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 외계문명과의 충돌이나 외계 침공에서는 우리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침략을 당했을 경우의 이유와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며, 침략은 대부분 멸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태초 이후로 우주에는 천억 종이 넘는 문명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져갔으나 그 중에서 침략을 비롯한 종족이나 행성간의 다툼으로 절멸한 종족보다는 성숙되지 못한 가치관에 의하여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은 문명과 권태에 의한 상잔으로 멸망한 문명이 더 많습니다.
또한 기술적인 성장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한 천재지변에 의하여 멸망의 길을 걸은 행성이 그 보다 많기 때문에 우주는 원래부터 살벌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외계 문명에게 침략을 당하거나, 우리 스스로의 상잔에 의한 자멸이기 보다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우주의 재난에 의한 것일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우주는 생명을 잉태하는 것에는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고 있으므로, 위험의 틈바구니에서 운 좋게 태어나고 성장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우주의 보호와 양육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여러 차례의 재난을 당하고도 잘 살아남으며 다른 행성들에 비하여 비교적 수월한 여건 속에서 성장했기에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는 우주를 경외하면서도 아름답게 바라보는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우주에 대한 시각은 생명체가 복잡하게 진화하고 문명으로 발전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아, 개체와 종족 간의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보호하고 지키려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할 때 선(善)이라는 것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공존과 화합이고 배려와 희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끊임없이 닥치는 위험한 환경으로 인하여 쉴 새 없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대립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진화한 문명이 있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선(善)이란 절대생존일 것입니다. 나 외의 모든 개체를 소멸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선이자 미덕이라는 가치관을 지녔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종족보존을 위한 노력을 해왔으나, 우리의 생존방식은 개체보다는 종이라는 좀 더 대의적인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절대적인 개개인의 이기주의만 팽배한 사회는 발전되기가 어렵고 유지하는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강자제일이라는 절대원칙을 앞세운다면 소수의 강자가 무리를 원활하게 통솔하며 조직을 갖춰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주에는 개인의 무한 자유를 허용하는 지구식 종족보다는 무리 전체가 소수에게 집단적인 통제를 받는 병정개미식 사회가 더 많으며, 우주여행을 하는 문명의 90% 이상은 우리와 다른 가치관을 선으로 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문명의 충돌은 다른 문화와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계의 이질적인 문명과 조우할 경우, 우리는 우리 기준의 선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공격적인 본성을 지녔다는 자체만으로도 경계를 하고 배타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들 기준의 선에 비쳐봤을 때 우리의 본성이 자신들에게 유입될 경우 자신들이 나약해져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도태될지도 모르므로 우리의 문명을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주의 극히 일부 문명은 과도기를 거치며 가치관을 성숙시켜서 수억 년 진화의 과정에서 습득한 본능적인 요소의 대부분을 제거하는데 성공하고 진정한 선지자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가 철저하게 고립된 변방에서 스스로와 경쟁하며 자멸을 피한 경우거나, 은하의 중심부라도 마침 주변에 아무런 문명이 태동하지 않았던 시기에 절묘하게 나타난 행운아들일 뿐입니다. 또한 선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어도 후차적으로 나타난 다른 문명들의 조우에서 쓰라린 경험들을 하면서, 가치관이라는 것이 교육과 인도만으로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족은 태어날 때 이미 쌀인지 피인지 결정이 나있을 것이라는 가정마저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천성이란 바뀌지 않고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행성에서 수십억 년 동안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진화했던 생물들에게는 공통적인 속성이 각인되어 있는데, 우리 지구와 아무리 비슷한 환경을 지닌 행성이라고 해도 그들의 가치관이 우리와 닮아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합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어떤 종이 어떻게 살아남고 선택되었는가에 따라서 후대의 진화방향이 결정이 되고 후대의 선의 기준이 달라지는데, 쌍둥이 지구가 있어서 똑같은 환경이 재현되어도 동일한 종족이 문명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것이고, 행여 그렇다 쳐도 같은 가치관을 지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의 충돌입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를 돌이켜봐도 새로운 문명을 발견하면 두 문명은 융화하기 보다는 충돌하여 흡수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외계의 문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고, 발견했다고 해도 서로 직접적인 접촉은 불가능하지만, 전파통신을 통해서 문명의 이질성을 확인하는 순간 서로는 적극적인 대응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출발하고 먼저 발전하여 기술력을 확보하는 쪽이 승리하게 되므로 외계 문명의 존재 확인은 곧 우주전쟁의 서막이랄 수 있습니다.
다른 문명이 충돌하게 되면 멸망하는 쪽은 거의가 침략을 당한 문명입니다. 침략을 했다는 것은 확실한 준비와 비교를 통해 승리를 자신했기 때문이지만 가끔 침략과 전투를 일상과 유희처럼 즐기는 종족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스스로 일어난 문명이 아니라 주변 문명의 간섭에 의하여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불균형적인 발전을 한 경우이기에 선지적인 존재가 주는 문화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쉽게 얻은 기술을 충동적으로 과시하는 위험한 기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날 우리와 가까운 근처의 나선팔에서 번성하고 있는 외계 종족을 발견하게 된다면, 불과 수백광년 거리는 공간적인 개념보다는 기술력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수백년 전에 발신했던 방송전파나 교신을 분석하여 당시의 수준과 현재 발전 상태를 가늠할 것이고, 당시의 우리와 비교하여 현재까지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고, 상호 발견할 경우의 급격하게 달라질 변수까지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대에게 우리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최대한 많이 그리고 빨리 집중적으로 기술발전에 투자하여 충돌에 대비할 것입니다.
비슷한 기술력이라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때 한 쪽이 기습을 하면 준비하지 못한 쪽이 불리하게 됩니다. 지구를 예로 들어봐도 들키지 않고 발사한 핵무기를 적국에 가깝게 접근 시켰다면 동일한 기술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방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주전쟁에서도 충돌이 확실한 문명이라면 상대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기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또한 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다면 적대적 문명으로 발사한 충분한 질량을 가진 입자를 특별한 중력장에 접근시키며 가속시킬 수백년의 시간도 얻을 수 있고, 적대 문명이 방어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므로 쉽게 복속이나 절멸시킬 수 있게 됩니다.
어쨌든 우주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의 가치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서로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범우주통신망인 GWW(Galaxy Wide Web)가 완성되어 특정 행성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악성댓글이 달린다면 아이피 추적을 한 후에 악플러의 행성을 향한 우주적 규모의 현피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군요.
결론적으로 우주전쟁이란 종족이 지닌 고유한 가치관을 거스르는 행위에 의해서 시작되는데, 그 행위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지닌 두 종족이 만나게 되는 순간입니다. 우주에서 평화롭게 살고싶다면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만나려고 하지 않고, 아예 찾지도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을 담은 수많은 도전장을 우주에 유포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할 일은 정해졌습니다.
갑자기 멸망하지 않으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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