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반 년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바쁘니까 주소보내라!"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 버리더군요. 그런 일이 몇 번 있었기에 문자를 보내고 잊어 버렸습니다. 택배가 왔습니다. 테이프를 잘 바른 아이스박스를 열자 각얼음으로 채워진 상자 아래에 예쁘게 손질된 오징어 50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친구와 알게 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처음 느낌은 메피스토 그 자체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얼굴이 그렇게 까맸던 이유는 10 여년 동안 외항선을 다타가 나를 만나던 그 무렵에 육지일을 막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까만 얼굴에 군살없는 덩치와 짧은 깍뚜기 머리까지 딱 보기에도 '무작하게 생겼군' 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호감을 주었는데, 그건 그 친구의 말투와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예절과 기품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전혀 그런게 아님을 알게되고 처절하게 후회했습니다.

나보다 한 살이 적었지만, 먼저 친구로 지내자며 악수를 청했고, 흔쾌히 받아 들여서 우리의 친구계약은 이루어 졌습니다. 안동이 고향인 친구는 부산에 혼자 자취를 했고, 나는 부지런히 친구집에 식량 러쉬를 다녔습니다. 원래 혼자 사는 먹고 살만한 형편의 남자 집에는 각종 간식거리가 박스 형태로 비축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붙어다니며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니꺼 내꺼 할것 없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우정을 키워 갔습니다. 나는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한번도 표를 사지 않고도, 개봉되는 모든 영화를 당당하게 볼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음식도 열에 아홉은 얻어 먹으며 더욱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친구는 말술을 마시지만 나는 전혀 마시지 못하기에 가끔있는 뒤처리는 항상 나의 몫이 됩니다. 나는 골초지만 친구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집에 재털이를 사두었던 녀석입니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 친구는 듣는 것을 좋아하기에 언제나 떠드는 쪽은 나였습니다. 둘 다 책을 좋아하지만 서로 선호하는 분야가 달라서, 친구는 무슨 무슨 인생이니 철학이니 하는 책을 즐기고 나는 장르 소설을 좋아합니다. 딱 두 권에서만 일치를 봤는데 그것은 그리스 人 조르바이문열의 선택 이었습니다.


한 번은 다른 친구에게 그 친구를 소개해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른 친구가 그 녀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짜 모떼께 생겼더라"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한 밤중에 자갈치 바닥을 고성방가하며 휘젓고 다녀도 아무도 말리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그 친구의 말을 빌자면 자신은 폭력을 싫어하고 순수를 사랑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한번도 폭력 비슷한 것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밤중에 마추치면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따금 나에게 반항 할때면 이 놈이 나를 죽이려는 거 아닌가 의심되기도 합니다.

5~6년 전에 경기가 나빠지자 그 친구는 다시 배를 타러 떠났습니다. 나이도 있고하니 원양어선이나 상선을 타지 않고 국내 소형어선만 타겠다고 했고, 우리는 절대적인 아쉬움 속에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번을 만났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졌는지 전화도 반년에 한번 정도 밖에 하지 않는 몹쓸 친구입니다. 가끔 생각나면 문자를 보내 줍니다. "살아있나?" 대답도 없습니다. 몇 년에 한번 만나도 우리 둘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잠깐 얼굴보고 씨익 웃고는 헤어지는게 전부입니다. 한겨울에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살짝 걱정이 되어 문자를 띄웁니다. "안 얼어 디졌나?" 며칠이 자나서 문자가 왔습니다. "니 죽기 전에는 안죽는다"

지금 우리집 냉장고에는 오징어가 가득차 있습니다. 며칠 전에 잘아는 선장님이 오징어 2박스를 집까지 갖다 주셨는데, 꽁꽁 언 오징어를 배따서 손질하고 말린다고 아내가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가 보내주는 오징어는 다릅니다. 그 추운 밤바다 한 가운데서 갑판에 쪼그리고 앉아 한마리 한마리를 손질하고, 바로 먹을 수 있게 예쁘게 다듬어서 보내 줍니다. 그 친구 얼굴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입니다. 어떤 때는 한마리씩 돌돌 말아서 손가락만한 투명 비닐에 따로 따로 담아 보내기도 합니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한마리씩 그대로 썰어 먹게끔 포장을 해 준 것입니다.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어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잘 받았다" 문자를 보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답장이 없습니다.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조르바처럼 살겠다며 결혼도 안했고, 나중에 돈벌면 모르타니아에 가서 나없는 세상에 살아보겠다는 꿈을 꾸는 친구입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평소 말대로 프랑스 아가씨 꼬셔서 모르타니아 물을 흐리고 있을게 분명합니다. 기다릴 필요도 없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해마다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눈꼽 만큼이지만 보고싶어 집니다. 딸들은 얼굴도 모르는 아빠 친구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끔 농담삼아 이야기 합니다. "혹시 나중에 아빠가 죽고나서 먹고살기 힘들면 찾아가라" "왜?" "응 아빠이름 대고 먹여살려 달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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