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년 전에 그들이 이 행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지나쳐야할 워프(warp) 경로 근처에 있던 두개의 중성자별이 계산보다 너무 일찍 충돌하면서 감마선 버스트(Gamma-ray burst)가 발생했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들의 항로는 급격히 일그러지면서 탐사선이 원래 목적지와 상당히 동떨어진 은하의 외단 근처로 밀려나 버렸다. 그러나 그일은 그들에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주었다.



은하만큼이나 밝아진 불꽃이 일렁이는 우주의 경이로운 쇼가 지나가고, 피신했던 얼음 가스행성(ice giants)에서 벗어나 현재 위치와 목적지로 향하는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려는 순간,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 같던 탐사선의 삼색 경고등이 반짝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를 떠돌아다닌 2만년 동안 그들은 10만개의 항성과 그에 딸린 50만개가 넘는 행성들을 탐사했지만, 한 번도 저 경고등이 켜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생소하면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경고등은 곧 주변 공간에 짧고 선명한 선들을 그려내면서 투명한 영상을 만들어 갔는데, 그것은 이곳 항성과 주변을 도는 여러 개의 행성들의 거리와 크기를 나타내고 있었고, 그 사이에 가스행성 옆에서 작게 반짝이는 탐사선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탐사선 근처에 있던 가스행성은 10여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행성을 비롯한 위성 모두는 투명한 회색으로만 표시되어 있었고, 그보다 안쪽 궤도를 그리는 여러 행성들 역시 크기가 제각각이었으나 모두 회색의 상태로 표시되고 있었다. 잠시후 홀로그램의 탐사선에서 붉은 선이 뻗어 나오더니 불과 40억Km 정도 떨어진 하나의 행성까지 이어지면서, 그 경로와 항행 시간 등의 정보를 표시하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그 도착지점의 행성은 옅은 회색에서 찬란한 녹색으로 바뀌어갔고, 다시 그 행성 부분이 확대되면서 행성에 관한 자세한 정보들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더 상세한 정보를 분석해 내기에는 행성과의 거리가 먼 편이었으나, 현재까지 분석된 정보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바로 그 행성임을 알 수 있었다.

탐색기가 가리키는 행성은 지금도 Great oxidation event(거대 산성화 사건)가 한창 일어나는 중이었다. 보통 우주 공간에 흩어져있던 거대한 규모의 분자 구름의 일부분이 중력 붕괴를 일으키면, 붕괴된 질량의 대부분이 중앙부에 집중되며 항성을 형성하는데, 이때 집중되지 않은 나머지 물질은 얇은 원반 모양의 원시 행성계 원반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항성과 행성계에서 행성, 위성, 소행성 등에는 보통 60여 가지의 광물종만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후에 행성 내부의 화산 폭발과 물의 작용 등이 발생한다면 광물 종은 수백 종까지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우주에서는 인공적인 합성이 아닐 경우 광물종의 수는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매우 드물지만 수천종이 넘는 광물을 보유하고 있는 행성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투자해서 우주를 탐색하고 다닌 것도 바로 이와 같은 행성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 행성은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고, 모든 우주의 탐험가들이 발견하기를 염원하는 자원의 보고요, 같은 무게의 생명이며, 사막 속의 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행성 곳곳으로 보내진 소형 탐사체들이 채취한 샘플을 분석하여 표시하고 있는 메인 탐색기는 지금 우주에 흔하디흔하게 널린 광물이 아닌 4000여종의 복잡한 광물들을 유사 광물끼리 분류하는 중이었고, 다른 화면에서는 희소성 즉 자원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목록과 추정되는 매장량 등이 표시되고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수치였다. 은하계 전체를 통틀어서 겨우 몇 곳에서만 발견되었다는 광물들, 너무 희귀해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광물들이 무려 100여 종이나 발견되었고, 추정되는 매장량만도 지금까지 발견된 전 은하계의 매장량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건 행운이 아니라 신의 축복이었다.

