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명사(名詞) 뒤에 쓰이어 그 명사(名詞)가 뜻하는 대상(對象)에 열광적(熱狂的)인 성벽(性癖), 또는 그런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제가 아는 기타광이 한 분 있습니다. 그냥 잘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닌 음악을 광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기타는 마티아스 담만(Matthias Dammann)이라는 독일제 기타입니다. 클래식 기타광(狂)이라면 꿈에서도 소원하는 명품 기타입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고충진님이 늘 품고 다니시는 마티아스 담만은 취미삼아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악3000만원 정도하는 명기입니다. 그렇다고 수입이 뻔하다고 해야할 음악가가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가격도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해도 주문 후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고충진님의 마티아스 담만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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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충진 - Romance)

작은 차(茶)음악회에서 만난 고충진은 언제나 그렇듯 동네 형같은 느낌을 주는 편안하고 푸근한 인상을 하고 계셨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편안함과 친절함을 보여주시는 분이지만, 막상 연주를 시작하면, 연주하시는 본인 뿐만 아니라 듣고 있는 모두도 그 음악속으로 빠져버립니다. 눈을 감고 연주에 몰두하는 그 모습은 너무나 강렬해서 마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듯 착각하게 만듭니다. 폭풍이 휘몰아 치는 듯한 격렬함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깊은 고뇌에 아파하는 듯한 절망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다가오기도 합니다. 단언하건데 고충진님의 담만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내면을 대변하는 언어인듯 합니다. 그리고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저 악기만으로, 이 만큼의 감동을 주기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겠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 작은 인터뷰를 부탁드렸습니다.

음악 문외한인 필자가 가볍게 묻는 질문에도 너무나 성실히 대답해 주시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들 정도였지만, 짧은 대화나마 이렇게 정리해 올립니다.


고충진님이 기타를 처음 접한 계기는 어렸을때 다니던 교회에서 기타반주를 하면서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우연히 헌 책방에서 산 기타와 관련된 책에 빠져 그때부터 독학을 하면서 연주법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관심과 취미를 넘어 기타의 매력에 사로잡혔던 고등학교 때는 울산에서 신형수님께 일 년 가까이 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신현수님은 클래식 기타를 배우시는 분들의 필독서를 다수 집필하신 분으로 지금도 작·편곡, 기고·저술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1986년 한국최초로 클래식기타 전공과정이 있었던 학교인 피어선대학교(현 평택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2년 밖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고충진님 말을 빌자면 짤렸답니다) 그리고 바로 입대를 하고 재대 후에는 5년 정도 부산의 토곡이나 전포동 등지에서 기타학원을 운영하였습니다. (필자도 전포동에 있던 삼호기타학원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1991년에 지금의 부인인 정달숙님을 만나 결혼하셨는데 동갑이지만 생일이 빨라 오빠라고 강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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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6년 부인과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기나긴 독일 유학길에 오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진정 기타에 미치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결심이었다고 짐작합니다. 1 년의 어학과정을 거치고, 600 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명문 라이프치히대학교(Universitat Leipzig)에 입학하게 됩니다.

(※ 라이프치히대학교 :
보헤미아왕 벤체슬라스 4세가 강행한 대학헌장 변경에 항의해서 프라하대학교를 떠난 교수와 학생들을 위해 작센대공(大公)이 1409년에 세운 고등 교육기관이다. 교황 알렉산드르 5세의 인가를 받아 라이프치히에서 4개 학과로 시작하였다. 종교개혁기인 1539년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이고 요아킴 카메라리우스의 지도 아래 개혁을 단행하여 독일 최대의 대학으로 탈바꿈하였다.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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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고충진님은 유럽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까를로 마키오네(carlo marchione)교수로부터 6년 가까이 사사를 받습니다. 비록 고충진님에 비해 3살 연상이었지만, 큰 존경을 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생활하는 동안 심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합니다. 학비가 없는 교육제도라지만, 물가가 비싼 독일이라 유학생들의 생활비가 한달에 최소 1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50만원으로 버텨야했다니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운이 좋아서 달세가 5만원하는 작은 기숙사를 얻었고, 밥을 하며 김치를 담궈먹으며 노력했던 그 시기가 지금의 고충진님을 만든 계기가 된 듯 합니다.

마침내 2003년 귀국을 하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합니다. 귀국독주회를 비롯하여 심포니오케스트라, CBS오케스트라와의 협연무대, 플루트와 기타 듀오콘서트, 부산문화회관 화요해설음악회, 가람 화요음악회, 금정 수요음악회 등의 무대등을 통해 음악애호가들과 만나며, 많은 팬들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주와 더블어 2003년 9월부터 2년 동안 대구예술대학교에서 클래식기타를 강의하기도 합니다. 현재도 동부산대학교부산 콘서바토리(conservatory)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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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진님은 슬하에 고성현(중2)군과 고정현(초4)양을 두고 있습니다. 제법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라 욕심을 낼 만도 하건만 그 소박함과 털털한 인간미는 주변을 무색하게 합니다. 한 달에 평균 10 군데 정도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 11월에는 21개의 연주회에 참여하셨다고 하길래 슬쩍 물어봤습니다. "한번에 얼마 정도 받으세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대답하셨습니다. "얼마줄지 물어보지 않아요, 끝나고 주면 주는대로 받는데 10만원 주기도하고 30만원 주기도 합니다." 

