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성별(性別) 3편에서 이어집니다.

4. 다종교배(多種交配) - 이기적 유전자
행성 에덴의 번식방법이 이종교배(異種交配)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유성생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암수는 아니지만 각기 다른 개체가 자신의 형질을 보관한 생식세포를 만들고, 그 생식세포들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가 생산되는 생식이므로, 구분은 없으나 각각의 이종 암수가 따로 진화한 후에 서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의 유성생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상호의 배우자가 동형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이형배우자가 될 수도 있으나, 감수분열(減數分裂  meiosis) 형태의 과정을 거쳐서 각각의 생식세포인 배우자(配偶子 gamete)를 만들고, 생식을 통해 이 두 배우자가 다시 결합하여 유전자가 섞인 접합자(接合子 zygote)가 되므로,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종의 동.식물성 생물은 각각이 고유한 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식세포의 운동성을 근거로 암수와 구분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모두 운동성을 지닌 생식세포를 지니고 있으므로, 모두 암컷이라 할 수도 있고 모두 수컷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성이 없는 무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성생식으로 출아를 하다가도 필요에 따라 이종교배나 동종간의 유성생식이 가능하므로 이 생물은 동질성을 이어가다가도, 환경적인 압력이 생기면 금방 다양성을 추구하는 형태의 생식으로 전환이 가능하므로, 이제는 놀라운 신종 생물로 진화를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생물을 우리 관점에서 보자면 크기는 5m에서 20m까지 다양했는데, 덩치가 큰 종은 주로 고착된 식물성 생물이었고 운동성을 가진 생물의 대부분은 10m를 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성이라는 것이 고작 일 년에 100m 이상을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바위 덩어리처럼 보일 뿐이고, 식물성 생물 역시 대기 중의 양분 흡수를 위해 표면적은 넓었지만 햇빛이 직접적인 생존 조건이 아니기에 높이 자랄 필요가 없다보니 키 작고 둥근 바위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만져보면 표면이 부드럽고 젤리처럼 말랑말랑했으나 겉으로 보이는 모든 생물종은 붉은 갈색을 띄는 바위였습니다.

행성 에덴에 바다가 사라진지는 오래되었으나 대기 중에는 충분한 수증기가 넘쳐났고, 그들에게 꼭 필요하고 그들의 호흡의 결과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 역시 풍부했습니다. 이산화탄소는 수산화칼슘(calcium hydroxide)과 반응하여 이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인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을 만들어내고 이 탄산칼슘은 수증기와 함께 그들의 체내에 흡수되어 생물의 성장과 대사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생물의 몸체가 바위처럼 보이고 실제 바위와 구성 성분이 비슷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며, 과거 몇 번의 대멸종 때 죽은 생물군이 굳어 대리석이나, 방해석, 석회석, 빙주석 등으로 변질된 것 또한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은 우리처럼 빠른 대사활동을 하는 생명체와 달리 매우 극소량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세포가 백 년 동안 자궁 속에서 성장한 후에 출아할 때의 크기는 불과 10cm이며 그 생물이 성체가 되는 데는 1천년 이상이 걸리고, 그들은 한번 흡수한 양분(탄산칼슘)에서 이산화탄소만을 배출한 후 저장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양의 양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멈추지 않았던 행성의 화산활동의 결과, 화산재와 이산화황, 황산 등이 결합한 두꺼운 구름층이 영구적으로 생성되어 수분이나 이산화탄소가 외계로 증발하는 것을 막아주었기에 행성에는 그들에게 먹이가 넘치는 환경을 끊임없이 제공해 왔던 것입니다.


