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노동절인데 영어로는 노동자를 뜻하는 Labor나 Worker를 써서 레이버데이(Labor day)워커스데이(Workers' Day), 또는 5월을 뜻하는 메이데이(May Day)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통 달력에는 노동절(勞動節)이라는 말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나 근로자나 크게 다르지는 않는 듯 보이고, 왠지 노동자라는 말은 살짝 북쪽 뉘앙스가 풍기기 때문에 근로자라는 말이 더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또 노동자라고 하면 일단 깔끔한 제복이나 회사 작업복을 입은 사람보다는 건설현장 쪽에서 일하는 '노가다'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근로기준법 2조에 따라서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통칭해서 근로자(勤勞者)라고 할 수 있는데,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무직 근무자를 비롯해서 은행원, 경비원, 교사, 연구원 등 임금을 목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근로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지금 실업 중인 사람도 노동조합법에 따르자면 근로자로 포함되는데, 제가 하려는 말은 이런 법규와는 무관하므로 이쯤에서 생략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한 단어들을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근로자(勤勞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노동자(勞動者)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노공(勞工).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 뜻이 크게 다르지 않아 노동자와 근로자는 별 차이가 없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노동과 근로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의미가 사뭇 달라집니다.

노동(勞動)
1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2 몸을 움직여 일을 함.

근로(勤勞)
부지런히 일함.

노동은 일하는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근로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아주 다른 말입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고,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는 일하는 사람(일꾼)이지만, 근로자는 그를 고용하고 일을 시키는 사업주 입장에서 사용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당시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던 8만여 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노동력착취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서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집회를 가진 것이 노동절의 유래입니다. 그런데 근로자라는 단어에는 회사를 위해서 더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강요하는 듯 한 어감이 들어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근로자라는 말은 '시합'이라는 말처럼 일본에서 건너 온 일본식 단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선지 '근로'는 개미처럼 열심히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일하던 일본식 노동의 개념이 다분히 들어있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120년 전 그들은 단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시위를 가진 것이었고,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마침내 자본가와 정부는 그들의 요구를 정당한 요구라고 인정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절을 노동자의 휴일로 지키고 있으나,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을뿐더러 '근로자의 날'이라는 애매한 말로 대체되었습니다. 노동자는 사라지고 근로자 즉 (회사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식의 개념이 뿌리내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매년 5월 1일은 노동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휴일이라고 하는데, 달력은 여전히 까만색 글씨입니다. 빨간 글씨라면 오늘 일을 할 경우, 여러 수당이 추가되지만 까만 글씨이기 때문에 별다른 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규모가 작고 노조가 잘 짜이지 않는 열악한 여러 일터에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정해진 노동시간을 충실히 일하며 보내는 것이지, 회사가 원하는 만큼 휴일도 쉬지않고 몸도 아끼지 않고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주어진 일을 하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절이지 회사가 바라는 만큼 일해주는 근로자를 위한 날이 아닙니다. 근로가 아닌 노동을 하는 우리는 오늘을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도 먹고 살만해졌으니 '죽어라 일만 하라'는 식의 근로장려는 이제 자제하는 것이 어떨런지...



참고로 추가하자면 '무엇의 날' 식의 표현은 조사 '의(の)'를 많이 쓰는 일본말투를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노동절이라고 부르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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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계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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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1 20: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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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이런 깊은뜻이 있었군요.
    확실히 미스테리한것중에 하나는,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세계 어느 노동자보다도 많은시간을 일하는데..
    어째서 이런 소득수준에 이런대접일까 하는 것입니다.
    • 2009.05.03 14: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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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수준이라는 것이
      노동시간을 생각하지않은 소득전체...
      시급 수준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는..
  2. 2009.05.03 14:1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는 그래서 그냥 개미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_-a
    • 2009.05.03 14: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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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평범한 일개미죠.
      평생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만 먹고 살수 있는 일개매요..
  3. 2009.05.06 14:1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들이 노조를 만드니까 '선생님'이 '노동자'냐고 쓰잘데기 없는 이슈를 만들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저는 대학교 초년, 430 및 메이데이 관련 이야기 혹은 모임 등에 나가보고 '노동'이라는 말이 '근로'라는 말보다 더 독립적이고 시스템 독립적인 단어라는 말이라고 느꼈습니다.

    근로자의 날, 훗.
    • 2009.05.11 15: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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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단어 선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선택에 어떤 의지가 작용한 것이라면 두고 볼 수 만은 없죠..
  4. 2009.12.25 08: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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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노동자 (또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타입의 노동자에 대해서만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장인, 교수, 교사, 연구원, 아르바이트생이라고는 말하는데, 그 사람들을 노동자라고는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야구선수가 노조 만든다고 할 때 논란이 되었던 점과 파업하는 사람들을 "노동자, 우리들"이 아닌 "노동자, 저 사람들"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많은 점이 그렇습니다.

    P.S. '무엇의 날'의 '의'는 일본말투라고는 하지만 '무엇절'의 '절'도 한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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