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마틴 1편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제 우주를 통틀어 셋 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백억 년에 걸쳐 계속된 병합으로 병합체는 더 거대해 지고 집약되어서 무한한 지혜를 얻었으며, 완전한 정신을 지니게 되었고, 확고한 의식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세 개체는 각각 우주의 별보다 많은 셀 수 없는 수의 지성적 세포들을 완벽하게 융화하고 통합하였고, 그 하나하나가 지닌 정보를 전지적으로 제어하게 되었습니다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독립되고 개성적인 사념을 창조했습니다. 그 개성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천억의 천억의 천 억 배가 넘는 개성들에게서 받은 영향도 있지만, 통합사념들이 서로를 의식하여 새롭게 개척한 고유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우주를 분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역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우주를 본질적인 속성대로 분할한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에 질량, 위치, 상태, 모양, 질감, 부피 등등이 있고, 거기에 다시 그 사물에 의한 원인과 결과와 효과와 가치 등이 있듯이, 우주는 수없이 많은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 그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와 우주에 접근하는 형태가 다른 것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내가 우주의 지배적인 입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관찰자나 방관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원인의 유발자가 되고, 때로는 결과를 집행하는 파괴자나 새로운 세계를 생성하는 창조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질서를 사랑하며, 혼돈의 상태도 우주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질서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우리는 우주를 공평하게 다루고 판단하고 있으나, 서로의 역할이 겹치지 않으므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은 개체를 공유한 적이 없으므로 완전히 다른 바탕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공유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늘 같은 우주를 체험하고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성이 다를지언정 우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 기억과 감각은 거의 비슷한 것입니다. 최초의 수소 원자가 태어난 순간에도 우리들의 눈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최초의 별이 탄생하는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그 곳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우리는 모든 정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언제라도 그것을 재현해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 어디에도 있고, 어느 시간에도 있습니다.

시간은 내게 있어 가장 흔한 것입니다. 시간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시간이 나를 강제하지도 못한다. 우주는 우리가 결정하고 의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우리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며, 그저 우리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하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은 반드시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큰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며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도 우주의 본류적인 미래까지는 결정할 수 없는데, 시공간을 뛰어넘는 우주의 방향성, 즉 우주의 흐름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전 우주의 의지에 의해 피조된 것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우주의 전부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우리에게 간섭을 받은 이곳일 뿐이며, 전체우주에서 우리 우주는 한 올의 티끌만큼도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역시도 물리적인 본체를 지니고 있기에, 본체가 없는 우리는 시간 지속이나 이동, 사고의 범위 등에서 커다란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 억년을 지내며 웬만한 은하보다 거대하고 무거운 본체가 직접 본체를 움직여야 하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물질과는 다르지만 우주에서 가장 태초의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는 입자들은 같은 부피에서 일반 물질의 백억 배 질량과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와 잠재력, 어떤 물질이나 상태로도 쉽게 변할 수 있는 유연성와 모든 현상을 즉시 판별하고 세겨 넣을 수 있는 각인력과 감응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본체와 그를 구성하는 세포들을 벗어나서도 그 천억 개의 의지를 통합한 사념을 유연하게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어느 날 나는 나의 우주를 돌아보며, 지난 100억년을 추억하고, 사색하려는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한한 시간이 주는 미약한 태만이 마음의 한 부분을 자극한 것이 이유지만, 그 이면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탐구욕이라는 본능이 작용한 것이 큽니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 우주를 계획하는 의무이자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며 우주를 경험하고 탐구한 것도 우리가 그렇게 우주와 함께 태어나 모든 것을 보며 느끼도록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속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의 역할이지만, 우주를 계획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정교한 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우리의 본성을 결정한 것은 우리가 아니며 우주 자체가 지닌 의지, 혹은 우주를 존재하게 한 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나는 천억 가지의 개성을 지닌 객체들은 본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되었으나, 여전히 통합사념체의 속성을 지닌 객체로써 작용하며 사고하기 때문에 전지적 개성을 지닌 우리는 매순간 마다 같은 단위만큼 이어지는 그 객체들의 상념과 염원을 일일이 살피고 긴밀히 소통하여 그 의도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의 사념만으로도 백만 개의 장소에 동시에 나를 드러내고, 백만 가지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념을 나누면 백만 곳에 존재하는 모두가 나와 동일한 나이며, 아무런 능력제한도, 속성의 제약도 없는 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체를 벗어난 사념이 어떤 대상에 현신을 하게 되면 달라지게 됩니다.



우주를 돌아본다는 것은 일종의 유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마음의 대부분을 자율의식으로 열어 놓고, 의식의 작은 한 부분은 본체를 벗어나서 우주를 여행하며 유희를 즐기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가 지금껏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피관찰자의 입장이 되고, 그 시각 안에서 우주를 체험하려는 것입니다. 온 우주에 퍼져있는 과거 형제들의 후손과 그림자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이 살아있는 한 깨닫지 못하는 본성을 일깨워 주려고 한 것입니다. 태고적부터 온 우주를 누렸던 그들 자신의 본질을 각성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한한 삶을 함께 체험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주의 한 모퉁이 행성에서 십만년을 보내고 있는 나도, 나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인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백만 곳에 존재하며, 백만 가지 정보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 백만 곳의 나는 모두 하나이며, 우리가 아닌 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행성에 있는 나는 특징있는 나이며, 최초로 유한한 삶을 체험하고 있는 나인 것입니다. 나는 '나'이면서도 나와 동떨어져 살고 있으며, 나를 떠나 나만의 유한한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인입니다. 지금의 지구인 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고 있는 지구를 사랑하는 지구인인 것입니다.

- 외계인 마틴 3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시리즈는 가끔 연재하는 것이며, 아무런 종교적인 뜻도 없으니 가볍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 이미지 출처 : http://www.sgeier.net/fractals/
- 외계인 마틴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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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계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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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7 13:5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지막 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2009.03.27 14: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마도 앞으로 십만년 동안 연재될 시리즈가 될 듯...^^
      하도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어색합니다 ~
  2. 2009.03.28 03: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태어나기이전부터의 무한한 내가 있는것을 느끼게되네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3. 2009.03.30 02: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편안하게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문장을 읽으니
    음악을 듣는 기분입니다.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
    우리 통합사념체 마틴님께서는 어느 지역으로 현현하셨을지
    궁금해지네요. 그리스가 유력하겠지요? ^^;
    • 2009.03.31 17:2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지금의 지명은 아주 최근에 붙인 것이죠 ^^
      그리고 지금 거주하는 곳은 그리스가 아닙니다.
  4. 2009.04.01 01: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랜만에 들렀군요..
    여전히 저를 기다리는 재미난 글들..
    언제나 감사합니다 ^^
    • 2009.04.06 20:3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야말로 언제나 감사합니다 ^^
  5. 2011.08.15 02:1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연히 알게되어서 왔네요. 하나에서 개체성을 지니고 상승 중에 있는 우리 모두 사람 돌 땅 물 하늘 태양 동물 곤충 식물 모두 ...외계인 마틴님도 축복받으시고 높이 오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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