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간전쟁(星間戰爭) 그리고 AD 4100년 - 1편

성간전쟁(星間戰爭) 그리고 AD 4100년 - 2편에서 이어집니다.

며칠간의 교전 끝에 아령성인(亞鈴星人)들은 하나의 결정을 해야만 했다. 잃어버린 고대의 흔적이며 자신들의 문명 고리인 제 9행성을 파괴하지 않고 회수하기란 쉽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징적인 것일 뿐이므로 반드시 지켜야할 필요가 없었지만, 파괴하기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무시였다. 인류는 직접적인 전투에서는 결코 우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 아령성인들이 제 9행성을 은연중에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음도 간파했기에 지금껏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령성의 전투행성은 모든 시비를 무시하고 태양계 내부를 향해 발진했다. 그들의 행성과 달리 제 9행성은 태양궤도를 공전하고 있었기에 인류가 추진 장치를 일부 설치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궤도를 약간 수정할 정도의 출력밖에 낼 수 없었다. 아령성의 전투행성이 발진하는 방향을 보고 인류는 금방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그들을 따라 모든 전투력을 이동한다면 인류는 완벽한 멸종을 할 것이지만, 현재의 위치를 고수한다면 적어도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목성과 화성 궤도 사이에서 소행성들의 궤도를 인위적으로 교란시켜 방향을 틀어 가속시켰고, 지름 수십Km의 소행성들은 차례로 지구를 향해 돌진했다. 지구에도 일부의 방어병력이 있었지만 1만대의 아령성 전투기들의 보호를 받으며 다양한 방향에서 다른 지점을 향해 날아오는 모든 소행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연이서 충돌한 소행성들로 고대의 세 대륙은 불탔고, 이어지는 거대한 해일에 휩싸이며 모든 생명의 흔적이 쓸려내려 갔다. 이미 모든 방어막이 무너졌지만, 그 후에도 수년간 수십 개의 소행성은 지구와 화성과 달에까지 지속적으로 충돌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태양계 내에는 모든 문명의 흔적이 사라졌고, 더불어  생물군의 99.9%가 멸종되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나눠졌던 고대의 대륙은 하나의 초대륙(超大陸) 로디니아(Rodinia)로 거듭나는 원동력을 얻은 셈이었다.

인류는 이제 고향을 잃어버렸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거주하는 별은 이제 제 9행성뿐이었다. 다시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인류는 모든 병력 점검하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나 점차 커지는 전력의 격차로 이어진 몇 번의 전투에서 인류는 극심한 타격을 입었고, 이제는 행성 내부에 숨은 채 꼼짝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허무했다. 천년을 준비해온 전쟁의 결과는 너무나 일방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같이 행성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일부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1000광년을 날아와 전쟁을 할 정도의 집요한 종족이라면 태양계 전체를 파괴해서라도 최후의 한사람까지 없애려 할 것이 분명했다. 베가성으로 도망간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저들은 반드시 전 우주를 휘저으며 사냥을 즐길 것이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10억의 인류는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그들이 제 9행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점을 잘 이용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이 행성에 대한 파괴를 고려하고 있을 무렵 인류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그 증거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9억 명을 그들의 전투행성에 포로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제 9행성의 모든 방어막은 그들이 지시한 대로 스스로 해체하여 개방하였고, 이어서 그들에 이 파견한 집행자에 따라 모든 무장이 해제되었다.

아령성의 전투행성이 근접해왔다. 그들은 예상대로 포로로 예정된 9억의 인류가 탑승한 수천대의 셔틀을 향해 강력한 빔을 발사했고, 순식간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전투행성의 모든 해치(hatch)가 열리며 소형 전투기들이 쏟아져 나와 제 9행성의 내부로 진입해 잔여 인류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간악한 그들도 한 가지 실수한 것이 있었다. 설마 인류가 9억을 희생하면서까지 어떤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 못한 것이었다.

행성의 내부와 외부사이는 두께 500km가 넘는 지표가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막대한 양의 구세대 무기인 핵반응 무기의 자원을 이 지표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있었다. 그 양은 행성을 순식간에 조각낼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고, 최후의 수단인 만큼 그 폭발력을 증강하기 위한 첨단의 기술들이 적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전투행성은 확실한 범위 안에 들어왔고 모든 해치는 열려있었다.

