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용어

2011. 10. 11. 22:59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지나치리만큼 간결하다. 불과 수십만 개의 단어를 짜맞춰 생각을 표현하고 의사소통하는 데 이용할 뿐이다. 아니 일상생활은 수백 개의 단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의 옛 선조는 좀 더 우주 본질과 닮은 언어를 구사하였다. 우리가 주문(呪文)이라고 부르는 기묘한 언어가 그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우주 본질의 언어는 명령이고 법칙이고 표지판이다. 그 언어는 우주와 하나이므로 소리가 되어 나오는 순간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사물을 움직였다. 그 언어가 표현하는 그대로 우주가 따랐고, 즉시 현실이 되었다. 마치 마법처럼 그 언어는 우주에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홀로덱(Holodeck)*에서 사물의 구성과 인물, 세세한 상황까지 말로 바꿀 수 있듯이 우주는 우주의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가 내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있다. 비록 말의 주체가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우주를 주관하는 컴퓨터는 작은 소리와 소망도 놓치지 않고 듣고, 우주에 반영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방식의 언어로 이루어진 말에는 즉각 반응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수천 가지 다른 언어로 말하므로,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을 전달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나 원래의 언어는 어떤 발음, 어떤 소리로 말해도 누구나 즉시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듣는 사람도 그 뜻을 선명하게 알 수 있고, 심지어 나무와 물고기, 돌과 흙도 그 말을 이해하고 반응한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해지고 더 복잡하고 세밀한 구분을 위한 지칭이 만들어지겠지만, 본래의 언어는 복잡하지 않다. 어찌 보면 음악과 닮았다고 해야 하나? 그 언어는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뜻과 순리라 하겠다. 음악을 음표가 아닌 글로 옮기는 게 불가능하듯이 그 언어는 우리의 언어로 옮기지 못한다.

그건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이고, 우주의 나아갈 바를 알리는 소리기도 하다. 그래서 우주와 완벽하게 같은 리듬이다. 독특한 음률로 읊조리던 고대의 주문은 적어도 우주의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몇 줄의 주문을 반복하므로 호풍환우할 수도 있었고, 더 거대한 이적을 보이기도 했다. 말의 힘을 대단한 것이다. 말에는 감정이 실리고 감동이 들어있으며, 의지가 담긴 소리는 강력한 힘으로 비록 불협화음일지라도 우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짧은 웃음소리 하나에 기분이 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든 먼 훗날 외계문명과 만났을 때 의사소통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류도 이대로 천년만 지나면 언어가 가진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방식의 언어를 개발해 낼 것이듯 이미 우주에는 어떤 종족과도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해낸 문명이 수두룩하다. 물론 그 언어는 생명체만을 위해 고안된 언어가 아니다. 또한, 고안된 것도 아니다. 원래부터 있던 언어이다. 아이가 자라면 주변에서 쓰는 말을 배우듯 문명도 자라며 점점 주변 환경, 즉 우주가 사용하는 말을 배우는 것뿐이다. 인류도 커가며 배울 것이다.

문명이 나아지면 복잡한 언어를 통합하려고 언어가 가진 단어의 영역을 늘리기보다는 의미를 함축하여, 짧은 음절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진보한 언어는 종족의 고유성을 고양하지만, 더 발전하기 전까지는 다른 종족과의 소통을 방해하게 되고, 어느 한순간-충분히 다음 세대에 언어를 가르칠 환경이 못 되었을 때-에 맥이 단절되며 전승되지 못하는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 지구에서 번영했던 몇몇 문명은 자연 재앙을 맞아 그 위기를 잘 넘겼음에도 언어를 다음 세대에 충분히 전수하지 못해, 문명이 종말을 맞이하기도 했다.

