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나이르(Al Na'ir)
두루미자리(Grus)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지만, 별자리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임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므로, '어느 별자리에 속해 있는가?'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 나이르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알레나(Alhena), 알카이드(Alkaid) 등과 함께 특정한 공간의 경계를 차지하는 위치에 존재하는 항성으로, 은하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문명을 이루었고, 지금도 그 문명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알 나이르도 원래는 고유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확률적으로 매우 드물지만 그대로 잘 발전하여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명을 성숙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은하에서 생명이 탄생한 행성 중에서 스스로 우주를 여행할 능력을 얻은 경우는 10억 중에 하나도 드물며, 다시 그 문명 중에서 1만년 이상 존속하며 다른 외계의 문명과 조우한 경우는 더욱 희귀하기에, 알 나이르는 스스로 다음 단계의 문명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10억 년 전에 자멸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알 나이르(Al Na'ir)는 운이 매우 좋다고 해야 한다. 알 나이르는 백억 분의 일도 되지 않는 확률로 스스로 초고도의 지성을 달성한 최초의 우주 문명의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그들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지성들이 만난 최초의 외계 문명이었던 까닭에 그들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서 전폭적으로 문명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알 나이르는 지금까지도 은하 내에서 활동하는 문명 중에서 가장 우월적인 존재감을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를 파수꾼 또는 수호자라고 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은하의 천만 문명들은 여전히 오류투성이인 관념적인 물리법칙에 사로잡힌 채, 우주의 혼돈과 질서가 가지는 복잡함에 대하여 문명이 사멸하는 순간까지도 원망하면서, 그것을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겨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주가 제시한 모든 문제들을 스스로 명쾌히 풀어낸 유일한 지성체였고, 모든 문명의 선각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특혜를 준 우주는 그래서 독단적이고 때로는 편파적으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은하의 변방에서 출발해 순식간에 은하의 모든 영역을 열정적이며 공평하게 문명화시켰으며, 평준화 시켰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출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은하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그 존재가 사라졌다. 문명의 수명론에서부터 상위의 존재로 우화등선했다는 등의 수많은 억측이 떠돌았으나, 그들은 정말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러나 십억 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모든 문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들의 철학과 사상은 일체의 흠도 없어 더하거나 빼지지도 않은 채, 고스란히 문명을 유지하는 체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사라진지 이미 10억년이 지났음에도, 모든 문명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의 문명이 발상한 주변 백 광년을 성역으로 선포하고 지켜오는 것만 봐도, 그들을 얼마나 변함없이 숭배하고 경외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알 나이르(Al Na'ir)는 성역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성역의 중심에서 기준하자면 두루미자리(Grus)에 속한 별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앞서 별자리라는 것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임의적으로 변하는 것이라 의미 없는 것이라고 했으나, 사실 은하의 모든 문명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통일된 별자리를 알고 있으며 그 별자리는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며 동일한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십억년 전, 그들이 문명을 전파하며 기준으로 잡았던 행로가 바로 그들의 고향인 성역에서 바라보는 별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하의 문명들은 표준시와 우주의 중심점을 항상 성역에 대하여 기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통신이나 항로 좌표의 “0”점은 늘 성역이 되고 있다. 아무튼 알 나이르는 “0”점과 딱 100광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그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역을 지키는 수호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절대적인 문명의 성지인 그곳으로부터 간과할 수 없는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감지하고도 잡음으로 처리했을 정도로 그것은 평준화된 우주문명과 동떨어진 낙후된 상태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호였다. 이미 십억 년 전에 폐기된 그와 같은 라디오파는 문명이 지닌 통합사념체의 감각을 수집하는 서브 기관 중 하나로 이미 수억 년 전에 무인 행성에 설치되어 잊고 있던 에너지 감지 장치의 백만 가지 기능 중의 말단 신경에 겨우 잡혔다. 아직 광속을 한계로 하는 상태이지만, 이것은 분명 원시 문명이 일반적으로 지니는 흔적이 분명했다.



성역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문명의 통합사념체들은 10억년 만에 처음으로 성역의 벽을 넘어 감각의 촉수를 뻗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문명! 그렇다. 하나의 행성에서 이전의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자적인 문명이 새롭게 자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10억 년 전 그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탐색했던 성역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과거의 그들은 어떠한 작은 단서도 남기지 않고 증발했었다.

이제는 선각자로 부르는 그들이 현존하는 문명의 궁극을 넘어 어딘가로 향했다면, 그 흔적을 찾아 따라가면 은하의 문명은 다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낌없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전수하던 선각자들은 아무런 키워드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고, 그것은 우주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곳에 새로운 문명이 태어났다. 물론 전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문명이 사라진 후에 외부에서 유입되거나 이식된 생명에 의해 재탄생된 문명이지, 이곳과 같이 십억 년 동안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지켜졌던 경우가 아니다.

비록 저들은 조잡하지만 자연과 뚜렷이 구분되고, 스스로 이룬 것이 분명한 독특한 색감을 지닌 문명을 형성하고 있다. 탐색을 하면서 불과 수 만년 동안에 저들은 우주의 어떠한 생명체도 달성하지 못했던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으며, 현재의 모든 문명이 시행착오라는 개념 없이 선각자들의 도움으로 순탄하게 문명을 성숙시킨 것과 달리, 저들은 스스로 수없이 많은 실수를 하면서, 그들 통해 생존과 공존과 발전의 길을 모색해 내며, 꾸준히 그리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파라는 원시적인 장거리 통신수단을 개발하고 백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행성을 벗어났으며, 수백 번의 실패를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항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문명이 초기에 범하는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그들은 그 오류를 하나의 훌륭한 법칙으로 정립해서 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이 아닌 가상의 현상들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을 물리적인 구체적 힘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은 씨앗이 있는 것인가? 어찌 이토록 독특하면서도 특출한 문명이 하나의 장소에서 연이어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문명을 촉진시키는 자양분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이들을 탐지한 정보는 동시에 모든 은하의 형제 문명들에게 수용되며 그들을 의혹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주문명의 선각자 2편으로 이어집니다.

'비과학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First contact : 문명과 문명의 만남  (58) 2009.06.10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27) 2009.05.31
주관적인 우주  (37) 2009.05.11
우주문명의 선각자 2  (30) 2009.05.05
외계인과 만날 확률 3  (31) 2009.04.13
외계인과 만날 확률 2  (8) 2009.04.12
외계인과 만날 확률 1  (28) 2009.04.10
인류 진화의 미래상  (47) 2009.04.06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