행성 지표의 기압이 지구의 90배에 가깝고,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비슷해서 태양이 두 번 뜨고 지면 일 년이 지나기에 일 년의 절반은 어둠속에 있었지만, 높은 대기압은 시속 수 Km의 바람만으로도 영양분의 순환을 충분하게 했고, 또한 온실효과로 인해 일 년 내내 표면온도는 400도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양광의 유무나  행성의 온도는 생물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않았고, 온도가 지금보다 두 배 더 높다고 해도 위협이 될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원시세포 때부터 어둠이 오면 생물의 붉은 갈색빛이 감도는 표피에서는 연한 빛(ashen light)(1)을 발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도 그 빛은 생물이 서로를 감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생물의 종에 따라 파장이 조금 씩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물이 탄생한지 40억년이 지날 무렵의 행성 에덴은 안정되고 다양한 종들이 넘치는 평화로움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생물이 본능적으로 가지게 된 다른 유전자에 대한 갈망과 그 유전적 결합의 가치 인식 때문인지 이종과의 교배는 지속되었고, 행성 표면에는 천년에 걸쳐 자라난 수많은 바위 형태의 생물군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영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유전자에 대한 갈망의 결과도 서서히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몇 억년을 두고 계속된 이종 간의 정보교환으로 이제 더 이상 획득해야할 정보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시 한 번 ‘권태에 의한 노화’가 시작된다면 생물은 진정한 멸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생의 생물들은 운이 매우 좋은 편인가 봅니다. 아니면 매우 운이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외부에서 날아온 기이한 물체에는 자신들과는 다르지만 복잡하게 발달한 유전정보를 지닌 원시적인 단세포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이상한 형태의 세포는 행성의 온도와 압력을 겨우 견디다가 에덴의 생물에게 흡수되어 생물 내부의 안정적인 환경에 들어서자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외계에서 유입된 그 기이한 반생물은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종으로 왕성한 생명력을 지녔지만 스스로 활동할 수 없기에 숙주세포에 의존하여 증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덴의 생물은 그 바이러스가 지닌 방대한 양의 정보에 놀랐고, 진화의 기억대로 새로운 이종에 대한 결합을 시도하였습니다.


처음 바이러스가 생소한 세포와 만났을 때는 위축되는 듯 에덴 생물의 세포에 순응하며 정보 교환을 했었는데, 어느 정도의 정보를 확보하고 변이가 가능해지자  40억년 가까이 누적된 환경 적응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에덴 생물의 체계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세포 간의 정보 교감이 뛰어난 에덴 생물이 위험을 느끼고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진화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현상인 침입(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엄청난 환경 압력 속에서 살아남으며 정보를 누적해온 이 바이러스의 적응력은 에덴 생물의 1억 배가 넘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생물은 오히려 자신의 모든 정보를 바이러스에게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돌연변이 후 진화에 성공한 바이러스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번식을 해나갔고, 운동력이 거의 없는 모든 에덴 생물에게 전염되는 데는 1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에덴 생물은 죽지 않았지만 병든 것이고, 병들었지만 죽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본래의 자아는 상실했지만 새로운 진화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바이러스와의 일방적인 정보 교류로 인하여 생물의 세포는 그 구조적으로 상당히 변했으며, 대사활동의 속도가 빨라져서 개체 자체가 분열하거나 세포단위로 분해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바이러스는 핵산단백질 대신에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황, 탄산칼슘을 조합하여 형질을 보존하고 증식하는 정보를 터득했고, 마침내 이전처럼 다른 생물의 살아있는 세포가 없을지라도 스스로 분열하고 증식할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스스로 번식할 능력을 지녔으므로 바이러스라고 할 수 없게 된 이 외계의 이종 생물은 행성의 바람을 타고 흩어지며 퍼졌고, 대기권 높은 곳까지 타고 올라가 이산화황을 매체로 하는 대량의 증식을 시도해 나가므로, 10여년 사이 행성의 대기 중의 이산화황의 농도(2)는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행성 에덴을 관측하고 원래의 행성으로 선회하던 비행체에 이 변종된 생물의 일부가 묻어가게 되었습니다. 생물은 강한 태양풍을 피해 비행체의 내부에 붙은 채 바이러스 본래의 장점을 발휘해서 일체의 생체활동을 중단했지만, 비행체가 대기권에 진입하자 다시 잠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후, 금성이라고 불리는 행성 에덴의 바깥 궤도를 도는 행성 지구에는 두 가지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화석화 바이러스(化石化 virus)라고 불리는 신종 병원체(病原體)가 창궐하면서 모든 생물은 심각한 멸종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급격히 증식하는 이 신종 바이러스는 기생과정없이 스스로 번식이 가능하기에 바이러스라고 할 수 없었지만, 외계 어딘가에서 날아온 것이 분명한 특징을 가졌기에 고전적인 SF에서 분류하던 대로 바이러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일단 감염이 되면 화석화 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생체에서 증식하면서 세포에 이물질을 누적시키며 경화시켜 화석처럼 굳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화석화 바이러스(化石化 virus)의 활동을 막을 수 없었고, 감염의 경로도 물, 공기, 접촉 등으로 다양했기에 예방조차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화석화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화석화가 완료되면 그 생물 의식 자체를 세포 단위까지 지배하며 활동의 주기를 매우 느리게 변화시켰기에, 변화가 끝난 생물은 이미 지구의 생물이 아닌 낯설고 이질적인 생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체감염이 확산되기 몇 년 전에 화석화 바이러스(化石化 virus)는 토양과 해양에서 먼저 활발한 번식활동을 하였는데, 그 결과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바이러스의 양분 생산을 도왔고, 다시 생산된 양분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바이러스는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였기에, 지구의 대기에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온난화를 가속했습니다. 초기에 인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산화칼슘을 사용했는데, 이는 바이러스의 영양분이 되는 탄산칼슘의 이전 형태였기에 오히려 증식과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00 년이 지난 어느 날..
지구는 극심한 온실효과로 인해 표면온도는 섭씨 400도가 되었고, 대기압은 예전의 90배인  9100 킬로파스칼(kPa)정도에서 안정화 되었으며, 모든 바다는 완전히 증발하여 그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구에는 여전히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불사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 생물이 되어 있습니다.
-끝-