우리가 고대 언어를 번역할 때, 현대적인 언어, 즉 사물과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범위에서만 그 언어를 이해하려 함으로써 단어와 단어가 만나는 조건이나 만남에서 폭풍처럼 일어나는 함축된 효과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어(古代語)에 숨은 의미와 그것에서 발생시키려 한 놀라운 이팩트도 보장된 결론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던 언어조차도 음절로 끊고, 의미를 축소하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문장의 맥이 연결되어 귀결하는 마지막 발동어(發動語)조차 별개의 단어로만 이해하려 한다. 단순한 말에도 고저가 있고, 장단이 있고, 음률이 있는데, 그것을 글로서만 풀이하려 하다니……. 교향곡(交響曲)을 듣고 ‘라도 라파 시도레’라고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든 문명이 꾸준히 발전하다 보면 언어는 상황 표현이나 의견과 감정의 전달보다는 동조, 공감, 공명의 수단이 되고, 말과 글을 통한 표현보다는 직접 전달로 바뀌는 게 보통이다. 바벨피쉬(Babel Fish)*같은 언어 번역기를 넘어 순수한 생각이 누구에게나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나의 생각이 모여 강물 같은 거대한 흐름을 만들지만, 모두 고유하고 선명한 색상을 지니고 있어 서로 빛난다. 그리고 그다음 그 언어의 물결이 바다에 모이는 시대가 오면 드디어 우주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시대에는 과학이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우주 언어를 모방한 주술만으로도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고, 얻고,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이 할 일이란 본래 우주 언어를 더 잘 모방하여 더 가깝게 다가가고, 더 잘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미 과학도 철학도 사상도 미래도 중요하지 않다. 언어는 이미 힘이자 마법이고, 문명 자체이다.

언어는 개인만이 아니라 더 큰 집단의 미래까지 결정한다. 언어는 지성의 구분이 되고, 언어는 문명의 기준이 되고, 언어의 수준은 문명의 수준이 되고, 언어의 순수성은 문명이 나아갈 마지막 목표이다. 문명이 오염되면 언어가 오염되고, 언어가 파괴되면 문명이 파괴된다.

우리는, 당신은 얼마나 순수한 언어를 배웠고, 얼마나 순수한 언어를 구사하는가? 당신이 매 순간 해대는 말을 통해 우리는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알 수 있다. 당신의 모든 방향은 당신의 언어, 당신의 말로 결정된다. 이미 밝히 바와 같이 지성을 지닌 존재가 하는 모든 말은 어떤 식으로든 사물과 환경과 우주에 영향을 준다. 차라리 침묵하라. 잘못 사용한 언어는 당신의 생뿐만 아니라 사후 세계까지 고정해 버릴 수도 있다. 모든 종교가 하나의 감정으로 일관된 언어 ‘기도’를 종용하는 이유도 언어의 순수성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묵언(登仙)과 침묵은 부정적인 언어로부터 당신을 구원할지도 모른다.

언어는 의사 전달 수단이다.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도 결국 하나의 언어로 기록된 매체에 불과하다. 비록 우리 언어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할지라도 우주는
코딩(coding)된 언어의 총체이며, 같은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언어는 의사 전달 수단이다.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의 진화는 수억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한 개인에겐 관대하다. 아이가 태어나 순식간에 당신과 소통할 수 있는 손짓 발짓과 말이라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언어를 배울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지성에 눈을 뜨는 순간 이미 우주와 소통할 언어를 배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누구나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집중하면 우주의 메아리와 우주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우주의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상태라는 걸 이해한다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될 것이다. 이미 그에 달한 개인이 구원, 해탈, 무크티(mukti), 등선(登仙)이라 표현했듯 한 개인의 성취는 집단과 같지 않다. 어쩌면 당신은 우주가 생각하는 것을 들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주에 명령을 내려 보라!



*1)홀로덱(Holodeck) : 스타트랙에 나오는 무엇이든 가능한 홀로그램 가상현실 무대
*2)바벨 피쉬(Babel Fish)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한다. 이것은 사람의 뇌 속에서 헤엄치며 살 수 있는 작은 물고기이다. 이 물고기는 말하는 사람의 뇌파를 식량으로 하고, 그것의 배설물을 청자의 뇌 속에 배설한다. 즉, 바벨 피쉬를 뇌 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은 어떤 종족의 언어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