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월 8일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했는데, 20년 후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애플 컴퓨터를 설립하며 튜링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한입 베어 먹은 독 사과를 로고로 선택하여 튜링의 독창성과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은 1950년 철학저널 Mind에 발표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기계가 지능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조건을 언급하며 인간의 지적 기능을 기계가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두뇌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처리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수학적인 절차로 체계화하고, 그 체계화된 수학적 작업을 기본 연산의 작은 단위들로 나누고 이를 연속적인 연산을 수행하도록 한다면 인간의 두뇌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튜링이 생각한 가상의 기계를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라고 합니다.

 
튜링 테스트(Turing Test)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고자 하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기계의 반응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는 다소 어렵고도 철학적인 문제를 이끌어내게 만듭니다. 이것은 나아가 기계의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지능적인 차이와 영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발제이며, SF에 자주 등장하는 로봇이나 클론처럼 실제로 미래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문명의 결과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인 성찰로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튜링 테스트(Turing Test)의 원래 이름은 The imitation game으로 번역을 하자면 흉내 내기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관찰자, 관찰자와 성별이 다른 사람인 A, 기계(컴퓨터)인 B가 참가를 하는데 관찰자는 일정 시간 동안 사람 A, 기계 B와 원격으로 대화를 한 후에 어느 쪽이 기계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관찰자가 기계와 사람을 정확히 판단(구분)해내지 못하면 그 기계는 테스트를 통과하여 지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물론 기계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사람인 것처럼 답변할 것이지만, 그러한 답변이 이미 프로그램된 대로 충실히 출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발전하고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기계라면 자신이 기계인 점을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테스트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이런 기술의 발달을 이미 체험한 사람 A는 오히려 자신이 기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 가깝다는 것
휴즈 레브너(Hugh Loebner)캠브리지 대학 행동과학연구소(Cambridge Center of Behavioral Studies)와 공동으로 튜링테스트를 구현하는 컨테스트인 레브너 상을 만들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최초의 컴퓨터에 $100,000의 포상금을 걸어놓고, 1990년부터 매년 가장 인간에 가까운 컴퓨터에게 약간의 상금과 메달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대회의 목적은 튜링의 정신처럼 인간의 지적 기능을 대신하는 컴퓨터 연구에 대한 격려인데 재미있는 것은 우승의 조건이 문제의 수행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에 가깝는가에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은 예절, 의상, 언어, 종교, 의례, 법이나 도덕 등의 규범이나 가치관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문화와 지식을 비롯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와 문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동물들도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고유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고, 단순하지만 의사소통의 도구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는 인간보다 더 복잡한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고 있기에 이러한 조건만으로 인간 고유의 특성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특성은 마음 이론(Theory of Mind), 즉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말하는 능력조차도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식으로 상황이 몰려가면 어떻게 거짓말을 시도하는가에 대한 복잡한 알고리즘을 파악하여 완벽하게 프로그램 한 인공지능이라면, 인간보다 더 합리적인 비합리적 거짓말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튜링 테스트를 통해서 누가 진짜 인간인지를 구분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인가?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영화화한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에 보면 복제인간이면서도 자신이 복제인간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리플리컨트( Replicants 복제인간)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그에 반응하는 상대의 눈동자를 살펴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려내고 있습니다. 리플리컨트는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대리의 기억을 이식받았으나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과거로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기억의 축적 패턴이나 인식과 반응과정이 정상적인 인간과 다르므로 블레이드 러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와 가짜를 판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마음과 감정을 가졌다면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가공된 기억이지만 그것을 통해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타인에게 우호적이고, 애완동물에게 애정을 쏟고, 자신의 일에 주도적이고,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고, 선악을 분간하며, 때로는 실수를 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이성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데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이 인간의 기준일까요? 단순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유기적 컴퓨터일 뿐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무한성과 유한성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소설인 양자인간(Bicentennial Man 바이센테니얼 맨)에 등장하는 앤드류 마틴은 마음을 가졌고,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수많은 노력에 불구하고도 언제나 로봇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가 200세가 되었을  때에야 공식적으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닐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하며 외부자극을 통해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오랫동안 로봇으로 머물 수밖에 없게 했기에 결국 앤드류 마틴은 로봇이 가지는 무한성을 포기하고 유한성(죽음)을 택하므로 사람으로 인정을 수 있었습니다.

과연 사람이냐 기계냐의 판단이 이러한 생물학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신(神)은 영원성을 지니고 있으나 보이지 않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 옆에 항상 실재하는 로봇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한 존재이기에 그에 대한 두려움, 질투 등이 최후의 존엄성인 인간으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뇌사상태에 이르렀다면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뇌활동이 없으므로 마음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지만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그를 인간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한성을 가진 앤드류 마틴과 뇌사상태의 인간 중 누가 더 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뇌 활동의 패턴이 마음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판단 기준이 된다고 했을 때, 그러한 뇌 활동의 패턴을 그대로 논리적으로 대응시킨 기계가 있다면 그 기계 역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인간의 생각을 흉내 내고 있을 것이므로, 튜링테스트를 통해서는 결코 진짜 지능과 가짜 지능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질문에 답변하거나 행동하는 패턴 자체가 인간과 구분할 수 없다면 즉 그 차이를 관측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적으로 동일한 상태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해부 혹은 분해하지 않고는 결코 누가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
생물학적 특성만이 진짜 마음을 가졌다는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간을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인 정서적인 능력을 재는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는 타고나는 것보다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환경적인 요인과 교육으로 형성되는 부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EQ는 자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아이를 정글의 침팬지 무리에서 자라게 했다면 그 아이가 가지는 감성지수는 그 침팬지 사회에 적합하도록 발달할 것입니다.

인간 사회 기준의 EQ는 자신의 진정한 기분을 자각하여 이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과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목표 추구에 실패했을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격려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감능력, 집단 내에서 조화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 등을 들 수 있는데, 침팬지 집단에서 자란 아이라면 그 사회에서 인정하는 범위의 보편적인 사냥 능력, 암컷을 차지하는 능력, 우두머리에게 복종하거나 무리와 협력하는 능력 등의 EQ로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EQ는 결국 그 사회 질서의 유지에 대한 환경적 억압내지는 요구의 결과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하나의 인위적인 입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학습이라고 보고 그 학습을 정형화하여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다면 기계에게도 EQ를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Q를 가진 로봇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여 감정적 대응을 자제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를 하며, 그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등, 인간과 모든 면에서 흡사하다면 여전히 기계일 뿐인 것일까요?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가짜 마음, 가짜 지능, 가짜 감정이라고 한다면, 인간인 우리는 진짜 마음, 진짜 지능, 진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안드로이드는 무엇을 꿈꾸는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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