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LV-1
(Korea Space Launch Vehicle-1)
의 발사는 이미 여러 차례 연기된 바가 있습니다. 이번 발사체 개발이 순수 우리 기술이 아닌 러시아와의 기술 협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위키백과를 검색해봐도 KSLV-1의 1단계 로켓이 러시아 흐루니체프사(Khrunichev社)가 개발중인 대형 로켓인 안가라 로켓(Angara, Ангара)의 1단계 추진체로 사용될 예정인 Angara UM이라고 나옵니다.
 
KSLV-1
Stage 1: Angara UM (Lox/Kerosene Propellant)
Stage 2: KSR-1 (Solid Propellant)
Payload: 100 kg (LEO)
Launch date: July 2009


작년에 신기전 그 통렬한 현실 이야기라는 포스트를 쓰면서 KSLV-1이 예정대로만 발사되어도 우리나라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 등 8개국에 이어서 9번째로 발사체를 보유한 국가가 되리라고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지난 2월에 이란이 자체 개발한(북한과 협력?) 발사체로 위성을 쏘아올렸고, 북한도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장거리 로켓 은하 2호에 실어 발사하면서 세계 10번째 자력 발사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성공이 확인되었을 경우라고 해야겠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남한이 인공위성 개발 능력은 북한에 크게 앞서지만 로켓발사 능력에서는 우리가 북한에 한참 밀린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술면이나 비용면에서 월등히 앞선 우리가 왜 이렇게 로켓 기술에서는 북한보다 밀리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2001년, 미국과 맺은 기존의 미사일 지침을 개정해서 군사용 미사일의 사거리를 180㎞에서 300㎞로 늘렸지만, 이는 북한이 1984년에 개발한 스커드-B 단거리 미사일 수준에 불과합니다. 미사일 지침에 민간용 로켓의 경우에는 사거리 규제없이 무제한으로 개발하고 시험발사나 생산을 하도록 허용했지만, 이마저도 액체연료 방식으로만 추진체를 개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아놓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북한은 실제로는 아무런 제한없이 로켓 개발에 몰두해왔기 때문에 로켓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지금도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주권 침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주기술의 대부분은 기술이전이 제한돼 있는데, 특히 액체연료 로켓엔진의 경우 탄도미사일 전환이 용이해 미사일통제체제(MCTR)의 규제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MCTR은 군사용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그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는 것이므로, 민간 개발용으로 이용하는 기술은 회원국 사이에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기술이전을 꺼리고 지나친 댓가를 요구하는 미국과 일본에게서 눈을 돌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러시아를 대상으로 기술 도입을 시도하였습니다.

2002년 처음 우리가 우주협력을 모색할 무렵의 러시아는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기에 한국과의 공동 개발을 환영하는 분위기 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경제 사정이 나아지자 러시아는 '액체로켓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지켜야 할 의무'를 규정한 기술보호협정(TSA)이라는 새 협상 카드를 내세우며, 태도가 돌변하였습니다. 돈을 준 만큼 핵심기술을 확보하려는 우리나라와 기술을 유출하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며, 개발에서 발사까지의 시간은 늘어만 갔고, 사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소모되는 비용도 껑충껑충 뛰어 올랐습니다. 그런 기다림과 협상을 하며 돈은 돈대로 들었으면서도 결국 TSA에 따라 1단 액체 로켓의 기술은 이전 받지 못한 채, 그들이 만든 것을 들여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발사 시기는 2008년 12월까지 연기되었었는데, 때마침 발사대 시스템 핵심부품으로 초저온 액체연료를 초고압 상태로 다루는 데 사용되는 특수 밸브를 제조하는 제조사가 중국의 쓰촨성 지진에 피해를 입으면서, 발사는 다시 2009년으로 한 차례 더 연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날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우주진출사업은 늘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여론이나 정세의 영향을 받는 즉흥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산을 책정했다가도 동네 시장에서 물건값 깍듯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하였고, 미래에는 한국이 '우주의 강대국'이 된다는 가슴 설레는 원대한 계획들을 발표했다가도 몇년도 지나기 않아 '전면수정'이라는 이름하에서 그것을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유인우주선 발사를 성공시켜 애국심을 고취시켰던 것을 본받아, 북한이 김정일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무리하게 로켓 발사를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로켓 개발에 북한 주민이 일년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을 쏟아 부었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그 만큼 로켓 기술 확보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돈을 러시아에 주고도 여전히 핵심 기술을 이전받지 못한 채, 기술의 60%를 확보했다며 자위하고, 각종 규제로 인해 기술 확보가 어렵다는 말을 핑계삼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부럽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생쑈를 벌이던 말던, 꿋꿋하게 보란듯이 로켓을 발사한 북한의 자존심이 부럽습니다. 돈만 주면 탈 수 있는 우주선에 승객을 싣고 국민들에게 우리도 우주인을 배출했다며 희망을 주었었는데, 이유를 떠나서 그 땐 정말 우주에 대한 희망이 생겼고, 충분히 자랑스러웠습니다. 로켓의 몇 %를 누가 만들었던, 2000억을 주고 사왔던 간에 KSLV-1이 발사된다면 우리는 그 때의 백만배 정도는 가슴 뭉클해 하고, 애국심이 쏟아내며 만세를 부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연기하지 맙시다. 제발 우리도 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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