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문명이 우리를 만나거나 교류하기 위하여 방문을 하여도, 그들의 본래 목적과 달리 처음 우리가 그들과의 만남을 가지거나 그 과정에서 받게되는 데미지는 단순한 문명과 가치관의 충돌을 뛰어넘어 침략(侵略)과 침공(侵攻)에 준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가치관과 관습을 지닌 생소한 형태의 존재들과의 첫 만남이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사회적이나 종교적,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거대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물론 아주 가까운 행성에서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였는데, 두 문명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철학적인 성숙도를 지녔다면 아무래도 조심성이 떨어지는 위험한 접근과 서로가 잔뜩 경계한 상태의 불안한 접촉을 하게 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전쟁과 멸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하게 성숙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찾아내었을 경우라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미개한 문명이 자라온 역사와 진화과정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그들에게 큰 충격이 가지 않도록 자연스런 만남을 유도해 낼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로 인하여 비록 미개하지만 문명이 지닌 고유한 문화와 가치관이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고, 먼 미래의 우주 생활에 적합하도록 관념적인 변화와 심리적인 평정, 도덕적인 가치관의 중용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러한 문명 개선의 과정은 수백년에서 수천년의 기나긴 시간을 요구하는 지루한 작업이 될 수도 있으나, '우주에는 오직 나 뿐'이라는 외로움 속에서 자라나서 고집스럽고 거친 성질을 지닌 문명이 스스로 아무리 성숙한 가치관을 얻어서 자멸하지 않고 문명을 발달시킨다고 해도, 언젠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산재한 우주 문명들과의 만남이 시작되면, 결코 문명과 문화 사이의 충격을 견디지 못해 우주의 문제아가 되거나 부랑아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므로, 문명 개선 작업은 아무리 긴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필요한 필수 과정인 것입니다. 문명이 더 발전한 경우일수록 그 과정은 비례적으로 짧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가끔 비정상적일 만큼 철학적이고 지적인 문명도 있으며, 반대로 야만적이지만 용케 과학적인 고도의 성장을 이룩한 문명도 있습니다.
문명을 개선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우수한 의식을 지닌 무리의 숫자를 늘려서 그러한 집단의 세력을 우세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수억 년 이상의 진화 과정에서 각인된 개개인의 성품을 조작하는 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 기간만큼의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기에 후천적인 집단의식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도 가장 확실한 효과를 지는 문명 개선 전략은 종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구적인 의미인데, 실제 우주에는 종교라는 의미를 모르거나 종교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문명이 더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종교라기 보다는 사상적인 혹은 도덕적인 지도자 또는 선지자의 주장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우주적인 해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미가 어떻든 종교는 같은 사상을 믿고, 같은 도덕적인 가치를 중시하고, 같은 기준의 선(善)을 지니고 있는 개체들이 무리를 이룬 집단이며, 그 집단은 스스로의 가치 증명을 위해서 무리의 숫자를 늘리는 일에 매진하게 됩니다. 또 우리가 종교라고 여기지 않아도 동일한 사상을 옳다고 믿는 무리들은 서로 규합하여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나아가서 국가를 이루기도 하며 자신들의 사상이 옳은 것을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봐도 종교와 철학과 사상은 과학을 뛰어넘어 항상 대립과 침략과 정복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발전과 융화와 포용의 초석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에는 앞선 기술보다는 앞선 사상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그 사상에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무리 사이에는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긴 안목으로 보면 늘 그 결과는 가치관의 성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치관이 익어갈 무렵에는 어김없이 그 수준에서 수용 가능한 기술적인 발전이 이어졌으며, 종종 무리한 기술이 우연히 발견되기라도 하면 반드시 문제가 되어 역사를 피로 물들이고, 인류는 쓰라린 경험을 돌아보며 그가 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세기며, 그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하여 한 단계 더 정신적인 성장을 하였습니다.
문명 개선 프로젝트의 기간은 우주의 모든 이질적 문명을 무리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가치관을 지닐 때까지라는 다소 애매하지만 무한적인 개념을 지녔으며, 목적은 역시 무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그 방법은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켜 '혼자'가 아님을 인식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은 전술적 측면에서 문명마다 차이가 있는데, 선충격 후해소를 지향하는 경우와 지구처럼 선해소 후충격적인 경우가 있으며, 그 외에 이미 관여 이전에 문명 간의 충돌이 있었거나, 스스로 다른 문명을 찾아 내었거나, 태생적으로 우주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지닌 문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노출과 교류를 하여 최소한의 시간 만으로 그들을 진정한 우주인이 되게끔 이끌고 있습니다.
