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씨앗이라 불리는 우주의 대운석군(大隕石群 )이 쏟아지고 천만년이 흘렀을 무렵 그들의 조상은 형태를 갖춘 무리를 이룰 수 있었다. 형태를 갖춘다는 것은 제약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물질을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퇴화성진화(退化性進化)를 의미하고 있었다. 아직도 끓고 있던 대지위에는 단순한 자연현상과 다르게 의지로 움직이는 흐름이 생겼는데, 형태를 갖추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변이가 자유롭지 못한 액체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로부터 백만년이 지나지 않아, 또 한번의 운석군이 대지를 화려하게 불태웠고, 그들의 조상은 열원(熱源)을 근원으로 하는 대진화를 맞이하게 있었다. 스스로 자유로운 변이가 가능했으며, 대지의 열을 흡수하여 축적하는 기관을 갖추게 되었다. 다시 천만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집단의식체에서 서서히 개별적인 의식을 지닌 개체(個體)로 분화해 갔으며, 각각의 개체기억을 집단의식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본능에 따라 활동하는 원시적인 생명형태일 뿐이었다.

따지고보면 그들은 불멸의 존재였다. 몇천만년을 이은 진화과장이 고스란히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었으며, 흡수한 열원과 외부물질로 끊임없이 몸체를 재구성하기 때문에, 죽는다는 개념자체가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러한 영원성이 오히려 그들의 생존을 방해하고 있었다. 영겁의 기억과 의식을 담기 위해 그들의 몸체는 계속해서 거대해져야 했고, 그에따라 동일한 개체를 복제하는 분화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했다. 점차 그들의 행성이 식어가면서 그들도 자연에 순응하는 선택이 이루어졌다. 부족한 열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불완전한 복제가 되었으나, 그 불완전한 신개체는 조금 더 활동적이었고, 불완전한 기억의 전이로 인해 발생한 미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생각하는 존재가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과 백만년이 지나지 않아 1억년이 넘는 세월보다 더욱 급박한 진화와 종의 분화가 일어났으며, 마침내 지금의 그들이 탄생되었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진 대지위는 오직 그들만이 살아남았다. 거대했던 그들의 조상은 이미 오래전에 땅이 식으며 사라졌고, 파생되었던 몇몇 종들은 부족한 열원으로 인해 새로운 물질을 이용한 분화가 아닌 스스로 몸체를 여러 개체로 나누는 분화해야했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 크기는 작아지고 섬세해졌다. 그리고 지금의 그들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자체분화가 일어나지 않고도 개체분화가 가능할 만큼, 진화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제 본체의 키는 불과 10M가 되지않았고, 원시조상처럼 자유자재로 액화(液化)할 정도는 아니지만 형태와 구성의 변화능력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몸체가 적어진 만큼 필요로하는 열원도 줄었고, 한편으로는 열원을 축적하는 내부 기관에 발달해 있었다. 그리고 사고능력의 향상으로 자연히 몸체속에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이 발달해나갔고, 사물을 인지하는 감각도 발전했다. 

자신들의 조상이 단지 열과, 빛과, 위치에 대한 감각만 가졌던것에 비해, 그들은 전자기파와  방사선과 음파와 중력파까지 인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무한활동체에서 유한한 활동체로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개체화된 의식이 다양한 욕구에 따라 급격한 의식발달과 신체변화를 이루었지만, 생존과 유지만을 목적했던 원시거대의식에 비해 그들이 생존에 소비하는 의식은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유한한 생명은 새로운 의식(意識) 즉 자아(自我)에 대한 의문의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만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놀라운 문명을 이루었다. 행성의 곳곳에는 그들이 거주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들의 의식은 점차, 차가워진 대지로부터 우주로 향하게 되었다. 완전히 식은 행성의 곳곳은 진화를 거듭한 그들이 생존하기에도 부적합한 상태였다. 수십 Km로 두꺼워진 지각을 파내려가 지하의 열원을 끌어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행성내부의 활동도 약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몇만년이 지나기전에 한낮의 표면온도가 100도도 되지않을 만큼 추운별이 될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들의 생존욕구는 문명발달을 더욱 자극하게되었고 그 발전한 문명을 바탕으로 우주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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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중력파를 감지할 수 있었기에, 거대행성과 태양과 위성의 기조력(起潮力)을 정확히 계산하고, 행성의 중력흐름이 빠져나가는 열린 공간을 교묘히 이용하여 우주로 나갔다. 그들이 가장 먼저 눈을 돌린곳은 당연히 그들과 가장 가까운 행성이었다. 계산상으로 중력이 약 2배정도이지만, 그건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그곳 역시 너무 차갑다는 것이 문제였다. 현재는 그들의 생존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역시 오래지않아 표면온도가 100도 이하로 내려갈것이 뻔했다. 그들의 평균 생존연령이 1만년임을 기준한다면 몇세대가 지나지 않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행성은 그들이 생존하기에 너무 뜨거운 상태였다. 그들의 조상이야 과거 천도가 넘는 행성에서 탄생했다지만 현재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더욱 문제가 되는것은 빛이었다. 몇억년이 지나지 않으면 표면온도는 500도 정도로 내려간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운 관계로 빛에 약한 그들이 거주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행성의 자체자기력이 약한데다가 태양풍이 너무 강렬해서 그들의 변이의 주된 속성(屬性)인 자화(磁化)를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자화를 간섭받게되면 그들은 기억의 전이가 불가능하며, 변이를 통해 몸체외부를 변화시켜 산화(酸化)를 막아야만 하는 그들에게 불안정한 변이는 곧 생존자체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랜 검토끝에 행성개조를 계획했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두 행성의 상태와 변화를 관찰하고, 개조방법을 연구했고, 개조를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년을 기간으로하는 혜성충돌(彗星衝突)이라는 이름의 일차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소리를 이용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그대로 전이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였는데, 의사(意思)에는 그들이 감지하는 모든 파장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단히 사실적인 전달이 가능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성적(性的)인 구분이 없으므로 그나 그녀라고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자신의 기억일부를 전이한 개체를 복제하거나, 두 개체가 하나로 다시 합체해 기억을 한쪽에 전해주고 한 개체는 의식이 소멸하는 과정을 통해 인구수를 적절히 조절해왔다. 아직도 원시적 공동기억의 변형된 형태를 일부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혜성충돌계획(彗星衝突計劃)도 어느 한 개체의 결정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공동의식이 완성한 계획이었다. 계획의 세세한 부분과 각자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공유의식화된 상태였기에 혜성충돌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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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를 떠도는 17,931개의 혜성의 궤도를 정확히 계산해놓았기에, 그들이 선택한 테이아(Theia)의 궤도를 예측해서 약간의 변화를 주고, 0.1도 정도의 각도를 트는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비록 그들의 위성 세개중 한개를 희생해야하고, 데이모스(Deimos)에도 피해가 있을 수 있지만, 계획이 차질없이 완성된다면 그들의 행성은 언젠가는 버려야할 땅이었다. 테이아(Theia)는 이심율이 상당히 큰 포물선궤도를 지닌 장주기혜성으로, 질량은 그들 행성의 80%나 되어서 혜성이라기 보다는 행성에 가까운 순행혜성이었다.