그들이 우주의 누비며 자신들이 바라는 자원을 지닌 행성을 탐색하는 주된 방식은 대기를 지닌 행성과 그 대기 중에 자유산소(O₂)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대기가 존재했었으나 사라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보유한 정밀한 탐사기는 대상이 되는 행성에 천억km 정도까지만 근접한다면, 지표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대기와 물의 흔적뿐만 아니라 주요 광물의 분포에 대한 정보까지 탐색할 수 있으나, 1조개가 넘는 행성들을 일일이 근접 탐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한 구역을 설정해 놓고, 원거리에서 한 번에 많은 수의 행성들을 훑어 나가며 기본적인 정보만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 탐사 형태였다. 그런 후에는 소형 자동 탐사선을 하나 그 지역에 남겨놓아 그로 하여금 근접 탐사를 하도록 설정하고는 다른 지역을 향해 다시 탐사를 떠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보통 한 지역을 탐사하는데 소모되는 시간은 대략 천년 정도인데, 우주 곳곳을 누비며 자원을 탐사하는 무리들이 셀 수없이 많지만, 몇 만 년 내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주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 생물들 중에서 이 행성에서처럼 기본 광물을 오랜 세월동안 변화시켜 새로운 광물종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생명체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십만 개의 행성에서 십만 종의 생명체가 탄생할 경우, 9만 9천 9백 9십 9종의 생명체는 현재의 그들과 비슷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무기성 생물이 되는데, 간혹 아주 드물게 유기성 생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유기성 생물은 무기성 생물에 비해 행성의 환경이나 우주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편이라서, 생명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작은 재난만으로도 모조리 몰살해 버리거나,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해봐야 기껏 1~5억년 정도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또한 일반적인 우주 생물(무기성 생물)이 가변성이 적은 조직구조 덕분에 최소 10만년 이상의 수명을 가지는데 비해서, 유기성 생물은 엄청나게 짧은 수초~수년을 사는 게 고작이므로, 시간의 인지력부터가 다른 그들이 유기성 생물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신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런 유기성 물질이 우주의 축복으로 절멸을 피해 수십억 년을 진화하게 되면, 개체가 다양해지다가 더 복잡한 다세포 상태로 변하면서, 다시 새로운 생체 메커니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항성에서 발출되는 빛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무기물을 흡수하여 유기물로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광물이 조합되고, 또 자유산소가 방출되어 금속산화물을 출현시키며, 다시 그것에 의한 희귀한 광물 종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이 행성을 발견했을 무렵에 행성 표면의 상당 부분은 바다로 덮여있었는데, 그 바다에는 최소 15억년 이상을 번성했을 광합성 생물들이 바글거렸고, 조그마한 유기생물들의 생명활동에 의하여 대기와 바다에는 자유산소가 넘칠 만큼 풍부한 상태였다. 해양 깊은 곳에서는 미생물에 의한 황화물(sulfides)의 환원이 이뤄졌고, 오랜 세월의 번성을 반영하듯 그것들의 신진대사를 통해 생긴 점토 광물도 풍부했으며, 행성 전역에서는 거대한 규모의 산성화 즉 Great oxidation event가 벌어진 흔적으로, 다른 행성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적철석, 자철석, 티탄철석 등의 금속산화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유기물의 진화는 곧 Mineral Evolution(광물의 진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탐사가 더 깊고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어 행성의 전반적인 정보가 밝혀지면서 행성의 생성시기가 35억 년 전이며, 유기생물이 나타난 것은 34억 년 전, 그러니까 이 유기 생물들은 무려 34억년 동안이나 멸종하지 않았으며, 나아가서 행성과 우주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와 번성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아낼 수 있었다. 거기다가 은하의 몇 몇 생성에서 겨우 화석 상태로만 발견되었던 다세포 유기생물도 비록 원시적이지만 화석이 아닌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유기물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번성할수록 새로운 광물의 종류와 생성량은 증가한다지만, 실제 우주에서 유기성 생물이 이 행성만큼 번성하고 오래 존속한 사례는 거의 없었으므로, 이 행성은 자원의 가치도 가치려니와 유기생물에 대한 학문적 가치 또한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행성의 발견은 곧 은하 문명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무기성 생물인 그들에게는 원래부터 종의 진화라는 개념이 없으며, 그저 스스로 새로운 광물을 선택하여 흡수하므로 수만 년에 걸쳐 세포 조직을 재구성하는 형태의 자기계발형 진화만 있을 뿐이었기에, 새로 발견된 행성 유기체의 생존 능력이나 진화 과정도 놀랍거니와, 그에 의해 함께 진화한 다양한 광물종과 그 매장량도 경악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현재 추정되는 매장량만으로도 앞으로 십만 년 동안은 은하 문명이 필요로 하는 양분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으며, 행성의 유기성 생물이 번영을 지속한다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자원을 찾기 위해 생의 대부분을 우주에서 허비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충분한 자원만 있다면 끊임없이 몸체를 재구성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도 있으므로, 이전처럼 제한된 자원에 인한 아사(餓死)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 2012년 운명의 날(2012 Doom's Day) 2편으로 이어집니다.
- Mineral Evolution을 참고했으며, 이 글은 SF이므로 과학과 상충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 이 포스트는 무려 2년을 연재하게 되는군요.

:
free counters
BLOG main image
樂,茶,Karma by 외계인 마틴

카테고리

전체 분류 (386)
비과학 상식 (162)
블로그 단상 (90)
이런저런 글 (69)
미디어 잡담 (26)
茶와 카르마 (39)
이어쓰는 글 (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website stats
Total :
Today : Yesterday :
TISTORY 2008 우수블로그
TISTORY 2009 우수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