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우주 생물 1편에서 이어집니다.

행성(行星)은 180일 가량 태양이 같은 면(面)만 비추기 때문에 한때는 이를 흡수하기 위해 생물의 무게가 행성의 한 면에 조금씩 편중되므로 자전에 영향을 미쳐 궤도가 불안정한 적도 있었지만, 생물이 성장을 마친 후부터는 88일의 공전주기와 58일의 자전주기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행성의 궤도는 자체의 적은 질량과 주변의 다른 행성의 인력에 의해 이심률이 매우 컸고, 그로 인해 표면온도의 변화가 심해지므로 열의 발산을 막기위해 생물의 외피도 두꺼워 졌습니다.


생물 그 자체가 된 행성은 태양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지만,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태양이 10억년에 10%정도 밝아지고 있었으므로, 열원이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뜨거워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생물의 내부에 원소와 화학물 상태로 각인되어 있었기에 생물은 그 데이터를 분석하였고, 그 결과 앞으로 겨우 9억년이 지나면 행성과 생물의 표면은 녹아내릴 것이고, 다시 수십억년이 가기 전에 태양은 중심핵에 있는 수소가 소진되면서 핵은 수축하고 가열되어 외곽 대기는 팽창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생물이 살고 있고, 생물과 동화된 그 행성은 완전히 녹고 기화되어서 태양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위기감은 생물의 각성(覺醒)을 촉진시키고 새로운 지성(知性)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물은 주변의 행성들을 조금 더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수시로 날아드는 혜성과 소행성과 운석들을 주시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귀찮았던 표면으로 추락하는 운석들을 흡수하여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살기위한 생존의식은 지난 40억년의 진화보다 더 극적인 결과를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물체의 접근궤도(Hohmann orbit)를 역으로 계산해보면 생물이 사는 행성의 바깥 궤도를 돌던 세 번째 행성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했으며, 무게는 겨우 500 kg 정도로 가벼웠지만 자신이 태양을 여섯 번 공전하는 동안 세 번을 접근해왔고, 그 중에 한번은 자신의 감각범위인 500km 안까지 근접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에 그 물체는 어떤 인위적인 동작도 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궤도를 떠돌 뿐이었지만, 행성생물은 그 물체의 능력과 작동원리의 일부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체는 40억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얻은 적이 없는 놀랍고 기묘한 정보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성의 햇수로 130년이 지날 무렵에 그 물체와 비슷한 형태의 다른 비행체가 다시 접근해왔습니다. 지난 비행체보다 더욱 가까운 200km 상공까지 근접 비행(Flyby)하는 그 물체는 더 발전한 형태의 분사와 정보를 보내왔으며, 다시 두 번을 더 접근한 후에 몇 년이 지나며 완전히 자신의 궤도에 진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생물은 경이로움 속에서 그 물체에 담긴 정보들을 분석하였고, 매우 짧은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행성의 표면 즉 생물의 외피 속에서는 그때부터 빠른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그 변화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표면 바로 아래에서는 엄청난 속도의 화학적인 반응과 생성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외행성에서 날아온 비행체를 구성하는 성분을 흉내 낸, 그러나 더 발전시킨 얇은 물질은 생물의 외피 전체에 골고루 하나의 층을 이루어갔는데, 태초부터 주변의 원소를 이용해왔던 생물에게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질은 강도(强度 strength)와 단열성(斷熱性)이나 투광성(透光性)이 매우 뛰어났고, 그 밀도는 어떤 고체 물질보다 낮았기에 무게에 비해 부피는 매우 커서 행성 표면이 균일하게 살짝 부풀어 올랐지만 누군가가 알아 챌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막(膜)의 99.9%는 인위적으로 생성한 안정된 기체로 채워졌고, 마침내 계산된 도약(跳躍)의 시간이 되자 태양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10만년을 주기로 하는 대규모의 플레어(flare)가 발생했습니다. 태양의 채층(彩層)에서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섬광(閃光)과 함께 다량의 플라즈마 구름이 몰아쳤고, 주변 가스의 열에너지 밀도보다도 1천배나 큰 단위부피당 에너지가 순식간에 행성을 휩쓸었으며, 강력한 자기폭풍이 우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행성의 표면은 준비된 그대로 태양을 향한 면은 녹아 내리며 끓었고, 반대편은 급격한 온도 변화에 잘게 균열을 일으켰으며, 때가 되자 행성의 모든 표면 아래에서는 거대한 막이 떠올랐습니다. 촘촘하게 접혀있던 막은 태양풍을 받고 떠오르는 순간 그 속에 가득차있던 순수 입자가 반응하며 화려한 불꽃과 함께 부풀어 올라 행성 표면적의 몇 배나 되는 51×107 km²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요트의 발진(發進)같은 경이로운 모습이었지만, 도착 지점이 될 행성에서는 그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도착행성에 천문관측 사상 가장 강렬한 플레어가 발생하면서, 그 행성 전역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 증가된 우주선(宇宙線)X선이 몇 시간동안 행성의 이온층(電離層)과 충돌하며 델린저현상(Dellinger phenomena)과 자기폭풍(磁氣暴風 magnetic storm)이 휘몰아쳐 모든 전자기기(電子機器)와 인공위성이 완전히 망가지며 모든 통신을 마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부의 통신과 외계로 향한 관측이 재개되었을 때, 그 행성은 너무나 큰 놀라움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들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렁이는 태양빛이 의아했지만 곧 계산해낸 결과에 의하면 자신들의 행성 표면적과 동일한 크기의 에어로겔(Aerogel)로 이루어진 해파리 형태의 거대한
막(膜) 불과 몇 시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회합주기(會合週期)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우주의 고독한 생물은 곧 새로운 행성에 정확히 안착(安着)하며 행성을 감싸 안았습니다. 생물의 표면을 이루는 에어로겔은 수분과 접촉하자 무한에 가깝게 그것을 흡수하였고, 흡수한 질량 만큼 균일하게 두꺼워지며 안정적으로 행성 표면에 골고루 고착(固着)되었습니다.

