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후의 순간은 어떻게 시작될까? 3편과 연관된 글입니다.
갑자기 극심하게 오금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멈춰선 채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했고, 지구 반대편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은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심한 두통을 느꼈다. 한창 생방송 중이던 아나운서나 라디오 DJ들도 그 증세를 느꼈으나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겨우 비명을 참을 수 있었지만, 심신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와 환자들은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과 울음을 터트렸다.
이유는 알 수 없는 그 기이한 현상은 며칠을 이어지며 강도가 심해져, 초기에 일부 사람만이 느끼던 것이 이제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명확한 현상이 되었고, 어느 곳에 있거나 어떤 상황의 사람에게도 같은 크기로 들려왔다. 지하 깊숙히 있거나 우주 한가운데 있거나 심지어 청각을 상실한 사람에게도 그 소리는 명확히 들렸다.
금속판을 날카로운 송곳 끝으로 긁어 대는 듯한 소리는 잠시의 틈도 없이 바로 귓가에서 거칠게 들려와서 신경을 거스르며 집중력을 방해했고, 생각을 막으며 영혼의 정결함을 부수고 일치된 심신을 분리하는 듯 했다. 그 현상이 며칠을 이어가자 상당수의 사람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점차 그 정도가 더해짐에 따라 반응의 강도도 심해져서, 자해를 하는 사람이 늘었고, 일부는 견디다 못해 약물에 의지했지만 그 소음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만치 생생해 결국 다수의 약물로 인한 사망자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날 무렵에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이 자살하는 사태로 이어져,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재앙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 무리 속에 갇힌 쥐가 느끼는 듯한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 소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며, 점점 더 명확해지고 확고해져서 모든 학자와 종교인과 정치인, 의사들조차도 그것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시일이 지날수록 잠들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이어지며 세계는 크나 큰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현상은 시작된 지 꼭 두 달이 되었을 때 거짓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단되었지만, 정신을 차린 인류는 스스로가 한 짓에 대하여 망연자실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수 천 년을 이어온 문명의 자산과 위대한 흔적들은 놀라울 만큼 빠른 시간 동안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고,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혼자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로 인류의 대부분이 죽은 후였다. 이제 과학도 문명도 종교도 겨우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암울한 시대가 된 것이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운 좋게 멸망을 피한 소규모의 무리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의 기억 때문인지, 그 시기에 일어났던 정신적인 변화 때문인지, 파괴적이고 거칠었던 본성의 대부분이 다듬어져 있었기에, 서로 규합(糾合)하며 상조(相助)하여 문명을 재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르면서 안정을 찾은 인류는 그 역사적인 현상에 대하여 숙원처럼 연구를 거듭하였고, 다시 십여년이 흘렀을 무렵에 마침내 그 원인을 발견했지만, 그 발견이 더 이상 무의미해졌음도 알게 되었다.
생물이나 어떤 물리적인 상태가 외부환경의 변화나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흥분)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역치(閾値 threshold value)라고 하는데, 역치의 변화는 그 세포가 흥분하기 쉬운가 어려운가를 뜻하므로, 약한 자극에도 흥분하면 역치가 낮고, 강한 자극을 주어야만 흥분하면 역치가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 눈은 400~700nm의 가시광선이라는 적합자극(adequate stimulus)을 주었을 때 흥분하며, 귀는 20~20,000Hz의 음파의 자극에 흥분하게 되는데, 만약 눈에는 음파를 귀에는 가시광선이라는 부적합한 자극을 주면 흥분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부적합자극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심하면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범위를 넘어선 자극, 즉 소음(noise)도 감각의 반응을 높여주는 공명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청범위나 가시범위를 넘어서는 자극이라도 다른 종의 생물은 역치값의 차이로 느끼고 반응하게 되며, 인간이 그것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진화과정에서 생존에 적합하도록 설정한 역치에 의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는 역치값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데, 만약 현재 보다 훨씬 더 낮은 역치값을 가져 낙엽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편리성보도 너무나 극심한 소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류를 거의 멸망으로 내몰았던 정체불명의 소음은 일상에서 지구의 어떤 생물도 듣고 느낄 수 없는 감각의 부적합자극으로 그것은 시각, 촉각, 미각, 청각, 후각 이라는 오감(五感, five senses)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극이며, 지구와 그 위의 모든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단 한번도 자극을 준 적이 없기 때문에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그 자극에 반응할 만한 감각기관이 없지만, 너무나 선명한 자극이기에 우주에서 비롯된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인류도 그 기본 요소까지 반응시키는 우주적인 자극에는 인체와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적 물질이 근본적인 반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전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의 우주소음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 저편에서 강력한 미지의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 반응의 여파는 공간과 물질을 어마어마한 속도로 가로지르며 압력파를 발생시켰다. 그런데 그 현상은 압력파조차도 앞질러가면서 우주적인 충격파(衝擊波 shock wave)를 만들어 내는데, 그 충격파조차도 미지의 현상이 가지는 압력에 밀려 초충격파(超衝擊波 super shock wave)를 만들어 내었고,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시공간을 동시에 진동시켰던 것이다. 즉 모든 우주 전체에서 일시에 종소리를 울리게 하는 어떤 미지의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 물리적인 현상은 광속이나 시간보다 빠르며 일반적인 믈질들이 지니고 있는 물리법칙을 지키려는 힘을 무시할 만큼 강력한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 현상이 주는 엄청난 파동은 우주의 소음을 일시에 수 억 배 증가시켰고, 그로인해 우리의 감각 범위를 넘어선 부적합자극인 물질진동은 소음공명(Stochastic resonance)에 의해 우리의 오감을 동시에 역치값 이상으로 올려서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뇌는 폭증하는 범위이상의 감각 신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 현상은 오감을 자극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폭죽이 터지는 듯 한꺼번에 뇌속으로 밀어 넣었다. 뇌는 폭증하는 정보의 소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진화에 의한 자연적인 대응으로 그 중 한정된 감각만으로 자극을 모으며 역치값을 최소로 감압했지만, 기본 물질의 구성을 흔드는 진동은 기이한 소음으로 인지되었고, 그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 상태가 되어 온 몸은 장기와 뇌세포 하나까지 근질거리며 소름이 끼치며 오금이 저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자 그 소음은 더욱 커졌지만, 오히려 공명되지 않을 만큼 떨림의 대역이 초과되었기에 소음은 다시 들리지 않는 소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그 소음은 지구의 모든 생물을 비롯해 인류를 괴롭히고있지 않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더 선명해지고 범위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공이라고 일컬어지는 우주의 빈 공간까지도 진동시키고 있는 거대한 소음을 일으킨 그 현상은 여전히 강도를 더하며 인류와 가까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시간의 입자조차도 진동시켜 시간을 왜곡시키고 공간을 압축하고 우주가 동시에 진동하고 있는 것인가? 우주는 대폭발의 초기에 딱 한번 이와 비슷한 현상이 보였을 것으로 보인다. 0.000000...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 동안 지수함수적으로 급팽창 했던 인플레이션(inflation) 때에 우주는 막 탄생한 시간이 모든 공간을 일시에 점령하며 -비록 그 크기가 작지만- 전우주를 동시에 진동시켰을 것이지만, 그 이후에는 물질과 물질 사이의 틈이라는 시공간적인 제약으로 도저히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고, 소규모로 조차도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달리 무엇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단 말인가?
천사의 나팔소리라도 된다는 말인가?
천사의 나팔소리??
...!!
-나팔소리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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