서 변위가 되는가하는 등의 세세한 원리는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가 똑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의 해답은 찾을 수 있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의 현을 튕기는 것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데, 첫째는 태초에 일어난 진동에 의한 것이고, 다음은 어떤 인위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다. 전자에 의한 진동은 태초의 자연적으로 발생한 의지가 종결되는 시점까지 점차 약해지며 열적 평형으로 치닫는데 비해, 후자는 주체가 가지는 의지의 지속성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진동을 유발한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각기 다른 현의 진동이 멈추고 원래의 상태인 하나로 회귀하려는 우주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체의 생존의지는 우주에 역행하는 동적인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어쩌면 우주는 열역학적 죽음을 두려워하여 생명체라는 새로운 요소를 창조해 낸 것일지도 모른다. 생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자연계의 엔트로피 증가에 의해 무한하게 창조되고 있지만, 우주는 생명체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을 것이다. 생명체가 넘쳐나서 생명체가 유발하는 효과가 지나치게 높으면 우주는 순식간에 들끓는 지옥(Big-Hell)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는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정밀하게 계산해서 생명체의 수를 조절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미루며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출처 : http://exper.3drecursions.com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4편으로 이어집니다.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