인류는 -연방의 외계문화 연구 평가서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40억년을 경쟁해 온 기질의 유전자와 집단 이익을 우선시 하는 선(善)의 가치관을 지녔지만, 주변에 아무런 문명이 없는 우주의 변방에서 다른 문명의 간섭없이 외톨이로 자생한 문명의 구조 때문인지, 적당한 공격적인 기질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유연한 사고를 가진 다소 독특한 형태의 심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강한 충격이 아니라면 큰 반발없이 새로운 것을 수용해 낼 수 있는 측면이 있음에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경계하는 배타심을 나타내지만, 때로는 놀라우리 만치 새로운 철학과 체제에 잘 적응하며 쉽게 익숙해지는 노련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즉 처음부터 보수성을 철저히 깨어버리는 초강수를 둘 경우, 완전한 실패나 완벽한 성공이라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지만, 최소한의 실패 확률을 전제로 하는 문명 개선 작업은 일정한 기준 이하의 성공률이 예상될 경우, 아예 시도를 포기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기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원만한 성공을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이미 2만 여 년 전부터 은밀하게 관리를 받고 있으며, 5천년 사이에는 철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온유한 개선 작업이 이루어 졌으며, 최근 백년 동안은 통신 제어라는 기술을 통해 적극적인 제한 설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인에서 한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동안 고대 인류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여기게 하므로, 미지의 세계인 하늘을 동경하게 하는 선인사상을 태동시켰고, 자아를 초월하므로 탈속하고 해탈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우주의 본질이자 공통언어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가르침을 펼쳤고, 기술과 과학적 이론의 제한을 일시적으로 해제하여 급격한 발전에 따른 정신적 폐단과 폐해 등의 유해성을 경험하게 하여, 서서히 인류가 지닌 모난 부분을 연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류가 지닌 궁극적인 문제점인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유전자에 그대로 각인된 듯, 최악의 경우 같이죽자는 식으로 공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구를 향하는 모든 인위적인 전파를 제어하고 있고, 우주에서 발산되는 외계 문명의 모든 흔적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반경 1광년 이내에서는 완전히 중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일부에서는 수백년 이내에 인류가 급작스럽게 발전한 것이 외부의 간섭이나 도움에 의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지니고 있으나, 5천년 동안 외부 문명에서는 철학적인 기반만 마련해 주었을 뿐이고, 최근에는 오히려 너무나 급격히 발전하는 인류의 기술을 제어하는데 고심하고 있습니다. 매우 도덕적인 그들이지만 대의적 차원에서의 견제에는 민감한 편이라, 너무 자주 등장하는 소위 천재들을 가려내어 그들이 적정한 천재만 되도록 만드는 은밀하고 신중한 작업을 할 정도입니다. 그들이 그만큼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 같은 경우는 시대에 천년 이상을 앞서며 시간과 차원의 비밀에 근접해버렸고, 일부의 천재는 그들의 존재나 스스로의 처지를 인지하고 성급하게 그것을 공론화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여론을 조작하므로 허황된 이야기로 무마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제어의 강도를 느슨하게 하여 인류가 자멸 직전까지 이르도록 하므로 편협한 발전의 결과에 대한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결국 초거대 지성집단에 의해 계획된 문명 개선 작업은 문명 자체의 개선을 통한 문명 평준화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문명을 이루는 주체의 의식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이며, 그 내면에는 우주의 모든 종족을 보호하고 사랑하려는 거룩한 우주애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언젠가 있을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문명 충돌 이후에 오는 충격을 감당해 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한, 이 길고 지루한 작업은 앞으로도 천년만년 더 진행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와 만나게 될, 또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외계 문명이 충분히 도덕적이고, 진정한 우주애를 지니고 있는 종족일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마치 우리 인류처럼- 난폭하고 공격적이며, 이질적인 것과 미지의 것에 대하여 이해하기 보다는 대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적 가치관을 지닌 종족이라면, 서로 발견하는 순간이 우주 전쟁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몇 달 전에 썼던 외계 침공이라는 글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우리의 문명이 아니라 행성 자체를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한다면 현재의 우리로서는 어떤 대항이나 탈출도 불가능하며 구원의 길 자체가 전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수십 광년 내의 가까운 거리에 있고, 우주추진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변방에 위치한 행성은 어떤 전략적이나 자원적인 가치가 없으나, 적에게 넘어갔을 경우 불편한 요소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면, 대행성용 무기를 이용해 지구 자체를 분해해 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가 개미집을 뒤집고 불을 지른 행위처럼 침략이라기보다는 소거에 해당하므로, 우리 인류는 우주 역사 어느 곳에서 기록되지 못한 채, 또 아무런 동정조차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인류의 가치관이 그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만족시켰고, 지구와의 만남을 위한 승인 요구서가 연방 의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인류가 그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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