정확한 계산을 토대로 순서대로 폭발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은 핵분열과 핵융합의 절묘한 상충작용을 하며 수백만도의 고열과 방사능 폭풍을 아령성의 전투행성으로 몰아갔고, 제 9행성과 마주한 전투행성의 지표를 초토화시키며 열려진 해치를 통해 내부로 몰아쳐 들어갔다. 너무나 강렬한 전자기파(Electronic Magnetic Pulse)는 내부의 모든 기기들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며 방어를 무력화시켰고, 고열은 그들 종족과 행성의 기본적인 구동력마저 무너뜨렸으며, 에너지와 전하량이 큰 방사선은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 직접 작용하며 그들의 DNA고리를 끊어버렸다. 서로의 완전한 종말이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일한 흔적이라고는 흉물스럽게 녹아내린 그들의 전투행성이었다. 내부로 통하는 모든 입구는 끓어오르는 지각에 의해 막혀 강력한 방사능만이 가득찬 상태였다. 행성 뒷편을 순회하며 소형 탐색기를 타고있던 극소수의 아령성인이 남아있었지만 그들도 자원의 공급이 없는 상태에서 갈 곳이란 없었다. 태양계의 거주가 가능한 모든 행성과 위성은 자신들 스스로가 파괴했기에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폭풍이 가라앉길 기다려 비교적 차가운 어두운 표면에 내려앉았지만 이미 손상받은 세포들은 그들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것인지 살아남은 모듈(module)이 보였다. 그것을 셋팅하며 저 멀리 여우자리(Vulpecula) 아령성운(亞鈴星雲) 어딘가에 남아있을 0.01%의 누군가에게 언제가 자신들의 신호가 도착하길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아령성의 전투행성은 사라진 제9행성의 궤도에 정확히 올라있었다. 성간전쟁(SW) 3000년. 그렇게 우주의 두 문명은 소멸되었다. 한때 생명이 번성했던 지구는 심해(深海)에 코아세르베이트보다 약간 더 진화한 단 한종류의 원시생물만이 살아남은 상태였고, 그로부터 4억 5천만년이 지나 캄브리아기(Cambrian Period)가 되었을 때에야 겨우 다세포 생물이 재탄생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저멀리 아령성운의 개조된 소행성 내부에 보존되고 있던 그들의 문명 샘플도, 주종족의 99.9%가 사라진 후에 수억년 동안 우주의 재난을 겪으며 종말에 가까운 위기를 맞았고, 까마득한 훗날에야 새로운 문명을 재건한다.

그리고 성간전쟁이 있었던 때로부터 10억년 후, 마침내 지구에는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고, 그들은 아무런 과거를 모른 채 우주를 향한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날 무렵, 그들은 그 동안 우주를 관찰하며 가장 큰 의문을 품었던 제 9행성을 향한 탐사를 시작했고, AD 2100년 유인 탐사선이 제 9행성에 도착해 정밀한 탐사를 벌인 결과, 내부가 텅 비어 있으며 그것이 인공적인 결과물임을 알고 우주에 대한 경이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태양이 영원히 닿지 않는 행성의 뒷면의 피라미드를 발굴중 특이한 신호가 발생하여 여우자리로 보내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2천년 후인 AD 4100 년.
인류는 1000광년 떨어진 곳에서 보낸 신호를 받는다.

-끝-


-에필로그
실제로 여우자리(Vulpecula)의 아령성운(亞鈴星雲)은 지구에서 1,360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으나 스토리의 구성과 수치 적용의 편의를 위해 1000 광년 거리로 환산했습니다. 만약 아광속 여행이 가능하다면 이런 성간전쟁(星間戰爭)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문명수준이 2천년 정도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침략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즉 아령성인이 지구보다 천년 발전한 상태에서 출발한다면 지구에 도착할 무렵 지구의 수준도 그들과 비슷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항행 중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 기술의 발전을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광속의 99.9%로 왔다면 그들은 단지 우주선 안에서 23년 밖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광속의 99.99%로 왔다면 겨우 14년의 시간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문명의 발전 속도가 비슷하다면 아광속 비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압도적인 문명차이가 없는 이상 그 전쟁은 교착 상태(膠着狀態)에 빠지게 됩니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100만개의 문명이 존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드레이크 방정식을 고안한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의 보수적인 주장을 따른다고 해도 우리 은하에는 1만개의 문명이 있으며, 계산상으로 우리 지구에서 1000광년 내에 한개 이상의 문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성간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읽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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