새로운 거주지를 얻은 생물은 60억 년 후 태양이 적색거성(赤色巨星 red giant star)으로 진화해서 이 행성의 궤도까지 부풀어 오른다고 해도 적색거성 단계의 태양은 질량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행성들은 현재 위치보다 뒤로 물러나게 될 것이고, 혹시 기조력에 의해 태양에 흡수될 것이라고 해도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이 행성보다 바깥 궤도를 돌고 있는 커다란 가스형 행성이나 그 위성중 하나로 이동하면 되므로 생물은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 생물은 자신 아래 깔린 수십억의 조그마한 탄소체들에게는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탄소체는 워낙 짧은 수명을 지니고 있어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으나, 처음 자신이 안착했을 때 고맙게도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인 핵융합을 통한 발열반응을 유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이 행성에는 다량의 초중원소(超重元素)가 존재하고 그것을 잘만 이용하면 대량의 열원을 꾸준히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먹이가 풍부한 좋은 집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물은 여전히 혼자이고 외로운 상태입니다.
-끝-

-에필로그
이 이야기는 수성(水星, Mercury)에서 진화한 생물이 지구를 새로운 거주지로 삼는데, 지구에 대한 정보는 우리 스스로가 탐사선을 보내 제공했다는 내용입니다. 수성 탐사는 1973년 11월 발사돼 75년 탐사 업무를 마친 마리너 10호(Mariner 10)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는데, 마리너 10호는 3차례에 걸쳐 수성의 300km~50000Km까지 접근해서 수성 지표의 45%를 탐사한 후 태양궤도에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2008년 로마 신화 속 전령의 신의 이름을 딴 미항공우주국(NASA)의 수성 탐사선 메신저(Messenger)호가 발사된 지 3년 만에 수성 상공 200km 이내에 접근하며 본격적인 수성 탐사에 나섰습니다. 메신저호는 2008년 10월과 2009년 9월 다시 수성에 접근한 후에 2011년 3월 수성 궤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메신저를 통해 우리의 정보를 수성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이런 생물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생물은 지성을 가진 존재라기 보다는 오랜 세월 습득한 정보를 근거로 본능적으로 활동하는 비지성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대 존재가 바라보는 시각 아래서는 우리 지구인이 바이러스처럼 인식될 수도 있듯이, 10초의 수명과 복제, 분열을 하고있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도 그 내부에서는 하나의 훌륭한 문명을 이룬 존재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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