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여행을 했습니다. 처갓집이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관계로 종종 가는 편이지만, 애들이 방학이 아닌 시기에 가는 것은 애들이 아주 어려 뽈뽈 기어다녔을 때 이후 처음입니다. 요즘은 어떤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경우에는 학교에서도 결석처리를 하지않기 때문에 평일을 며칠 끼워서 일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큰 딸은 보름전부터 일정을 꼼꼼히 체크하는 저에게 하루라도 더 놀고싶다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숨기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빠른 출발과 늦은 귀가를 저에게 종용했습니다.
처갓집이 서귀포에 있는지라 도착한 날 저녁에는 살살 걸어서 천지연 폭포를 방문했지만, 너무 어두워서 사진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천지연폭포를 여러번 갔었지만 밤에 가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어두운 먼곳에서 들려오는 폭포소리는 색다른 느낌이었고, 10월임에도 무더운 제주였는데도 폭포와 가까워질수록 서늘해지더니 폭포아래에 이르렀을 때는 소름이 돋을 만큼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큰 애는 한살이 되기전까지 일년의 반을 서귀포에서 보냈는데, 하도 심하게 울어서 장모는 애를 업고 하루 세번 천지연폭포까지 2~3km를 왕복했다고 합니다. 뭐 그런말을 해줘도 큰 딸은 시큰둥합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서복은 이곳을 떠나면서 정방폭포의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글귀를 새겨 놓고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여기서 서귀포(西歸浦)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또는 서불과차(徐不過此)라고 세겼다고도 하는데 실제로는 세겨진 글은 찾지 못했습니다. 위의 사진에 붉은 글씨가 바로 서불과지(徐市過之)인 듯한데, 한자를 거의 모르는 관계로 읽기가 어렵습니다.
소암(素菴) 현중화(1907~1997)는 제주도에서 활동한 지방 작가 정도로 알려져 있는 것은 1950~ 60년대 국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79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근 20년 간 고향 제주를 떠나지 않고 자연과 술을 벗해 글씨만 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ㆍ중ㆍ일 현대 서예의 큰 흐름이 된 중국의 육조 해서를 일본에서 익혀 195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이룬 큰 작가입니다. 특히 말년에는 꼬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을 만큼 취필을 즐겼는데, 거침없이 붓을 달린 글씨가 가히 속세를 벗어난 듯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예컨대 송강 정철의 한글가사 <장진주사(將進酒辭)>, 도연명의 <음주> 시, 술이 모자란다는 뜻의 <주부족(酒不足)> 등의 글씨는 취선(醉仙)의 것입니다. (출처:젤마노님 블로그)
이중섭 거주지 옆에는 그를 기념하는 공원이 있고 그 위에는 이중섭미술관이 있습니다. 불운한 시대의 천재화가로 일컬어지는 대향 이중섭은 서귀포시에 거주하면서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이 고장 인심을 소재로 하여 서귀포의 환상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미술관 1층에는 이중섭의 작품과 생전에 썼던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등 여러 이름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국적인 느낌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사찰과 달리 이국적인 나무들이 즐비하고 정원 곳곳에는 밀감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정말 특별자치도이며, 한국속의 이국이라 불릴만 합니다.
며칠을 보내며 여기에 사진으로 남긴 곳 말고도 많은 곳을 다녔지만, 아주 일부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를 재대로 구경을 하려면 최소한 한 달은 잡아야 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연일 계속되는 다양한 축제와 행사들도 참여해보고 싶고, UNESCO 세계자연유산인 만장굴과 김녕사굴을 비롯한 여러개의 자연동굴도 가보지 못했으며, 갈때마다 생각만하는 한라산 등반을 못해본 것도 아쉽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끝이자 시작인 마라도와 하늘에서 보면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이름모를 아름다운 섬들과 영화 “시월애”, “인어공주” 를 촬영했던 서정적인 우도의 우도팔경인 낮과 밤(주간명월, 야항어범), 하늘과 땅(천진관산, 지두청사), 앞과 뒤(전포망대, 후해석벽), 동과 서(동안경굴, 서빈백사)도 오감으로 느껴보고 싶으며, 크고 작은 99개의 석봉이 성곽처럼 둘러쳐져 있다는 성산에서 경이로운 해돋이도 보고 싶습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그리고 여유있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제주를 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어느 한 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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