필자가 알기에는 저런 공식적인 활동 외에도 다수의 무료 연주회나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병원이나 오늘 있었던 작은 음악회같은 경우는 한푼의 보수도 없지만 불참하신 적이 없고, 늘 미소가 걸린 따뜻한 얼굴로 나타나십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겨울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 보는것만으로도 추웠었는데, 올 해는 소형중고차를 구했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씨디를 선물하자 차에 CD 플레이어가 없어 MP3로 저장해서 카세트에 연결해 듣겠다며 미안해 하시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작년에는 러시아 초청순회공연을 왕복 비행기값만 받고 다녀오셨는데도, 러시아 사람들은 먹을건 안먹어도 문화생활을 위한 돈은 아끼지 않아 엄청나게 먼곳에서도 자신의 연주회를 보러왔더라면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가장 많이 연주하는 곡이 뭐냐고 묻자 로망스(Romance)라네요.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다보니 신청이 많고, 그래서 하도 연주해서 가장 연주하기 싫은 곡이기도 하답니다.
그 다음으로 연주를 많이 하는 곡은 고충진님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던 지난 기억(Memory)이라는 곡입니다.  2004년 개봉했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OST중에서 두번째 트랙곡인데 직접 기타곡으로 편곡을 하셨습니다. 물론 이 곡의 경우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시는 분이나, 고충진님을 아는 분들이 많이 신청한다고 합니다.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이라 음질이나 영상의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고충진 - 태극기 휘날리며 中 지난기억)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간결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음반을 낼 마음도 있는데 아직 곡 선정을 못하고 있다는군요. 독일에서 바흐(Bach)를 전공하셨지만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으로 다가서고 싶기도 하다네요. 그리고 더 욕심을 내자면 전국 투어공연를 하고싶답니다.

마지막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지만 먹고살아야 한다며 웃었습니다.독일에서도 몇 년 더 공부하려고 했지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그곳에서는 음악과 관련되는 일이 별로 없어 귀국했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마티아스 담만(Matthias Dammann)과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고충진님이 가지고 계시는 담만은 고충진님의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께서 기증하신 것입니다.  그와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해 올립니다.

좋은 문화 만난다면 이웃·사회 모두 행복

■ 메세나 전통 실천하는 은백한의원 정영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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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만(Dammann) 기타는 세계 최고의 명기입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마누엘 바루에코,데이비드 러셀이 이 악기를 사용하고 있지요. 다른 기타와는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늘 담만 기타를 꿈꾸었는데,소중한 분의 도움으로 이제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가 이 기타를 갖게되었습니다."
 
건강한 사회의 바탕은 문화라고 역설하는 정영섭 은백한의원 원장.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기타 유학을 마치고 2003년 귀국한 부산의 대표적 클래식 기타리스트 고충진(40)이 '담만에의 꿈'을 활짝 꽃피웠다. 그의 표정도 더불어 환해졌다. 독일 최고 기타연주자에서 기타 제작자로 돌아선 마티아스 담만의 기타,지금 주문하면 족히 10년은 걸린다는 꿈의 기타를 마침내 품에 안은 것이다.

기타리스트 고충진과 담만의 행복한 만남을 주선한 이는 정영섭(43) 은백한의원 원장이다. 무형문화재 고 만봉 스님의 '극락도'가 내걸린 진료실에서 그를 만났다. "연주회를 통해 자주 만나는 고 선생이 좋은 기타를 봤는데,참 갖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마쯤 하나,물어나 보라고 했지요. 좋은 연주자에게 좋은 악기를 인연맺게 해주는 일은 빚을 내어서라도,앞으로 벌어가면서 차차 갚아나가더라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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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장의 배려로 3천만원을 호가하는 담만 기타가 고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제 스위스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부산대 앞 카페 '샬레스위스'로 가보자. 요들송이 알프스의 낭만을 실어나르는 이곳도 최근 들어 물 건너온 새 악기들을 부려놓았다. 과거 '샤니케익' 광고에서 보이던 긴 나팔인 알폰과 요들전용 아코디언,카우벨 등이 스위스에서 지난 2월 부산에 상륙한 것이다. 이 또한 1천만원 이상을 선뜻 내놓은 정 원장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주자와 악기를 인연 맺도록 배려하는 것은 오래된 메세나(Mecenat)의 전통이다. 문화예술 등에 대한 지원 활동을 뜻하는 메세나는 한 사회의 문화예술의 성숙을 재는 바로미터인데,부산지역의 메세나 활동이 지극히 부진한 것은 문화불모지라는 오명과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지역문화계의 중론이다.

< "저 스스로 좋은 음악을 듣고 싶었지요. 더불어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세상 또한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좋은 문화를 만나 내가 건강해지면 이웃과 사회도 행복하게 됩니다. 나의 건강이 이웃 건강의 바탕이 되지요. 그러면 사회의 범죄율도 떨어지고,국가적 경쟁력도 제고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기업이 메세나 활동에 보다 적극적이어야겠지요. "

정 원장은 악기 지원뿐만 아니라 소프라노 조수미,피아니스트 백건우 등의 부산 공연에도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 나아가 음악회도 직접 열어왔다. 지난해에는 선동의 회동수원지에서 호반음악회를 열었고,몸담고 있는 단체의 행사 때에도 오프닝 음악회를 열어 분위기를 문화적으로 가꾸기도 했다.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강길잡이가 한의사로서의 제 꿈입니다. 건강하려면 문화 예술 체육 등 모든 부문들이 행복한 방향으로 한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생활건강법입니다. 헬스타운 헬스시티 헬스코리아 헬스월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조력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아무리 음악을 사랑하고 또 팬이라고 해도 선뜻 내놓기에 3000만원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그런 돈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분은 저처럼 고충진님의 아름다운 인간미를 보셨기에 담만은 안겨주신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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