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는 해운대해수욕장을 비롯해서 광안리, 송정, 다대포, 송도, 일광 등 알려진 곳 말고도 제법 많은 수의 해수욕장이 있어서, 시내 웬만한 곳이라면 버스로 30분만 가도 넓은 백사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여름에 부산의 해수욕장에 잘 가지 않습니다.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해수욕장으로 굳이 피서를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늘 보는 바다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족끼리 가볍게 다녀오는 데는 해수욕장만큼 좋은 곳이 없습니다.

부산에 산다면 해수욕장에 갈 때, 특별히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아침에 식사를 하다가 '해수욕이나 갈까?'라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동의하면 그만입니다. '어디 갈까?' 광안리라는 딸아이의 답변 한마디로 그날 하루의 일정은 결정되어 버립니다.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돌아올까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친구도 같이 갈까?" 딸아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곧 전화를 합니다. 주섬 주섬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돗자리를 챙기고 챙 넓은 모자를 쓰면 준비는 끝이 납니다.

집에서 5분을 걸어나가서 10분을 기다리자 광안리로 가는 버스가 옵니다. 환승제도 덕분에 950원이면 부산 어느 곳이나 갈 수 있습니다. 20분 후에 광안리에 도착해서 5분을 걷자 바로 시원하게 펼쳐진 해변이 나타납니다. 태풍 모라꼿 소식 때문인지 비교적 한산합니다.



남천동, 광안동, 민락동에 걸쳐 있는 광안리해수욕장(廣安里海水浴場, Gwangalli Beach)은 폭 25m ~ 110m의 모래사장이 길이 1.4km 에 걸쳐 활모양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광안리해수욕장이란 이름은  조선시대의 동래군 남촌면 광안리라는 지명을 그대로 따서 부르는 것입니다. 남촌(南村) 앞 사장(沙場)을 남장(南場)이라 했는데 그 남장에는 넓은(廣) 모래언덕(岸)이 있어 廣岸이라 썼고, 현재는 광안의 岸을 덕명인 편안할 안(安)으로 고쳐 광안(廣安)이라 쓰고 있습니다.

광안리해수욕장은 이미 40여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름의 명소였습니다. 1978년 신문기사에는 어느 주말의 피서 인파가  해운대 50여만, 광안리 60여만, 송정 13만, 대천 6만, 경포대 3만 5천이라고 나옵니다. 그때도 광안리는 해운대와 더불어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지금과 비슷한 50~6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피서를 즐겼던 곳입니다.

30여 년 전에도 광안리에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횟집 등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십여 년 동안 잘 정비한 덕분에 무질서하던 시설들은 주변 풍경과 거슬리지 않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파제, 활어시장, 수변공원, 광안대교 등 특색 있는 명소들이 광안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부산 사람들이 광안리에 간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회를 먹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겨울바다가 보이는 곳에서의 약속 때문이고, 세 번째는 불꽃 축제를 보기 위해서 일겁니다. 그리고 1996년부터 개최된 바다축제와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전, 해수욕 등이 그 외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아무튼 광안리는 부산의 해수욕장 중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일단 모래사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발바닥에서 시작된 달콤한 열기는 이내 가슴을 들뜨게 하며 머리로 타고 올라 잡다한 생각을 모두 날려 버린 후에 '동심'이라는 오직 하나의 감정만을 남겨둡니다. 살살 날리는 모래는 발목을 간질이고, 한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사각사각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의 느낌이 좋습니다. 멀리서 한껏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의 소리와 비키니를 입은 예쁜 아가씨들, 소금기 머금은 바다 냄새가 밀려오면 어느 새 짭짤해지는 입안……. 모래를 딛는 순간 더위는 사라지고 오감은 기쁨에 들뜨기 시작합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그렇게 많은 인파는 없고, 가벼운 차림으로 여름을 즐기는 노부부와 연인들이 신발을 벗어 들고 사뿐 사뿐 모래사장을 지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파도을 반깁니다. 한 때 그렇게 쓰레기에 몸살을 앓던 광안리였지만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와 성숙해진 시민의식으로 이제는 작은 휴지조작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광안리해수욕장은 2008년 7월 1일부터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백사장 전 구역에서는 흡연을 할 수 없습니다. 덕분에 여기저기 담배꽁초가 모래속에 묻혀있는 흉물스러운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광안리에 밤이 찾아오면 이런 깨끗한 풍경은 훼손됩니다. 평소 나라와 민족과 개혁을 외치던 청년들은 자신들만의 음주 문화를 뽐내며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소란을 피우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양된 의식의 결과물만 잔뜩 쌓여 있습니다.



가족의 피서지로 광안리가 편한 이유 중에 하나는 편의 시설 때문입니다. 5천원이면 파라솔을 하루 종일 빌릴 수 있고, 튜브는 3천원이고 개인이 가져간 튜브가 있으면 공짜로 바람을 넣어 줍니다. 그리고 돗자리 가격은 임대가 아니라 판매가격입니다. 바가지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1977년 부산시에서 정한 파라솔 임대 가격은 시간당 250원이었는데 실제로는 시간당 1500원에서 2000원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콜라 한병이 150원, 육계장 한 그릇에 500원, 여관의 숙박료가 2200원이고, 관광호텔 특실이 9800원이던 것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바가지가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가지 요금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해운대해수욕장 등의 대부분 해수욕장에서 샤워시설 이용료를 받고 있지만, 광안리에서는 그것도 무료입니다. 샤워 요금이 한 사람당  천원이라고 해도 4명이면 4천원이나 됩니다. 이래서 광안리는 가족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안리의 물이 더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부산 관내의 7개 해수욕장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수질 검사를 실시한 보고서를 보면, 광안리는 해운대, 송정해수욕장에 이어서 세 번째로 좋은 수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3위라고 하지만 광안리해수욕장의 수질은 대장균군수(MPN :18)나 부유물질량(SS : 5.8), 용존산소량(DO : 8) 등에서 수치상 상수원수 1급수 정도로 물이 깨끗합니다.



바람이 심해서 파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모래사장에는 119와 안전요원들이 행여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를 쉼 없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애들을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물속에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넘어도 나올 생각을 않기에 억지로 밖에 데려 나와서 김밥을 먹이고, 쉬게 했습니다.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바다로 들어갔고, 다시 한 시간 동안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오후 세 시가 넘어서자 어린 꼬마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도 점심을 먹고 쉬던 중에 애들이 보채서 나온 모양입니다. 그래도 될 만큼 부산은 바다가 가깝습니다.



네 시가 거의 되자 애들을 억지로 달래서 해수욕을 마치게 했습니다. 집이 멀어서도 시간에 쫓겨서도 아닙니다. 너무 오래 두면 피부가 빨갛게 익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밤에 보니 딸애의 등에는 몇 가닥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왕복 버스비 : 5000원, 김밥 5줄 : 7000원, 파라솔 : 5000원, 튜브 : 3000원, 합계 : 20,000원!! 역시 광안리해수욕장은 부담없이 가서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혹시 가족끼리의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광안리로 놀러 가세요.

덧1) 아내와 저는 거의 파라솔 아래서 모래에 발만 담그고 졸았습니다. 애들이 노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더군요. 덧2) 광안리는 야경도 멋지지만 광안대교 위로 해가 떠오르는 일출도 장관입니다. 덧3) 만약 차를 가지고 왔고, 야경을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금련산(황련산)에 올라가 보세요. 부산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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