에필로그(Epilogue)
(1) 애센 광(ashen light)은 금성 관측의 오래된 수수께끼 중의 하나인데, 금성이 초승달 위상에 있을 때 금성의 그늘 부분(태양 반대편)에서 보이는 약한 발광현상을 일컫는 것입니다. 애센 광은 1643년에 처음으로 관측되었지만, 발광 현상의 존재가 믿을 만 한 것으로 확인된 적은 없으며, 금성을 관측하는 사람들은 이 빛이 금성 대기에서 일어나는 벼락같은 전기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해 왔습니다. 어쩌면 애센 광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아주 밝은 초승달 부분을 함께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2) 다수의 관측 자료에 의하면 금성의 표면에는 현재에도 활동 중인 화산이 있는 것 같은데, 러시아의 베네라 프로그램동안 베네라 11호와 베네라 12호의 탐사선들은 끊임없이 치는 벼락을 관찰하였고, 베네라 12호는 착륙 직후 큰 천둥소리를 녹음하였습니다. 1978년과 1986년 사이에 이산화황의 금성 대기 중의 농도가 10분의 1로 줄어든 것이 관측되었는데. 이것은 큰 화산 활동이 관측 전에 발생해서 이산화황의 농도를 증가시켰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1961년 2월 12일
소련의 금성 탐사선 베네라 1호 발사
현재 임무를 마치고 태양을 돌고 있다.

1965년 11월 16일
소련의 금성 탐사선 베네라 3호  발사
1966 금성 대기권에 진입하기 직전에 통신이 끊어졌다.

1967년 6월 12일
소련의 금성 탐사선 베네라 4호 발사
금성 대기의 높은 압력으로 금성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부서졌다

1972년 3월 27일
소련의 금성 탐사선 베네라 8호 발사
금성 표면에 도착하여 지구에 자료전송

.. 중략..

1989년 5월 4일
미국의 금성 탐사선 마젤란 발사
금성 표면의 지형을 레이더를 이용하여 관측하여 표면 99 %의 지도를 작성

자세한 금성 탐사에 관한 정보 보기


- 이로써 태양계의 행성 중 지구형 행성에 의한 멸망 시리즈는 마무리되었습니다. 행성 X는 태양계 아홉번째 궤도를 돌고있다는 미확인 행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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