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드로이드는 무엇을 꿈꾸는가? 2 편에서 이어집니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원작 소설인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 등장하는 기억이식회사는 ‘모든 기억을 팝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가지고 있는데, 그 회사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SF 영화의 명작인 ‘Total Recal(토탈리콜)‘입니다. 광고 문구처럼 토탈리콜에서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 기억을 간단한 기계 장치를 통하여 돈을 지불한 고객에게 이식하므로, 싼 값에 우주여행이나 모험 등에 대하여 실제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필립 딕의 이런 설정은 일본의 만화가 부이치 테라사와(Buichi Terasawa)의 인상적인 작품인 우주해적코브라(Space Advanture Cobra)
에서도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억이식이 당장은 실현 불가능한 기술이지만, 언제까지나 상상속의 기술로만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억을 이식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결과인 정돈된 정보만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든 상태, 즉 행동과 그에 대한 느낌과 그것에 의한 감정과 이어지는 반응까지 정보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주입해, 마침내는 자신의 경험처럼 변형시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자면 그 기억의 원본을 추출할 때, 이 모든 부속적인 정보를 포함하는 기술이 있어야 할 것이고, 다시 그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호응할 수 있도록 재가공할 기술도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기억과 감정 등이 뇌의 어느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목록을 작성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수천억개가 넘는 유기적인 기억소자들로 구성된 한 사람의 뇌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검색하고 그 목록을 작성하는 데만도, 현재 지구에서 작동하고 있는 모든 컴퓨터를 총동원해서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고, 그들 다시 가공하는 것에도 엄청난 공을 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컴퓨터의 기술이 0과 1이라는 단순논리를 넘어서서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양자를 다루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유기체의 특성을 좀 더 쉽게 스캔하고 기록하여 닮은 상태로 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 많은 정보 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골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선별을 위한 그 ‘기준‘이 바로 진짜 인간의 마음을 찾아내는 기준이므로, 그런 기준을 정하는 완벽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면, 역으로 인공지능에게 진짜 인간의 마음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진화의 산물
우리는 오랜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는 ‘도덕적 동물(The Moral Animal)’에서 진화심리학을 통해 사람의 마음은 우리의 먼 조상이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 선택된 기능들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미적 기준도 더 완벽한 대칭성을 통해 더 좋은 유전자를 선별한다거나, 가슴이나 허리, 엉덩이 등의 비율을 통해 생식력 등의 요소를 판별한다거나 하는 경험에 의한 정보의 유전적인 기억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문화를 가진 후에 추가된 이성 선택의 요소인 지위나 부, 명예 등도 어쩌면 화려함을 뽐내는 생식기에 접어든 다른 동물의 행동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합니다.

마음은 ‘생존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전제를 가진 채, 사물과 환경을 인식하고 행동의 패턴과 반응을 결정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한번 눈을 깜박일 때마다 수천만화소의 동영상을 받아들여 분석하면서 그 중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어서, 그것의 소용과 중요성과 우선의 정도를 판별하고, 보존 유무와 기간을 설정하고, 그 정보의 현재와 미래를 유추하여 행동적인 대응안을 검색하여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을 통해 다른 정보들을 받아들이며 그것들과 시각 정보를 취합하고 있습니다.

어떤 TV 프로그램의 실험에서처럼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스코어에 지나치게 신경을 집중하면 선수가 바뀌거나 숫자가 변해도 지각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수억 년 동안 다듬어온 지나친 정보의 유입을 경계하는 안정장치와 우선적인 정보를 거르는 정보필터의 작용으로 현재의 나의 생존에 가장 적합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과도한 정보나 자신의 고유한 생각 패턴을 완전히 망가뜨릴 정도의 충격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유입을 아예 거부하거나 망각해 버리는 등, 우리 인간은 사회성을 포기할지라도 ‘생존’ 자체를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몸에 의해 생존하고 있으면서도 몸을 지배하며, 마음 그 자체의 생존보다는 몸의 생존에 더 적극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경쟁과 적응과정에서 겪은 경험의 축적에 의한 선택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완전한 뇌를 지닌 채 태어나는 사람의 경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온전한 마음을 형성하지 못하듯, 우리의 마음은 생물학적인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인간은 영육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에만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으며, 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적인 기억과 학습을 통한 기억에 의해 유지되는 복잡한 유기 컴퓨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미래의 인간
우리는 지금도 자발적으로 통제할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약물이나 정신적인 요법을 통해서 불행한 과거를 지우거나, 그것을 건전한 경험으로 재인식시키는 기억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뇌에 경계를 구분 짓고 각 구역의 역할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뇌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도 않으며 하나의 역할을 하나의 영역에서만 독선적으로 진행하거나 떠맡고 있지도 않습니다. 뇌의 일부분의 기능이 마비되면 뇌의 다른 부분이 그 역할을 새로이 담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잠재된 감각을 각성시켜 손상된 기능을 대체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하며 거대한 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것의 -분석, 판단, 저장, 명령, 복구 등- 능력을 전자적으로 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SF에서처럼 기억을 선별적으로 삭제하거나, 새로운 기억을 완전히 이식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용량이 무한에 가까운 하드디스크가 필요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양자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살아있는 유기체를 기억소자로 삼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기억이식 기술이 잘 발달한다면 우리는 경험하고 학습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이런 경험과 학습, 그리고 그것의 중요성을 판단하고 선택해서 정리하고, 다시 익숙해지기 위해 보내고 있는데, 만약 그런 기억을 모든 과정을 포함해서 온전히 이식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한 모든 지식을 그대로 지닌 채, 10살로 돌아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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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이 인간을 나태하게하고 삶을 권태롭게 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지혜를 뺀 지식만을 이식했을 때의 문제이므로, 오히려 기억 이식 덕분에 인생을 더욱 선명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얻는데, 20~30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존과 번성이라는 생물 고유의 목적을 위해 다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류 본연의 목적일 수도 있겠으나, 지적인 존재인 인간은 문명을 세우므로 다른 새로운 목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목적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과 그 해답을 통해 새로운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이식하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우리는 부작용 없는 기억 이식을 통해 좀 더 일찍부터 인간 본연의 가치와 나아갈 바에 대하여 고찰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얻는 새로운 기억은 다시 추출되고 누적되어 다음 세대로 이식되어 갈 것입니다. 그런 반복을 통해 우리는 자연적인 진화보다 수천 배나 빠르게 획기적인 마음의 진보를 이루어 내며, 더 빨리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진화를 이루어 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용량으로 누적된 마음의 흔적인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인공 기억 장치들을 고안해 낼 것입니다.

그런데 한사람의 기억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고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저장장치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리고 수만 명의 완전한 기억을 상품으로 모아서 저장해둔 토탈리콜의 메인 컴퓨터는 여전히 인공 지능, 마음이 없는 인공지능으로만 남아있는 것일까요? 나아가 미래의 인류가 죽음을 거부하고 자신의 뇌를 전자적으로 또는 다른 유기적인 도구로 대체했다면 그는 마음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고, 절반의 전자두뇌만 가졌다면 절반의 영혼만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또 한사람의 기억을 완전히 포맷하고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한다면 그의 마음은 누구의 것일까요?



모든 선(善)한 진화는 항상 다양성을 추구해  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는 철학적인 기준을 새롭게 세우고,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억의 축적물이 아니라 마음을 지닌 하나의 종(種)으로 받아 들이고, 그와 협력하여 새로운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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