그들의 계산대로 테이아는 태양계로 진입후에 5번째 행성의 중력영향으로 궤도경사가 변했다. 얼마 후 테이아는 제5행성의 중력섭동(重力攝動)으로 만들어진 소행성대 사이의 간극을 지났다. 아직도 그 불규칙성으로 완전히 계산되지 못한 소혹성과의 충돌없이 소행성대를 벗어나자 그들은 안도하며, 오래전부터 준비해두었던 다음단계를 진행했다. 그들 행성에서 가장 먼 궤도를 지닌 위성에는 거대한 작업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100여년전부터 직경이 20km인 이 위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테이아와의 완벽한 궤도충돌 준비해 두고 있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지만 이번에 실패한다면 다시 이러한 계획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에 계획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들이 찾은 수많은 혜성중에서 충분한 질량을 지닌채, 자신들의 행성에 이만큼 가깝게 접근할 혜성은 앞으로 몇만년 내에는 없다는 계산이 나왔던 것이다. 더구나 혜성의 상당수가 제5혹성의 중력으로 소행성화 하거나 충돌했고, 질량이 큰 일부는 추락은 모면했지만 제5행성의 위성으로 포획되어 버리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는 태양계를 영원히 벗어나버리기도 했었기에, 테이아같은 혜성이 다시 등장해줄 확률은 전혀없는 것이었다.

제2행성과 제3행성간의 회합주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는 소규모지만 혜성충돌을 성공시키며 많은 데이타를 확보한 상태지만, 지금과 그 규모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만약 잘못되면 행성충돌만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의 행성자체가 불덩이로 변하거나 궤도이탈이라는 참변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들의 계획은 테이아의 질량이 계산과 달리 약간의 오차가 있었지만, 그 약간의 질량차이까지 대비해 두었던 덕분에 성공했다. 세번째 위성은 계산된 표면으로 테이아의 측면과 충돌했고, 조각난 거대한 파편의 일부가 그들의 행성으로  쏟아졌지만, 궤도를 변경해 두었던 데이모스(Deimos)와 다시 충돌하며 그들 행성에는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리고 테이아(Theia)는 그들의 계산대로 0.1도 틀어지며 시속 20만Km로 제3행성의 궤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충실히 속도를 더해갔다.

마침내 테이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3행성의 북반부에 충돌했다. 그 거대한 충돌의 여파로 제3행성은 우주의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테이아의 충돌은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어 원시행성을 뜨겁게 가열했고, 순식간에 기화된 암석가스는 우주를 향해 50만km까지 치솟으며 회오리쳤다. 행성이 원래 지녔던 지름 70km의 위성에, 그들이 설치한 중력장치는 충격파를 감지함과 동시에 작동하여, 우주를 향해 뻗어나가는 암석가스와 휘발성대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충돌하며 탈출한 조각들을 서로 회수하려는 행성과 위성의 싸움이 본격화되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행성은 급증한 질량으로 이전보다 강력한 힘으로 위성을 지배할 수 있었다.

행성은 충돌과 위성과의 지배력 다툼과정에서 심한 세차운동을 하며 그들이 바라던대로 자신들의 행성과 비슷한 23도가량의 자전축으로 기울었고, 내부는 기조력에 의해 더욱 뜨거운 열원을 만들어내며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수백km 깊이의 마그마의 바다
에서는 철과 규소가 중력에 의해 분리되어 행성중심으로 쏠려내려가며, 중력에너지를 열에너지 형태로 방출하고 있었다.  원시 태양의 충만했던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열이 다한 시점에서 신선한 열원을 공급받은 행성은 제2의 탄생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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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라는게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가능하지는 않군요. 그리 길지않게 2편으로 나누어 쓰려고 하는데 대단히 어렵네요. 이야기를 나열하는것과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의 차이도 있고, 약간이라도 흥미를 유발해야한다는 점도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에 불구하고도 한번 써 봅니다.

-그들이 눈을 뜨면 - 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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